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재소설
아스팔트 위를 때리는 빗줄기는 얼음장처럼 차가웠지만, 민준의 오른손바닥은 마치 용암을 움켜쥔 듯 극심한 고열을 내뿜고 있었다. 아파트 5층에서 뛰어내려 골목 어둠 속으로 몸을 숨긴 민준은 거친 숨을 몰아쉬며 젖은 벽에 몸을 기대었다. 전신을 파고드는 추락의 충격보다 더 공포스러운 것은, 자신의 의지와 상관없이 맥동하기 시작한 신체의 변화였다. 그는 떨리는 왼손으로 오른손 장갑을 벗겨냈다. 그곳엔 발굴 현장에서 보았던 청동 거울의 문양과 똑같은 형태의 붉은 낙인이, 마치 살갗 아래에서 살아있는 벌레가 꿈틀거리듯 기괴하게 뒤틀리며 빛나고 있었다. 그것은 단순한 화상이나 문신이 아니었다. 민준의 혈관 하나하나를 타고 흐르는 피가 그 문양의 결을 따라 강제로 재배치되는 듯한, 근원적인 재구성이었다.
"이게... 대체 내 몸에 무슨 짓을 하고 있는 거지?"
민준은 고통에 신음하며 손바닥을 차가운 빗물 고인 웅덩이에 처박았다. 치익, 하는 환청이 들릴 정도로 뜨거운 열기가 느껴졌지만 빗물은 아무런 위로가 되지 않았다. 오히려 수분이 닿자 낙인은 더욱 선명한 옥빛을 띠며 민준의 시신경을 자극했다. 눈을 감아도 잔상이 남았다. 불타는 도성 위에서 인장을 쪼개던 사내들의 비장한 눈빛, 그리고 80년 전 갱도가 무너지는 순간 증조부가 내뱉었던 마지막 단어들이 파도처럼 밀려와 그의 뇌를 헤집어 놓았다. 민준은 평생을 고고학자로서 객관적인 '관찰자'로 살아왔다. 유물은 분석의 대상이었고, 역사는 검증해야 할 데이터였다. 그러나 지금, 역사는 그를 데이터로 취급하며 그의 육체를 강제로 열어젖히고 있었다. 그는 이제 관찰자가 아니라, 이천 년을 기다려온 거대한 서사의 '그릇'이 되어버린 것이다.
빗줄기가 굵어지며 민준의 시야를 가렸지만, 그의 감각은 오히려 기이할 정도로 예민해졌다. 수백 미터 밖에서 달려오는 차량의 타이어 마찰 소리, 옆 골목 길고양이의 낮은 울음소리, 그리고 무엇보다 자신을 추격해 오는 '천룡회' 요원들의 절제된 발자국 소리가 층위가 나뉜 지층처럼 선명하게 읽히기 시작했다. 이것은 인간의 감각이 아니었다. 인장이 깨어나며 그의 신경계를 대륙의 야생을 누비던 고대인들의 그것으로 강제 동기화시키고 있었다. 민준은 자신의 팔뚝 위로 솟아오른 핏줄들이 기괴한 청동빛으로 변해가는 것을 보며 극심한 구토감을 느꼈다.
학자로서의 자아는 이 현상을 '환각을 동반한 급성 스트레스 장애'나 '미지의 바이러스 감염'으로 정의하려 애썼다. 하지만 그의 심장 깊은 곳에서 울려 퍼지는 박동은 그것이 '귀환의 신호'임을 단호하게 선언하고 있었다. 민준은 품 안에 넣은 청동 조각이 자신의 살갗과 닿는 부위마다 불꽃이 일어나는 듯한 환각에 사로잡혔다. 그는 더 이상 자신이 알던 '강민준 박사'가 아니었다. 그는 이제 이름도 잊힌 제국의 파편이자, 누군가에게는 반드시 파괴해야 할 살아있는 증거였다. 빗물에 젖은 머리카락 사이로 흘러내리는 것은 눈물인지 빗물인지 알 수 없었지만, 민준은 이를 악물며 자리에서 일어났다. 손바닥의 낙인이 가리키는 방향, 그 본능적인 이끌림이 향하는 곳에 이 고통을 끝낼—혹은 시작할—누군가가 기다리고 있음을 직감했기 때문이었다.
손바닥에서 시작된 진동은 이제 척추를 타고 올라와 민준의 뇌를 직접 타격하고 있었다. 빗물 웅덩이에 처박았던 손을 들어 올리자, 옥빛 낙인에서 뿜어져 나온 희미한 광채가 주변의 빗줄기를 미세하게 비틀고 있었다. 민준은 자신의 호흡이 짐승처럼 거칠어지는 것을 느꼈다. 이상하게도 어두운 골목 안의 모든 사물이 대낮처럼 선명하게 보였다. 낡은 벽돌 사이의 이끼, 버려진 깡통에 맺힌 빗방울, 심지어 공기 중에 섞인 미세한 화약 냄새까지. 그것은 도망자인 민준을 쫓는 '천룡회' 요원들이 사용하는 특수 약품의 냄새였다. 학자로서의 이성이 "이건 불가능하다"라고 외쳤지만, 그의 몸은 이미 적들이 골목 어귀를 돌아 자신을 포위하기까지 정확히 15초가 남았음을 계산해내고 있었다.
"거기 있군, 강 박사."
골목 끝, 검은 우비를 입은 두 사내가 나타났다. 그들은 1장에서 민준의 집을 습격했던 그 살벌한 기운을 풍기고 있었다. 사내 중 한 명이 천천히 손을 재킷 안으로 집어넣었다. 평범한 인간의 속도라면 민준은 그저 그 자리에 얼어붙었겠지만, 지금 민준의 시야 속에서 사내의 움직임은 마치 느릿한 슬로모션처럼 해체되어 보였다. 사내의 가슴팍에 새겨진 천룡회 문양이 민준의 손바닥 낙인과 반응하며 불길하게 출렁였다. 민준은 본능적으로 바닥에 굴러다니던 깨진 벽돌 조각을 집어 들었다. 그 조각을 쥐는 순간, 자신의 손아귀힘이 평소의 몇 배나 강해졌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픽—!
소음기가 장착된 총성이 빗소리에 묻혀 나지막하게 울렸다. 하지만 민준은 이미 몸을 날린 상태였다. 머리로 생각한 것이 아니라, 낙인이 새겨진 손이 먼저 민준의 몸을 밀어낸 듯한 기묘한 감각이었다. 벽을 차고 공중으로 솟구친 민준은 자신도 믿기지 않는 도약력으로 사내들의 머리 위를 가로질렀다. 담장 너머로 몸을 굴린 민준은 전신을 파고드는 짜릿한 전율과 함께 다시 달리기 시작했다. 손바닥의 낙인은 그를 막다른 골목이 아닌, 도심 속 거대한 그림자가 드리워진 박물관 방향으로 이끌고 있었다. 그곳은 민준이 평생을 바쳐 연구해 온 공간이었지만, 이제는 그가 숨겨둔 진실을 확인하기 위한 최후의 성소가 되어 있었다.
추격은 집요했다. 사내들의 발자국 소리가 빗물 소리를 가르며 시시각각 거리를 좁혀왔다. 민준은 가파른 계단을 뛰어오르며 자신의 혈관 속에 흐르는 피가 점점 뜨거워지는 것을 느꼈다. 그것은 단순히 도망자의 공포가 아니었다. 2,000년 전, 대륙을 달리며 적의 숨통을 노리던 고대 전사들의 호전성이 낙인을 타고 그의 의식을 침식하고 있었다. "제발, 멈춰!" 민준은 터져 나오려는 짐승 같은 포효를 억누르며 이를 악물었다. 학자로서 쌓아온 품위와 인격이 거친 본능 아래로 가라앉는 순간, 민준은 박물관의 거대한 철문 앞에 도착했다. 닫힌 문틈 사이로 손바닥을 갖다 대자, 낙인이 다시 한번 붉은 섬광을 내뿜으며 전이되었다. 철컥, 하고 육중한 잠금장치가 스스로 풀리는 기적 같은 소리가 들렸다. 민준은 어둠이 가득한 박물관 내부로 몸을 던지며, 이제 자신이 평생 믿어온 '인간 강민준'의 삶이 영원히 마감되었음을 뼈아프게 실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