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필
생의 끝자락이 이토록 시린 숫자로 요약될 줄은 몰랐다. 돋보기를 타고 내려온 시선이 휴대폰 화면에 머문다. 은행 앱이 무심하게 뱉어낸 숫자, 1,111원. 일직선으로 나란히 늘어선 네 개의 '1'이 마치 내 생의 앞마당에 박힌 마른 말뚝처럼 보인다. 혹은 더 이상 물러설 곳 없는 벼랑 끝에서 내미는 앙상한 네 손가락 같기도 하다. 70 평생을 부지런히 저어왔다고 자부했건만, 내 영혼의 잔고는 이제 이 네 자리 숫자의 경고 앞에 멈춰 섰다.
일(一)이라는 숫자는 본래 시작을 의미한다 하지 않았나. 하나에서 둘이 되고, 둘이 모여 가정을 이루고, 그 가정이 다시 숫자를 불려 가며 안락한 노후라는 성을 쌓는 것이 순리인 줄 알았다. 그런데 내 통장에 남은 이 네 개의 '1'은 시작이 아니라 엄중한 '마침표'처럼 읽힌다.
젊은 시절, 내 손때 묻은 월급봉투는 두툼했다. 아이들의 학비가 되고, 아내의 장바구니를 채우고, 부모님의 약값이 되었던 그 숫자들이 지금은 다 어디로 흘러갔을까. 통장은 기억의 저장소라더니, 빠져나간 숫자들의 행방을 쫓다 보면 내 삶의 마디마디가 보인다. 결혼식 축의금으로, 손주의 돌잔치 비용으로, 그리고 이름도 모를 병마와 싸우며 병원비로 썰물처럼 빠져나간 세월들.
이제 남은 1,111원은 내게 경고한다. "보라, 이것이 네가 세상에 남긴 마지막 무게다."라고. 이 돈으로는 시장 어귀의 따뜻한 국밥 한 그릇도, 고단한 몸을 뉘일 단 하룻밤의 안식도 살 수 없다. 숫자는 서정(抒情)을 알지 못한다. 오직 냉혹한 물리적 한계로 나를 압박해 올 뿐이다.
창밖에는 여전히 겨울의 막바지를 알리는 비가 내린다. 며칠 전 가로등 불빛 아래서 보았던 그 투명한 빗줄기들이 이제는 내 통장의 빈자리를 채우는 눈물처럼 느껴진다. 가로등은 어둠 속에서도 제 몸을 태워 길을 비추지만, 돈이 마른 노년의 길은 빛없는 골목과 같다.
기억 속의 나는 늘 누군가에게 베푸는 사람이었다. "허허, 걱정 마라. 내가 있지 않으냐."라고 호기롭게 말하던 그 목소리는 이제 가슴속에서만 맴돈다. 친구의 부고 소식을 듣고도 통장 잔고를 먼저 확인해야 하는 비루함, 명절에 찾아온 손주에게 빳빳한 신사임당 한 장 쥐여주지 못하고 빈손을 만지작거려야 하는 참담함.
70대의 빈곤은 단순히 배고픔의 문제가 아니다. 그것은 '존엄'의 문제다. 평생 쌓아온 사회적 관계가 무너지고, 자식들에게 짐이 될까 봐 스스로를 고립시키는 과정이다. 가로등 사이로 쏟아지는 저 빗줄기처럼, 내 존재감도 소리 없이 바닥으로 스며들어 사라지는 중인 것만 같다.
해변의 소나무를 떠올린다. 바람에 몸을 맡기고 제 몸을 비틀어 살아남은 그 나무들. 나 역시 삶의 풍파 속에서 수없이 몸을 굽혔다. 상사의 꾸중 앞에서도, 자식의 잘못 앞에서도, 세상의 불의 앞에서도 나는 부러지지 않기 위해 휘어졌다. 소나무의 굽은 등이 생의 훈장이라면, 내 통장의 1,111원은 생의 치열한 전투 끝에 남은 파편이다.
하지만 소나무는 비가 오면 그 비를 자양분 삼아 푸른빛을 더한다. 그런데 왜 인간의 노년은 이토록 마른 장작처럼 바스러지는가. 통장의 숫자가 줄어들수록 마음의 근육도 함께 빠져나가는 기분이다. 1,111원. 이 숫자는 내게 묻는다. "당신은 무엇을 위해 그토록 필사적으로 휘어지며 버텼는가?"
허무가 밀물처럼 밀려든다. 모래사장에 새겨진 발자국이 파도 한 번에 지워지듯, 내가 일구어 놓은 모든 것이 이 작은 숫자 하나에 휘청거린다.
침묵 속에 한참을 앉아 있다 보니, 화면 속의 '1,111'이 다르게 보이기 시작한다. 그것은 어쩌면 벼랑 끝에 나란히 선 네 개의 '솟대'일지도 모른다. 마을의 안녕을 빌며 높은 장대 위에 세워두었던 오리처럼, 이 네 개의 숫자는 내게 마지막 남은 '희망의 안테나'를 세우라고 말하는 것 같다.
그래, 나는 아직 살아있다. 통장의 잔고는 바닥을 보이지만, 내 기억의 잔고는 여전히 풍성하다. 비록 내일의 끼니를 걱정해야 하는 막막한 현실이라 할지라도, 가로등 불빛에 반짝이는 빗방울을 보며 시 한 구절을 떠올릴 수 있는 감수성이 남아있지 않은가.
돈은 사람을 편리하게 하지만, 사람을 고귀하게 만드는 것은 결국 그 사람이 품은 '마음의 무늬'다. 1,111원은 내게 주는 마지막 경고이자 격려다. "더 이상 숫자에 휘둘리지 마라. 남은 생은 이 네 개의 일직선처럼 곧게, 오직 당신 자신만을 위해 걸어가라."
"가장 가난한 순간에 가장 맑은 영혼이 깨어난다."
어느 수필집에서 읽었던 구절이 빗소리에 섞여 들어온다.
겨울비는 대지를 적시고, 그 물기는 땅속 깊은 곳 마른 뿌리에 닿을 것이다. 내 통장의 1,111원도 어쩌면 내 생의 마지막 겨울을 견디게 할 최소한의 씨앗일지 모른다.
나는 다시 휴대폰을 끈다. 화면이 어두워지자 비로소 창밖의 풍경이 선명해진다. 비에 젖은 아스팔트가 가로등 빛을 받아 은하수처럼 빛나고 있다. 막막함은 여전하고, 내일 눈을 떴을 때 마주할 현실은 여전히 차가운 숫자들로 가득하겠지만, 나는 오늘 밤 이 1,111원을 내 영혼의 안식처로 삼기로 했다.
일(一)이 네 개 모여 일천백십일(一千一百十一)이 되듯, 내 남은 하루하루를 정성껏 모아 마지막 문장을 완성하고 싶다. 돈이 없어 서러운 것이 아니라, 꿈이 없어 서러운 노년이 되지 않기를. 빗줄기 사이로 잊었던 옛 동요의 선율이 흐른다.
나는 굽은 허리를 펴고 깊게 숨을 들이마신다. 비릿한 흙내음과 함께 찬 공기가 허파 깊숙이 박힌다. 아, 살아있구나. 숫자가 증명할 수 없는 생의 박동이 아직 여기 있구나. 1,111원의 경고는 이제 낮은 속삭임으로 변한다. "괜찮다, 당신은 충분히 잘 살아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