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귀향인(歸鄕印) : 잃어버린 대륙의 기억> 소설

by 산들강바람

[제2문단 삼정(三鼎)의 봉인(封印)과 형상화된 비극]


석실 중앙으로 뻗어 나간 청동거울의 옥빛은 비로소 그 거대한 형상의 정체를 수면 위로 끌어올렸다. 세 개의 거대한 청동 기둥은 단순한 지지대가 아니었다. 그것은 마치 하늘과 땅, 그리고 인간의 세계를 강제로 묶어두려는 듯 기괴한 각도로 뒤틀린 채 **삼각(三角)**의 진(陣)을 치고 있었고, 기둥 표면에는 이천 년 전의 장인들이 새겨 넣은 수만 마리의 도마뱀과 두꺼비들이 살아 움직이는 듯 꿈틀거렸다. 대학 강단에서 정형화된 고대 유물 도판만을 분석하며 평온한 연구자의 삶을 영위해 왔던 세월 동안, 강 박사는 단 한 번도 역사가 이토록 **불길(不吉)**하고 생생한 촉감을 가졌을 것이라 상상해 본 적이 없었다. 기둥의 청동 녹은 마치 굳어버린 선혈처럼 거울의 빛을 흡수하고 있었고, 그곳에서 뿜어져 나오는 서늘한 **기운(氣運)**은 인간의 체온을 순식간에 앗아가며 석실 내부를 영원한 동토(凍土)로 만들고 있었다.


허공에 쇠사슬로 묶인 채 매달린 그 형상은, 사람의 몸을 하고 있었으나 인간의 것이라 믿기 힘든 거대한 **위압감(威壓感)**을 뿜어냈다. 그것은 미라처럼 바싹 마른 고대의 사제(司祭) 같기도 했고, 혹은 멸망하던 날의 저주를 온몸으로 받아낸 순교자(殉嬌者) 같기도 했다. 쇠사슬이 팽팽하게 당겨질 때마다 금속끼리 부딪히며 내는 비명 소리는 강 박사의 뇌리를 난도질했다. 먼지 쌓인 고서의 행간을 더듬으며 잊힌 혈맥을 추적해 온 시간은 이 압도적인 실체 앞에서 한낱 종이 조각처럼 가벼워졌다. 강 박사는 거울을 쥔 손바닥이 터져나갈 듯한 고열(高熱)에 휩싸이는 것을 느꼈다. 낙인은 이제 붉은 선혈을 머금은 듯 섬뜩하게 빛나며, 눈앞의 형상과 자신의 생명력이 하나로 연결되어 있음을 강제로 **주입(注入)**시키고 있었다.


"저게... 저게 대체 뭡니까? 사람이 저렇게 오랫동안 매달려 있을 수는 없어요. 저건 괴물입니다, 박사님!"


서윤은 이제 강 박사의 뒤에 숨는 것조차 포기한 채, 입을 틀어막고 바닥에 무너져 내렸다. 실증적인 데이터와 유물 발굴의 논리만을 정답으로 믿고 학문적 성취에 매진했던 과거는 이미 회복 불가능한 수준으로 파괴되어 있었다. 그녀에게 저 형상은 연구의 대상이 아니라, 자신의 영혼을 밑바닥부터 갉아먹는 **악몽(惡夢)**의 현신이었다. 서윤은 자신이 믿어왔던 고고학이라는 학문이 얼마나 얕은 수면 위를 찰랑거리던 유희였는지 뼈저리게 통감했다. 이곳의 어둠은 그녀가 아는 그 어떤 역사적 상식으로도 설명되지 않는, 태고의 **광기(狂氣)**와 슬픔이 뒤섞인 채 소용돌이치고 있었다. 그녀는 차가운 돌바닥을 긁으며 뒤로 물러났지만, 석실을 가득 채운 그 존재의 그림자는 이미 그녀의 이성(理性)을 완전히 집어삼키고 있었다.


최 과장은 권총을 양손으로 꽉 쥔 채, 형상의 심장부를 정확히 겨냥했다. 그의 눈은 생존을 향한 처절한 본능으로 번들거렸다. 최전방 비무장지대에서 죽음의 냄새를 일상처럼 맡으며 단련된 그의 감각은, 지금 이 공간이 내뿜는 기운이 단순한 시체의 부패열이 아님을 경고하고 있었다. 그것은 수천 년간 억눌려온 거대한 폭발 직전의 에너지였다.


"강 박사, 내 경고했지. 저건 당신이 감당할 수 있는 유물이 아니야. 내 눈에는 저게 우리를 집어삼키려는 함정으로밖에 안 보여. 당신이 한 발짝이라도 더 다가가는 순간, 나는 저 형상의 머리통을 날려버릴 거다. 이건 임무가 아니라 **생존(生存)**의 문제야!"


최 과장의 목소리는 갈라지고 떨렸지만, 그 속에 담긴 비정한 **결의(決意)**만은 날카로웠다. 그는 강 박사가 저 형상과 모종의 교감을 나누고 있다는 사실을 직감적으로 눈치채고 있었다. 거울의 빛이 형상의 가슴팍에 닿을 때마다, 강 박사의 호흡이 그와 일치하며 거칠어지는 광경은 최 과장에게 지독한 **이질감(異質感)**과 배신감을 안겨주었다. 최 과장에게 역사는 지키는 것이 아니라 극복하고 살아남아야 할 장애물이었고, 그 장애물이 살아 움직이는 순간 그는 주저 없이 방아쇠를 당길 준비가 되어 있었다.


강 박사는 최 과장의 총구와 서윤의 흐느낌을 뒤로한 채, 홀린 듯 형상을 향해 발을 내디뎠다. 이성적인 사고를 최고의 가치로 삼고 안온하게 정진해 왔던 시간들은 이제 기억의 저편으로 사라지고, 오직 핏속에 흐르는 고대 선조들의 부름만이 그의 온몸을 지배했다. 형상의 감겨진 눈꺼풀 사이로 미세한 경련이 일어났고, 그 순간 석실 전체가 거대한 심장처럼 웅웅 거리며 **진동(振動)**하기 시작했다. 강 박사는 직감했다. 저 형상은 고조선이 남긴 단순한 유물이 아니었다. 그것은 민족의 혈맥이 끊기려 할 때마다 스스로를 제물로 바쳐 역사의 숨통을 이어온, 마주해야 할 가장 거대하고도 **참혹(慘酷)**한 '희생'의 실체였다.


[ 환청(幻聽)의 인(印)과 세 번째 신물]


강 박사가 쥔 청동거울에서 뿜어져 나온 옥빛이 허공에 매달린 형상의 가슴팍을 관통하자, 석실의 정적은 기이한 금속성 울림으로 산산조각 났다. 그것은 귀로 들리는 소리가 아니라, 척추를 타고 뇌수까지 직접 전달되는 날카롭고도 청아한 **명응(鳴應)**이었다. 먼지 쌓인 고서의 행간을 더듬으며 잊힌 혈맥의 흔적을 추적해 온 시간 동안, 강 박사는 단 한 번도 역사가 이토록 입체적인 **진동(振動)**으로 자신에게 말을 걸어올 것이라 생각지 못했다. 거울의 표면에는 이제껏 보지 못한 기이한 기하학적 문양들이 소용돌이치기 시작했고, 그 중심부에서 보이지 않는 실체가 타종(打鐘)하듯 석실 전체를 흔들었다.


"이 소리... 들립니까? 이건 단순한 공명(共鳴)이 아니야."


강 박사의 목소리는 경외심에 젖어 가늘게 떨렸다. 형상의 가슴에서 뿜어져 나온 빛은 공중에서 흩어지지 않고 하나의 구(球)를 형성하더니, 그 안에서 희미한 환영을 맺기 시작했다. 그것은 거울과 칼의 기운을 하나로 묶어줄 마지막 열쇠, 즉 **청동방울(靑銅鈴)**의 형상이었다. 방울의 표면에는 고구려의 삼족오(三足烏)와 부여의 신수(神獸)들이 어우러져 있었고, 그것이 한 번 흔들릴 때마다 석실 벽면의 부조들이 살아 움직이며 북쪽을 향해 일제히 머리를 숙였다. 실증과 논리만을 정답으로 믿고 상아탑의 상식 안에서 정진했던 학자로서 서윤은 그 비현실적인 광경 앞에 입을 벌린 채 얼어붙었다. 그녀에게 고고학은 유물의 연대를 측정하는 작업이었으나, 지금 눈앞의 광경은 역사가 스스로 자신의 **심장(心臟)**을 꺼내 보여주는 장엄한 제례였다.


최 과장은 권총을 쥔 채 사방을 경계하며 잇새로 욕설을 내뱉었다. 최전방 비무장지대의 화약 냄새 속에서 죽음의 냄새를 맡으며 단련된 그의 감각은, 이 기이한 소리가 단순한 환청이 아님을 직감하고 있었다. 소리가 울릴 때마다 그의 발밑에 고인 물웅덩이가 기하학적인 파문을 일으켰고, 그것은 마치 거대한 존재가 북쪽 지평선 너머에서 자신들을 부르는 듯한 **압박감(壓迫感)**으로 다가왔다.


"강 박사, 저 형상이 보여주는 게 뭐야? 저 방울이라는 거, 대체 어디에 있는 거냐고! 저 소리가 내 머릿속을 찢어놓을 것 같단 말이다!"


최 과장의 포효에 응답하듯, 거울 속의 환영은 점차 구체적인 풍경으로 변해갔다. 만년설에 뒤덮인 준봉(峻峰)과 끝을 알 수 없이 깊은 원시림, 그리고 그 숲의 심장부에서 솟아오른 기이한 형태의 제단이 비춰졌다. 그것은 아직 구체적인 지명으로 드러나지는 않았으나, 대륙의 기운이 모이는 요동(遼東) 혹은 **만주(滿洲)**의 어딘가임을 암시하고 있었다. 거울의 옥빛은 방울의 단서를 투영한 뒤, 강 박사의 손바닥 낙인에 강렬한 고열을 남기며 다시 갈무리되었다. 강 박사는 숨을 헐떡이며 무릎을 꿇었다. 이성을 최고의 가치로 삼고 안온한 삶을 영위해 왔던 과거의 편안함은 이제 영원히 돌아갈 수 없는 피안(彼岸)의 기억이 되었다.


"방울은... 아직 깨어나지 않았습니다. 칼과 거울이 만나는 순간, 그 공명이 북방의 대륙을 깨우기 시작했어요. 우리가 가진 이 두 개의 유물은 저 방울을 부르는 **매개체(媒介體)**일 뿐입니다."


강 박사는 떨리는 손으로 거울을 고쳐 쥐었다. 형상을 묶고 있던 쇠사슬들이 기이하게 뒤틀리며 바닥으로 떨어져 내렸고, 석실의 북쪽 벽면에는 이전에 없던 미세한 틈새가 벌어지며 차가운 삭풍(朔風)이 새어 나오기 시작했다. 그것은 국경 너머 대륙에서 불어오는, 피와 흙의 냄새를 머금은 바람이었다. 서윤은 그 바람 속에서 자신이 평생 부정해 왔던 초자연적인 **숙명(宿命)**의 무게를 느꼈다.


최 과장은 비정한 결의와 함께 권총의 안전장치를 확인했다. 방울에 대한 단서는 얻었으나, 그것은 동시에 더 처참한 사투의 시작을 의미했다. 북한군 수색대의 발소리가 비도 입구까지 육박해오는 일촉즉발의 상황. 강 박사는 고개를 들어 세 사람의 눈을 차례로 응시했다. 이제 이 석실은 안식처가 아니라, 그들을 더 거대한 **심연(深淵)**으로 밀어 넣는 출발점이 될 것이었다. 방울에 대한 갈망과 대륙의 부름이 석실의 어둠 속에 짙게 깔리며, 세 사람의 그림자는 기이하게 엉킨 채 비도의 더 깊은 어둠 속으로 길게 늘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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