추리 소설
서재의 문을 걸어 잠근 수현의 손끝이 가늘게 떨렸다. 방금 전 거실에서 마주쳤던 세 용의자의 눈빛이 잔상처럼 남았다. 강박적인 편집자의 초조함, 가정부의 방어적인 태도, 그리고 정체불명 남자의 서늘한 원한. 그들 중 누군가는 분명 이 방 어딘가에 숨겨진 '그날'의 기록을 노리고 있었다.
수현은 책상 위에 흩어진 회고록 초고들을 다시 한번 정렬했다. 도진은 평소 자신의 집필 순서를 철저히 지키는 사람이었다. 1장 '순경 시절의 단상', 2장 '첫 검거의 기억'... 순조롭게 이어지던 페이지 번호가 갑자기 끊긴 곳은 정확히 제3장이 시작되어야 할 지점이었다.
"2006년 7월 14일."
수현은 빈 페이지를 손으로 쓸어내렸다. 그날은 차도진을 전설로 만든 날이자, 동시에 그를 평생 괴롭힌 유령이 태어난 날이었다. 청평 호수의 안개가 유독 짙었던 그날 밤, 일곱 살 소녀 연주가 증발하듯 사라졌고 수사팀은 끝내 시신조차 찾지 못했다. 도진은 그 사건 이후 승승장구하며 특진했지만, 정작 본인은 단 한 번도 그 사건을 입에 올리지 않았다.
그런데 그가 죽기 직전, 평생 침묵해 온 그날의 기록을 회고록에 담으려 했다. 그리고 누군가는 그 문장이 세상 밖으로 한 걸음도 나오지 못하도록 페이지를 통째로 도려냈다.
수현은 스승이 남긴 '눈동자 암호'가 가리켰던 괘종시계 앞으로 다시 다가갔다. 11시 11분에 멈춘 시계는 단순한 살해 시각의 기록이 아니었다. 그녀는 시계 하단의 나무 장식을 유심히 살폈다. 도진은 중요한 물건을 숨길 때 항상 '가장 눈에 잘 띄는 곳의 이면'을 활용하곤 했다.
시계추가 흔들리던 좁은 공간 벽면에 손을 집어넣자, 매끄러운 나무 재질과는 다른 이질적인 감촉이 느껴졌다. 아주 얇은 마그네틱 테이프로 고정된 투명한 아크릴 판이었다. 수현이 그것을 떼어내자, 그 안에는 20년의 세월을 견딘 듯 누렇게 변색된 신문 스크랩과 자필 메모 한 장이 들어있었다.
「진실은 잉크보다 무겁고, 침묵은 칼날보다 날카롭다. 수현아, 만약 네가 이 글을 읽고 있다면 너는 이미 금지된 선을 넘은 것이다.」
메모 뒤편에는 좌표로 보이는 숫자들과 함께 짧은 이름 하나가 적혀 있었다.
'강철수'
수현의 심장이 철렁 내려앉았다. 강철수는 20년 전 사건 당시 도진의 파트너였으며, 수사 도중 의문의 교통사고로 사망한 인물이었다. 그리고 그는 지금 저택 거실에서 자신을 유가족이라 주장하며 노려보던 사내, 강민호의 아버지였다.
똑, 똑.
정적을 깨는 노크 소리에 수현은 재빨리 메모를 주머니에 넣고 권총 손잡이에 손을 올렸다.
"한 경위님, 안에 계신 거 압니다. 차 한 잔 가져왔어요."
가정부 박 씨의 목소리였다. 하지만 평소와 달리 묘하게 떨리는 어조였다. 수현이 조심스럽게 문을 열자, 박 씨가 쟁반 위에 김이 모락모락 나는 찻잔을 들고 서 있었다. 찻잔 옆에는 어김없이 각설탕 한 알이 놓여 있었다.
"선생님이 돌아가시기 전에도 똑같이 이 차를 올렸어요. 그런데 그때... 선생님이 그러시더군요. 오늘 밤엔 손님이 아주 많이 올 거라고. 20년 전에 초대했던 손님들이 이제야 도착한다고요."
박 씨의 시선이 수현의 어깨너머, 방금 열었던 시계 내부를 향했다. 그녀의 눈동자가 기괴하게 번뜩였다.
"경위님도 그 손님 중 한 명인가요? 아니면... 그들을 막으러 온 사냥개인가요?"
박 씨가 들고 있던 찻잔 속의 차가 미세하게 파동을 그렸다. 수현은 직감했다. 이 저택의 안개는 단순히 호수에서 올라온 것이 아니었다. 20년 전부터 이 거실과 서재를 떠돌던 거대한 비밀의 숨결이었다.
수현은 가정부 박 씨의 기괴한 질문을 뒤로하고 서재 문을 굳게 잠갔다. 심장이 터질 듯 뛰었지만 머릿속은 차갑게 식어갔다. 그녀는 방금 찾은 강철수 형사의 메모를 다시 펼쳤다. 메모 속 좌표는 서재 책상 바로 아래, 정확히는 차도진이 평생을 앉아 있던 낡은 가죽 의자 바로 밑을 가리키고 있었다.
수현은 무거운 의자를 밀어내고 카펫을 걷어냈다. 바닥재의 나뭇결이 미세하게 어긋나 있는 부분이 눈에 들어왔다. 단단한 일자 드라이버로 그 틈을 들어 올리자, 성인 남성의 손바닥만 한 깊이의 비밀 수납함이 나타났다. 그 안에는 비닐에 겹겹이 싸인 종이 뭉치가 들어있었다. 회고록에서 도려내졌던, **'진짜 제3장'**의 원고였다.
원고는 도진의 평소 정갈한 글씨체와 달리 몹시 거칠고 급하게 쓰여 있었다. 수현은 숨을 죽이고 문장을 읽어 내려갔다.
「연주를 죽인 것은 안개가 아니었다. 그날 밤, 호숫가 별장에는 당시 수사 서장이었던 이의 아들이 머물고 있었다. 나는 강철수 형사와 함께 현장에서 그 아이의 피 묻은 셔츠를 발견했다. 하지만 다음 날 아침, 셔츠는 사라졌고 강 형사는 사고로 위장되어 죽었다. 나를 전설로 만든 그 '결정적 증거'는 사실 진범을 바꿔치기하기 위해 누군가 내 책상 위에 올려둔 가짜였다.」
수현은 눈앞이 아득해졌다. 스승 차도진은 정의를 세운 것이 아니라, 거대한 권력의 설계 아래 조작된 영웅이었다. 그리고 그 '서장의 아들'이 누구인지 확인하려는 순간, 서재 밖 복도에서 아주 규칙적인 소리가 들려왔다.
째깍, 째깍, 째깍.
편집자 김 씨의 스마트워치가 알람을 울리는 소리였다.
"한 경위님, 그 원고는 세상에 나와선 안 되는 물건입니다."
닫힌 문 너머로 김 씨의 목소리가 들렸다. 평소의 비굴할 정도로 예의 바르던 톤은 온데간데없고, 기계처럼 차갑고 건조한 말투였다.
"선생님은 노망이 나신 게 분명해요. 이제 와서 그 지저분한 과거를 들춰내 모두를 파멸시키려 하다니. 제 아버지가 평생을 바쳐 지켜온 가업이 그 종이 몇 장에 무너지는 걸 보고만 있을 것 같습니까?"
수현은 권총을 꺼내 문 쪽을 겨냥했다. "김 편집자, 당신 혼자서는 이 밀실을 만들 수 없어. 도진 선생님의 차에 독을 타고, 내 동선을 감시한 사람이 더 있겠지."
그때, 김 씨의 목소리 옆으로 가정부 박 씨의 낮은 웃음소리가 섞여 들었다.
"경위님, 선생님은 죽기 직전까지 제 손을 잡고 사죄하셨어요. 본인이 죽어야만 이 연극이 끝난다고 말이죠. 그래서 저는 그가 원하는 대로 가장 고통 없는 길을 열어드린 것뿐이에요."
두 사람의 발소리가 문 앞에서 멈췄다. 문손잡이가 거칠게 돌아갔다. 수현은 깨달았다. 가정부는 독을 준비하고 내부 동선을 제공했으며, 편집자는 외부와의 통신을 차단하고 원고를 인멸하는 역할을 맡은 공동 범인이라는 사실을.
수현은 주머니 속의 낡은 열쇠와 방금 찾은 원고를 품 안 깊숙이 넣었다. 그리고 벽면의 괘종시계를 다시 보았다. 시곗바늘은 여전히 11시 11분을 가리키고 있었지만, 시계 내부의 기어는 수현이 아까 뿌려진 설탕 가루를 닦아낸 덕분에 아주 미세하게 다시 움직이기 시작했다.
치직, 치지직.
통신 차단기 때문인지 무전기에서 다시 소음이 들리기 시작했다. 수현은 책상을 엎어 문을 막으며 나직하게 읊조렸다.
"선생님, 당신이 남긴 이 3장이 단순한 자백서가 아니었군요. 범인들을 이 방 앞으로 불러 모으는 **'미끼'**였어요."
창밖 호수의 안개가 서재 유리창까지 차오르고 있었다. 이제 20년 전의 진실과 현재의 살인이 뒤섞인 긴 밤이 본격적으로 시작되려 하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