추리소설
저택을 감싼 안개는 이제 한 치 앞도 분간할 수 없을 만큼 걸쭉해졌다. 수현은 서재에서 챙긴 스승의 비밀 수첩과 증거 칩을 품에 안고, 경찰들의 눈을 피해 저택 뒷문으로 빠져나왔다. 저택 정문에서는 최 형사가 이끄는 팀이 요란하게 진입하며 수현의 이름을 외치고 있었지만, 그 목소리는 구원을 요청하는 것이 아니라 사냥감을 쫓는 포식자의 포효에 가까웠다.
"이쪽입니다, 경위님."
선착장 구석, 어둠 속에 몸을 숨기고 있던 강민호가 손짓했다. 그는 이미 낡은 모터보트의 시동을 조용히 걸어둔 상태였다. 수현이 보트에 올라타자마자 선체는 미끄러지듯 호수 위로 나아갔다. 엔진 소리는 안개의 장막에 막혀 낮게 웅웅거렸고, 멀어지는 청평 저택의 경광등은 마치 안갯속에서 명멸하는 도깨비불처럼 기괴해 보였다.
수현은 차가운 호숫바람에 젖은 머리카락을 쓸어 넘기며 강철수의 수첩을 다시 펼쳤다. 방수 팩에 넣었음에도 불구하고 종이에서는 지독한 물비린내가 나는 듯했다. 수첩의 마지막 페이지에는 도진이 직접 그려둔 듯한 지도와 함께 짧은 메모가 적혀 있었다.
「진실은 침몰하지 않고, 호수 건너편 썩은 나무뿌리 아래 잠들어 있다.」
호수를 가로질러 닿은 곳은 20년 전 전직 서장의 별장이었던 폐허였다. 한때 권력자들의 은밀한 회합 장소였을 이곳은, 이제 앙상한 철근과 깨진 벽돌만이 남은 채 안갯속에서 흉물스럽게 자태를 드러내고 있었다.
선착장에 발을 내딛자 썩은 나무판자가 비명을 지르며 내려앉았다. 수현은 손전등을 켜고 별장 안으로 들어섰다. 벽면에는 누군가 붉은 스프레이로 휘갈겨 쓴 정체불명의 기호들이 가득했고, 바닥에는 깨진 술병과 낡은 신문지들이 굴러다니고 있었다.
"20년 전, 선생님은 여기서 연주의 노란 우비를 발견하셨다고 했죠."
강민호의 목소리가 떨렸다. 그는 별장 중앙 거실의 낡은 벽난로 앞으로 걸어갔다. 수현은 손전등으로 바닥을 비췄다. 먼지 쌓인 마루판 위로, 유독 깨끗하게 닦인 듯한 자국이 길게 이어져 지하로 향하고 있었다. 누군가 최근까지 이곳을 드나들었다는 증거였다.
두 사람은 조심스럽게 지하 계단을 내려갔다. 곰팡이 냄새와 함께 묘한 약품 냄새가 코를 찔렀다. 계단 끝에 나타난 것은 거대한 철제 문이 달린 '지하 세탁실'이었다. 일반적인 별장에는 어울리지 않는, 마치 병원이나 실험실에서나 쓸 법한 대형 세탁 설비들이 놓여 있었다.
"이건 단순히 옷을 빠는 곳이 아니에요." 수현이 세탁기 내부를 손전등으로 비추며 말했다. "혈흔이나 화학 성분을 완벽하게 제거하기 위해 설계된 '증거 인멸의 방'이죠."
수현은 세탁기 뒤편 벽면에서 작은 틈을 발견했다. 그 틈 사이에 끼어 있는 것은 아주 작은, 보라색 실 조각이었다. 그것은 온실에서 보았던 투구꽃의 색깔과 일치했다.
그때, 별장 위층에서 끼익— 하고 문이 열리는 소리가 들렸다. 수현은 즉시 불을 끄고 강민호의 입을 막았다. 정적 속에서 들려오는 발소리는 한 명이 아니었다. 군화 굽이 바닥을 때리는 규칙적인 소리, 그리고 그 뒤를 따르는 가벼운 운동화 소리.
최 형사와 편집자 김 씨가 이곳까지 따라온 것이 분명했다.
"여기 어딘가에 있을 거야. 노 씨 그 영감이 20년 동안 숨겨둔 그 사진 말이야."
최 형사의 목소리가 지하 계단 입구에서 울려 퍼졌다.
수현은 숨을 몰아쉬며 벽 뒤에 몸을 밀착했다. '노 씨'? 20년 전 실종 사건 당일 밤, 별장의 관리인이자 차도진이 공식적으로 '사망'했다고 기록했던 유일한 목격자. 그가 살아있단 말인가?
그 순간, 세탁실 구석의 낡은 환풍구 너머에서 아주 가느다란 목소리가 들려왔다.
"경위님... 이쪽으로..."
그것은 인간의 목소리라기보다 바람이 갈라지는 소리에 가까웠다. 수현은 본능적으로 깨달았다. 스승 차도진이 20년 동안 숨겨온 '진짜 마지막 카드'가 바로 이 폐허 속에 숨 쉬고 있다는 것을.
환풍구 너머에서 들려온 노 씨의 목소리를 따라, 수현은 강민호와 함께 세탁실 뒤편의 좁은 비밀 공간으로 몸을 밀어 넣었다. 그곳은 성인 두 명이 겨우 서 있을 만큼 비좁았지만, 한쪽 벽면에는 도진의 서재에서 보았던 것과 유사한 소형 금고가 매립되어 있었다.
노 씨는 떨리는 손으로 금고를 열어 누렇게 변색된 서류 봉투 하나를 꺼냈다. "차 형사가... 자기가 잘못되면 이걸 꼭 경위님께 전하라고 했습니다."
수현은 봉투를 받아 들었다. 본능적으로 가슴이 뛰었지만, 그녀는 곧바로 봉투를 뜯지 않았다. 대신 손전등을 비스듬히 비춰 봉투 표면의 질감을 살폈다.
'전문가의 솜씨다.'
봉투 입구의 접착면에는 아주 미세한 보풀이 일어나 있었다. 누군가 증거 보존용 특수 용해제를 사용해 한 번 열었다가 다시 붙인 흔적이었다. 수현은 차가운 목소리로 읊조렸다. "누군가 이미 읽었어. 그것도 아주 조심스럽게."
그녀는 봉투 안에서 도진의 마지막 유언장이자 20년 전의 수사 보고서를 꺼냈다. 슬픔이 차오르기 전, 수현의 뇌는 수사 모드로 빠르게 전환되었다. 그녀는 보고서 하단의 지문 날인 구역을 확인했다. 그곳에는 도진의 지문 옆에 아주 희미한, 하지만 명확한 **'검은색 잉크 얼룩'**이 묻어 있었다.
수현의 머릿속에 제2장에서 편집자 김 씨와 대면했을 때의 기억이 스쳐 지나갔다. 당시 김 씨는 강박적으로 자신의 스마트워치를 닦으며, 원고의 오탈자를 지적할 때마다 손가락 끝을 만년필 잉크로 더럽히곤 했다.
"김 편집자... 그자가 이미 이 내용을 알고 있었어."
수현은 유언장의 내용을 빠르게 훑었다. 그곳에는 도진의 참회와 함께, 20년 전 진범이 남긴 결정적 증거의 위치가 적혀 있었다. 그런데 내용 중 한 문장이 수현의 눈길을 사로잡았다.
「진실은 설탕 한 알의 무게보다 가볍고, 잉크 한 방울의 깊이보다 깊다.」
제2장에서 박 씨가 언급했던 도진의 기괴한 습관—평소 혐오하던 설탕을 찻잔에 넣던 모습—이 떠올랐다. 그것은 단순히 노망 난 노인의 행동이 아니었다. 도진은 자신의 집필실을 드나드는 김 편집자가 이미 이 비밀 보고서를 훔쳐봤다는 사실을 눈치챘고, 그가 읽은 '가짜 유언장'과 수현이 읽을 '진짜 유언장'을 구분하기 위해 설탕이라는 암호를 설정해 둔 것이었다.
"찾았다!"
지하 세탁실 문이 거칠게 발로 차이며 열렸다. 최 형사의 구두 굽 소리가 콘크리트 바닥을 때렸다. 수현은 보고서를 재빨리 품 안에 넣고 강민호를 벽 뒤로 밀쳤다.
"최 형사님, 여기까지 오느라 고생 많으셨네요. 김 편집자가 미리 열어본 보고서에는 뭐라고 적혀 있던가요? 아마 진범이 호수 건너편 폐가 지하에 있다고 적혀 있었겠죠?"
수현의 도발에 최 형사의 눈이 가늘어졌다. "무슨 소리냐, 한 경위. 순순히 내놔."
"선생님은 당신들을 낚으신 거예요." 수현이 냉정하게 미소 지었다. "당신들이 읽은 건 위조된 복사본입니다. 진짜는 이 유언장 속에 숨겨진 '잉크의 농도'에 있어요. 당신들이 세탁실을 뒤지는 동안, 진짜 증거는 이미 다른 곳으로 향하고 있습니다."
수현은 보고서 뒷면에 숨겨진 특수 마이크로필름을 손끝으로 감지했다. 도진은 김 편집자가 보고서를 훔쳐볼 것을 예상하고, 육안으로는 보이지 않는 필름을 종이 겹 사이에 숨겨두었던 것이다.
"민호 씨, 노 씨를 데리고 환기구로 뛰어내려요! 여긴 제가 맡습니다."
수현은 권총을 뽑아 들고 최 형사의 미간을 정확히 겨냥했다. 베테랑 수사관으로서의 차가운 평정심이 그녀의 온몸을 감쌌다. 이제 슬픔은 진실을 밝힌 뒤에나 허락될 사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