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귀향인(歸鄕印) : 잃어버린 대륙의 기억> 소설

by 산들강바람

제3장: 금지된 기록, 비밀의 문


[제3문단 경계의 그림자와 북쪽으로의 첫걸음]


은신처의 무거운 셔터가 올라가자, 차갑고 축축한 새벽 공기가 기다렸다는 듯 내부로 밀려들었다. 민준은 방수 배낭의 끈을 단단히 조이며 마지막으로 자신의 손바닥을 내려다보았다. 옥빛 낙인은 이제 은은한 미열을 내며 북쪽을 향해 나침반 바늘처럼 미세하게 떨리고 있었다. 최 과장은 '남방 수호국'의 특수 장비들을 차치하고, 민준에게는 구식 나침반과 지도, 그리고 추적이 불가능한 보안 통신기를 건넸다.


"이제부터는 디지털의 세계가 아니네. 기록의 길은 오직 피와 직관으로만 열리는 법이니까."


최 과장의 경고는 38세의 현대 학자인 민준에게 서늘한 현실감을 일깨워주었다.


차는 전조등을 끄고 미등에만 의지한 채 서울의 북쪽 외곽을 가로질렀다. 창밖으로 보이는 평화로운 도심의 풍경은 민준이 아는 세상의 마지막 모습처럼 느껴졌다. 옆자리에 앉은 서윤은 고문서 해독본을 품에 꼭 안은 채 긴장한 기색이 역력했다. 그녀 역시 이 길을 선택한 이상, 평범한 연구원으로서의 삶은 끝났음을 알고 있었다. 민준은 지도를 다시 펼쳐 첫 번째 좌표를 확인했다. 경기도 파주와 연천 사이, 민간인 통제선(민통선) 너머의 한 지점이었다. 그곳은 80년 전 증조부가 마지막까지 머물렀던 장소이자, '유령의 길'이 시작되는 입구였다.


"최 과장님, 그곳에 정말로 통로가 남아있습니까? 80년이면 산천이 변하고도 남을 시간인데."


민준의 물음에 최 과장은 백미러로 민준을 응시하며 나직하게 답했다.


"산천은 변해도, 땅이 기억하는 길은 변하지 않네. 특히 그 길은 사람의 눈이 아니라 '인장'을 가진 자의 눈에만 보이도록 설계되었지. 자네 증조부 강휘 어르신이 왜 그곳을 마지막 보루로 삼았는지, 도착하면 알게 될 걸세."


차가 임진강 물줄기를 따라 북상할수록 주변의 불빛은 하나둘 사라지고, 거대하고 검은 산들의 능선이 압도적인 위압감으로 다가왔다. 민준은 가슴속의 양가죽 지도가 자신의 심장 박동에 맞춰 점점 더 뜨거워지는 것을 느꼈다. 그것은 마치 잠들어 있던 거대한 고대의 야수가 주인의 접근을 알아차리고 숨을 고르는 듯한 기묘한 공명이었다.


차는 드디어 민간인 통제소의 삼엄한 바리케이드를 피해, 최 과장만이 알고 있는 비포장 숲길로 접어들었다. 나뭇가지들이 차체를 긁는 소리가 마치 누군가 속삭이는 비명처럼 들려왔다. 민준은 차창 밖 어둠 속에서 수많은 시선이 자신들을 지켜보고 있다는 착각에 빠졌다. 그것은 천룡회의 추격조일 수도, 혹은 이 땅을 지키다 스러져간 이름 없는 망령들의 눈일지도 몰랐다. 민준은 핸들을 꽉 쥐고 있는 최 과장의 뒷모습을 보며 생각했다. 이제 이 선을 넘으면, 자신이 평생 믿어온 '고고학'은 '신화'가 되고, '발굴'은 '전쟁'이 될 것이라고. 민준의 서른여덟 생애 중 가장 길고도 위험한 새벽이 그렇게 밝아오고 있었다.


[제3문단 열리는 빗장, 사선의 경계]


검은 세단이 멈춰 선 곳은 민통선 북방, 거대한 절벽이 앞을 가로막은 막다른 숲이었다. 엔진을 끄자 숲의 정적은 소름 끼칠 정도로 무겁게 내려앉았다. 최 과장은 운전대를 꽉 쥔 채 룸미러로 민준을 응시했다.


"여기서부터는 차로 갈 수 없네. 자네의 낙인이 가리키는 곳으로 가야 해."


민준은 차 문을 열고 밖으로 나섰다. 민감한 후각은 숲의 짙은 흙내음 사이로 스며든 비릿한 금속 냄새를 감지했다. 그것은 적들이 이미 이 근방을 포위하고 있다는 무언의 경고였다. 민준은 오른손바닥을 펼쳤다. 옥빛 낙인은 이제 제멋대로 요동치며 절벽 아래 거대한 이끼 낀 바위 하나를 향해 강렬한 빛을 내뿜고 있었다.


"이곳입니다. 이 바위가 문이에요."


민준이 확신에 찬 목소리로 말하며 바위에 손을 가져다 댔다. 차가운 석재의 감촉이 느껴지는가 싶더니, 낙인과 바위가 맞닿는 순간 고압의 전류가 흐르는 듯한 충격이 민준의 전신을 강타했다. 80년 전 증조부 강휘가 마지막 빗장을 걸며 남겼던 사념이 파도처럼 밀려왔다. '오직 같은 피를 가진 자만이 이 길을 열 수 있으리라.' 민준의 손바닥에서 시작된 옥빛 광채가 거미줄처럼 바위 표면을 타고 번져나갔다. 그러자 아무런 틈새도 보이지 않던 거대한 암벽이 마치 유령처럼 흐릿해지며, 성인 한 명이 간신히 지나갈 수 있는 어둡고 긴 동굴의 입구를 드러냈다. 80년 동안 지형지물 속에 완벽히 은폐되어 있던 '유령의 길'이 비로소 그 입을 벌린 것이다.


"박사님, 저길 보세요!"


서윤이 가리킨 곳은 그들이 지나온 숲의 능선이었다. 수십 개의 붉은 광학 조준경 불빛이 숲의 어둠을 찢으며 민준 일행을 향해 쏟아지고 있었다. 픽—! 픽—! 소음기를 통과한 탄환들이 민준의 발치에 박히며 마른 흙을 튀겼다.


"어서 들어가!"


최 과장이 품속에서 권총을 꺼내 응사하며 소리쳤다. 민준은 서윤의 손을 꽉 잡고 어둠이 일렁이는 동굴 속으로 몸을 던졌다. 등 뒤로 천룡회 요원들의 거친 고함과 금속성 파열음이 들려왔지만, 민준이 경계선을 넘는 순간 동굴 입구는 다시 한번 옥빛 섬광과 함께 흔적도 없이 폐쇄되었다.


동굴 안은 지독하리만큼 고요했다. 외부의 총성과 빗소리는 단숨에 차단되었고, 오직 민준의 손바닥에서 뿜어져 나오는 희미한 광채만이 습기 찬 벽면을 비추고 있었다. 민준은 바닥에 주저앉아 거칠게 숨을 몰아쉬었다. 이제 그는 확실히 깨달았다. 자신이 방금 넘은 것은 단순한 물리적 국경이 아니라, 현대의 상식이 통하지 않는 '신화의 영역'으로 들어가는 금기된 문이었다는 사실을. 민준은 품 안의 지도를 다시 한번 확인했다. 지도는 이제 백두산 너머, 광활한 요동 벌판을 향해 새로운 길을 길게 그려내고 있었다. 서른여덟의 고고학자 강민준의 일상은 그렇게 영원히 닫혔고, 이제 그는 잃어버린 제국의 심장을 향해 한 걸음을 더 내디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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