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필] 다시, 창을 열다

by 산들강바람


어느덧 공기의 질감이 바뀌어 있었다. 아침에 눈을 뜨자마자 습관처럼 하던 이불속 움츠림 대신, 웬일인지 몸이 먼저 반응했다. 창가로 다가가 덧문을 밀어내자, 묵직한 냉기 대신 보드랍고 간지러운 바람이 방 안으로 밀려 들어왔다. 봄날이다.


지난겨울은 내게 유독 가혹했다. 단순히 달력 위의 숫자가 느리게 간 것이 아니라, 마음속의 기온이 영하권에 머무는 날들이 길었다. 세상은 눈 덮인 고요함 속에 평온해 보였으나, 내 안의 겨울은 시린 칼바람을 동반한 채 좀처럼 물러날 기미를 보이지 않았다. 가끔은 이 계절이 영원히 끝나지 않을 것만 같은 막연한 공포에 사로잡히기도 했다. 어둠이 일찍 찾아오는 오후마다 나는 스스로를 유폐시킨 채, 보이지 않는 봄을 원망하곤 했다.


고개를 들어 하늘을 보았다. 거기엔 부드러운 파스텔 톤의 온기가 가득했다. 구름 한 점 없는 창공은 마치 누군가 정성스레 데워놓은 찻잔처럼 따뜻한 기운을 아래로 내보내고 있었다. 그 빛이 얼굴에 닿는 순간, 꽁꽁 얼어붙어 있던 감각들이 조금씩 말랑해지는 것을 느꼈다.


사실 겨울은 나를 괴롭히려 온 것이 아니라, 무언가를 단단하게 굳히기 위해 머물렀던 것일지도 모른다. 뿌리가 땅속 깊은 곳에서 침묵하며 힘을 기르듯, 나 역시 그 긴 겨울 동안 내면의 단단함을 시험받고 있었던 것은 아닐까. "나에게도 봄은 오는 건가"라고 수천 번 되뇌었던 그 질문이, 오늘 아침 하늘을 보는 순간 비로소 마침표를 찍었다.


봄은 화려한 꽃잔치로 시작되는 것이 아니었다. 그저 아침에 일어나 무심코 연 창문 너머로 느껴지는 온기, 살짝 젖은 흙내음, 그리고 무엇보다 '이제는 괜찮을 것 같다'는 마음의 작은 소망으로부터 시작되는 것이었다.


길었던 겨울잠에서 깨어난 나무들이 연약한 새순을 밀어 올리듯, 나도 이제 겨우내 껴입었던 두꺼운 상심의 외투를 벗어던지려 한다. 세상의 봄은 이미 당도해 있었고, 내 마음의 봄은 내가 창문을 여는 그 순간을 기다리고 있었던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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