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귀향인(歸鄕印) : 잃어버린 대륙의 기억> 소설

by 산들강바람

제7장: 단절(斷絶)의 심연(深淵)


[제1문단 : 비도(秘道)의 냉기와 무너진 위안]


파수꾼이 벽면의 부조 속으로 흔적도 없이 스며들자, 비도(秘道) 내부에는 아까보다 훨씬 더 시리고 날카로운 **냉기(冷氣)**가 내려앉았다. 강 박사는 그간 이 지상의 햇살 아래 발을 딛고 살아온 모든 날을 통틀어 이토록 뼛속까지 파고드는 고독한 한기를 느껴본 적이 없었다. 손바닥의 낙인은 파수꾼의 검과 맞부딪혔던 열기를 여전히 머금은 채 맥동하고 있었으나, 가슴팍에 품은 청동거울은 이제 차가운 얼음 덩어리처럼 변해 그의 심장을 짓눌렀다. 이것은 유물을 찾았다는 환희가 아니라, 감당할 수 없는 거대한 역사의 **업보(業報)**를 짊어진 자가 느껴야 할 비정한 **중압감(重壓感)**이었다.


"희생이라니... 대체 무엇을 더 내놓으라는 거야?"


서윤의 나직한 흐느낌이 젖은 바위벽에 부딪혀 공허하게 되돌아왔다. 그녀는 이제 강 박사의 곁에 서 있는 것조차 두려운 듯, 벽면의 이끼 낀 돌출부를 붙잡고 간신히 몸을 지탱하고 있었다. 상아탑의 안온함 속에서 고고학을 탐구하며 그려왔던 세상은 이토록 잔혹하지 않았다. 그녀의 신념 속에서 고고학은 찬란한 고대 국가의 부활이었지, 동료의 목숨이나 영혼을 담보로 하는 이런 **참혹(慘酷)**한 제례가 아니었다. 서윤에게 이 비도는 이제 탐구의 대상이 아니라, 자신들의 인간성을 하나씩 갉아먹는 거대한 **식인(食人)**의 공간으로 변모해 있었다. 그녀의 눈에 비친 강 박사는 더 이상 존경하던 선배 학자가 아니라, 알 수 없는 신의 계시를 이행하는 서늘한 **집행자(執行者)**처럼 보였다.


최 과장은 권총을 홀스터에 거칠게 집어넣었으나, 그의 손은 여전히 살기등등하게 휘어져 있었다. 그는 파수꾼이 사라진 허공을 뚫어지게 노려보며 침을 뱉었다.


"강 박사, 저 괴물이 한 말 들었지? 희생이라고 했어. 난 내 부하들을 사지에 남겨두고 여기까지 온 놈이야. 더 이상 내놓을 희생 따위는 없단 말이다!"


최 과장의 목소리는 분노로 떨리고 있었지만, 그 밑바닥에는 정체 모를 힘에 의한 **무력감(無力感)**과 공포가 짙게 깔려 있었다. 군인으로 복무하며 전장에서 겪었던 숱한 위기 속에서도, 보이지 않는 운명과 **조응(照應)**해야 하는 이 상황만큼은 도저히 적응할 수 없는 지독한 **모멸(侮蔑)**이었다.


강 박사는 두 사람의 날 선 반응을 묵묵히 받아내며 다시 거울을 치켜들었다. 파수꾼이 사라진 자리 뒤로, 거울의 옥빛이 닿자 비로소 보이지 않던 좁고 가파른 계단이 아래로 뻗어 나가는 것이 보였다. 그 계단은 마치 거대한 짐승의 목구멍처럼 깊은 어둠 속으로 이어져 있었고, 그곳에서 흘러나오는 공기는 비릿한 피 냄새와 오래된 먼지의 **악취(惡臭)**를 머금고 있었다. 강 박사는 이성을 최고의 가치로 삼고 정진해 왔던 시간이 서서히 마모되어 가는 것을 느꼈다. 이제 그에게 남은 것은 오직 거울이 이끄는 대로, 이천 년 전 고조선의 선조들이 숨겨둔 그 마지막 **비원(悲願)**을 향해 걸어가는 것뿐이었다.





[ 칠흑(漆黑)의 계단과 흩어지는 연대(連帶)]


강 박사는 첫 번째 계단을 딛는 발바닥의 감촉에 집중했다. 그것은 남쪽의 박물관에서 흔히 보던 매끄럽게 가공된 석재가 아니었다. 수천 년간 인간의 발길을 거부하며 습기를 머금은 돌은 마치 살아있는 짐승의 혀처럼 질척이고 차가웠다. 수십 년간 낡은 사료(史料)들과 씨름하며 쌓아온 지식의 탑은 이 어둠 속에서 아무런 등불이 되어주지 못했다. 그가 품은 청동거울만이 간헐적인 맥동(脈動)을 일으키며 계단 아래의 심연을 옥빛으로 짧게 비출 뿐이었다. 그 빛이 닿는 곳마다 벽면에는 기이한 형상의 부조들이 일그러진 표정으로 서 있었는데, 그것은 고조선의 멸망 당시 스스로 어둠 속에 침잠(沈潛)하기를 선택했던 유민들의 **원한(怨恨)**처럼 느껴졌다.


"박사님, 제발 속도를 좀 줄이세요. 저 어둠 속에 무엇이 도사리고 있을 줄 알고요!"


서윤의 날 선 목소리가 강 박사의 등에 꽂혔다. 그녀는 이제 공포를 넘어선 지독한 **회의감(懷疑感)**에 사로잡혀 있었다. 실증과 논리만을 정답으로 믿고 정진했던 학문적 자부심은 이미 파수꾼의 청동검 앞에서 산산조각 났다. 그녀에게 이 지하 계단은 역사의 현장이 아니라, 이성(理性)이 마비된 자들이 스스로를 파괴하러 들어가는 **도살장(屠殺場)**과 같았다. 그녀는 강 박사의 뒷모습을 보며 그가 정말로 자신들과 같은 인간인지 의심하기 시작했다. 거울의 빛을 받는 그의 옆얼굴은 이미 산 자의 온기를 잃고, 고대 유적의 석상처럼 차갑고 **준엄(嚴峻)**하게 굳어 있었기 때문이다.


최 과장은 서윤의 공포를 무시한 채, 권총을 쥔 손바닥에 배어 나오는 땀을 바지에 닦아냈다. 그는 강 박사가 내딛는 걸음 하나하나를 매서운 눈초리로 감시했다. 군인으로서 그가 전장에서 목격했던 숱한 죽음과 생존의 법칙은 이 비도 안에서는 철저히 무력화되었다. 총탄이 휘고 귀신같은 파수꾼이 나타나는 공간에서, 그가 유일하게 신뢰할 수 있는 것은 자신의 감각뿐이었지만 그 감각마저도 이 지독한 냉기 앞에서는 무뎌져 갔다.


"강 박사, 당신이 말한 그 '희생'이라는 단어가 자꾸 거슬려. 만약 저 밑바닥에 도달했을 때, 그 보상으로 우리 중 누군가의 목숨을 요구한다면 난 주저 없이 이 거울을 부숴버릴 거야. 내 임무는 유물을 남쪽으로 가져가는 것이지, 당신의 그 해괴한 종교적 제례에 동참하는 게 아니란 말이다."


최 과장의 비정한 **독백(獨白)**은 계단을 따라 울려 퍼지며 묘한 공명을 일으켰다. 그것은 단순히 강 박사를 향한 경고가 아니었다. 스스로의 불안을 감추기 위한 처절한 **자기 암시(自己暗示)**에 가까웠다. 하지만 강 박사는 대답하지 않았다. 아니, 대답할 수 없었다. 계단을 내려갈수록 거울의 진동은 그의 심장 박동과 완벽하게 일치하기 시작했고, 그의 머릿속에는 잊힌 제국의 마지막 왕이 남겼을 법한 웅장하고도 **처참(處慘)**한 목소리들이 소용돌이치고 있었기 때문이다.


계단은 끝없이 이어졌고, 공기는 점점 더 희박해졌다. 강 박사는 이성을 최고의 가치로 삼고 정진해 왔던 젊은 날의 오만이 얼마나 덧없는 것이었는지 절감했다. 역사는 책 속에 박제된 활자가 아니라, 이토록 비릿하고 축축한 지하의 혈맥(血脈) 속에 살아 숨 쉬며 후손의 생명력을 제물로 요구하고 있었다. 그는 파수꾼이 사라지며 남긴 "희생"이라는 말이 자신의 육신만을 뜻하는 것이 아님을 직감했다. 그것은 어쩌면 **평생을 바쳐 구축해 온 자아(自我)**의 소멸일지도 몰랐다.


마침내 계단이 끝나고 넓은 석실(石室)이 나타났을 때, 거울의 옥빛은 폭발적으로 광채를 뿜어내며 공간을 가득 채웠다. 서윤은 눈을 가리며 주저앉았고, 최 과장은 본능적으로 사격 자세를 취했다. 강 박사는 눈앞에 펼쳐진 광경에 숨이 멎는 듯한 충격을 받았다. 그곳에는 거대한 청동 기둥 세 개가 삼각형의 구도를 이루며 서 있었고, 그 중앙에는 형체를 알 수 없는 거대한 **형상(形象)**이 쇠사슬에 묶인 채 허공에 떠 있었다. 그것은 고조선이 멸망하던 날, 선조들이 마지막까지 지키려 했던 민족의 **근원(根源)**이자, 이 소설이 마주해야 할 가장 참혹한 **비극(悲劇)**의 시작이었다.



작가의 이전글<귀향인(歸鄕印) : 잃어버린 대륙의 기억> 소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