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무 냄새와 오래된 기억

수필

by 산들강바람

숲에 들어가면 가장 먼저 느껴지는 것은 냄새다.

눈이 먼저 반응하기 전에, 귀가 소리를 듣기 전에, 코가 먼저 그 세계를 감지한다. 흙냄새, 나무 냄새, 햇빛에 데워진 풀의 향기. 이 냄새들은 조용히, 그러나 단번에 몸속으로 스며든다. 처음에는 그냥 '좋다'는 느낌만 있다. 하지만 걸음을 조금 더 옮기다 보면, 그 좋음의 정체가 차츰 윤곽을 드러낸다. 그것은 새로운 무언가가 아니라, 이미 어딘가에서 맡아본 냄새라는 사실이 밝혀지는 순간이다.


냄새는 기억의 가장 오래된 자물쇠를 연다.

철학자들은 오래전부터 인간의 감각 중 후각이 가장 원시적이라고 말해왔다. 시각이나 청각은 뇌의 한 단계를 거쳐 처리되는 반면, 후각은 뇌의 가장 깊고 오래된 부분, 바로 기억과 감정을 관장하는 영역에 곧장 닿는다고 한다. 과학의 언어로는 그렇게 설명되지만, 숲길을 걷는 사람에게는 그런 설명이 필요 없다. 그저 한 걸음 걸었을 뿐인데, 수십 년 전의 어느 오후가 갑자기 눈앞에 펼쳐지는 경험, 그것으로 충분히 알 수 있다.


나에게는 소나무 냄새가 그렇다.

소나무 숲에 들어서면 으레 어릴 적 소풍이 떠오른다. 봄이면 선생님을 따라 줄지어 걸었던 뒷산, 무거운 가방 속에 들어 있던 김밥 한 줄, 친구들과 나눠 먹던 사탕의 달큼한 맛. 그때는 그 냄새가 특별하다고 생각하지 않았다. 그냥 그날의 공기였고, 그날의 배경이었다. 그런데 어른이 되어 같은 냄새를 맡으면, 그 배경이 통째로 살아 돌아온다. 기억은 냄새 앞에서 갑자기 수줍음을 잃는다.


그래서 숲 산책은 단순한 산책이 아니다. 걸음마다 과거의 어느 순간이 현재와 살짝 겹쳐진다. 시간이 얇아지는 순간이다. 과거와 현재 사이의 두꺼운 벽이 잠시 투명해져, 그 넘어가 어렴풋이 보이는 느낌. 그것은 슬프지 않다. 오히려 따뜻하다. 지나간 것들이 사라지지 않았다는, 여전히 어딘가에 살아 있다는 안도감 같은 것이다.


많은 사람들이 '숲 힐링'을 이야기한다. 나는 숲이 새로운 에너지를 주는 곳이라기보다 이미 자신 안에 있던 것을 다시 꺼내주는 곳이라는 생각을 한다. 오래전 잃어버렸다고 생각했던 평온함, 아무 이유 없이 행복했던 어느 날의 기분, 세상이 아직 크고 신비로워 보이던 눈빛 같은 것들을.


비가 온 뒤의 숲은 특히 그렇다. 빗물을 머금은 흙의 냄새, 페트리코르라고 불리는 그 향기는 사람을 이상하게 무장해제시킨다. 딱딱하게 긴장해 있던 어깨가 스르르 내려앉고, 아주 오래전 아직 세상에 대한 기대가 가득했던 시절의 자신이 슬그머니 고개를 내민다. 그 어린 자신이 지금의 자신에게 조용히 말을 거는 것 같다. 너 왜 그렇게 힘들게 살아,라고.


냄새가 가진 힘은 어쩌면 그것이 언어 이전의 기억을 건드리기 때문일 것이다. 우리가 말을 배우기 전, 세상을 온몸으로 감각하던 시절의 기억들. 냄새를 맡는 순간, 언어가 개입하기 전에 감정이 먼저 도착한다. 설명할 수 없는 편안함, 이름 붙일 수 없는 그리움, 무엇을 그리워하는지조차 모르는 막연한 따뜻함. 숲에서 느끼는 감정들이 유독 언어로 포착되지 않는 이유도 그 때문일 것이다.


오늘도 나는 숲길을 걸었다. 그러다 어느 순간, 어릴 적 학교 운동장 냄새가 떠올랐다. 땀에 젖은 옷자락, 해가 기울어 긴 그림자가 생기던 운동장. 그 기억은 순식간에 왔다가, 나뭇잎 사이로 스며드는 바람처럼 다시 조용히 사라졌다.


숲은 그런 곳이다. 무언가를 가르쳐주거나 새롭게 만들어주는 곳이 아니라, 이미 자신 안에 있던 것들을 잠시 꺼내 보여주는 곳. 냄새가 기억을 깨우고, 기억이 감정을 깨우고, 감정이 지금의 나를 잠시 부드럽게 만드는 곳. 그렇게 숲은 아무 말 없이 우리를 치유한다. 새로운 것을 채워서가 아니라, 잊고 있던 것을 다시 돌려주는 방식으로.


그래서 나는 오늘도, 또 내일도 숲을 걸을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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