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름비 속을 걷다

계절이 숨결에 대하여

by 산들강바람


한여름 오후, 갑작스럽게 쏟아지는 소나기는 도시의 리듬을 단숨에 바꿔버린다. 어두운 회색빛 구름이 하늘을 덮고, 바닥을 두드리는 빗방울이 생기를 불어넣는다. 늘어져 있던 공기는 순식간에 긴장감을 띠고, 사람들은 우산을 찾거나 건물 안으로 뛰어든다. 그러나 그 순간, 나는 비를 피해 달아나는 대신 발걸음을 멈춘다. 여름비는 언제나 나를 멈춰 세운다.

뙤약볕 속의 더위는 잔인하다. 몸을 감싼 공기마저 무거워지고, 숨이 턱 막히는 나날이 이어진다. 그러나 그 더위 속에서도 삶은 계속되고, 사람들은 땀을 흘리며 웃는다. 아이들은 얼음물에 발을 담그며 장난을 치고, 시장의 상인들은 손수건으로 이마를 닦으며 손님을 맞는다. 여름의 더위는 고통이지만 동시에 생동감이다. 삶을 태우는 불꽃같다.

그러던 어느 날, 바람이 분다. 지독한 더위 속에 불어오는 바람은 마치 은총 같다. 시멘트 바닥에 떨어진 은행나뭇잎이 바람에 휘날리고, 창문 틈새로 들어오는 바람은 한 모금의 청량함을 안겨준다. 바람은 여름 속의 숨통이다. 무겁고 눅눅한 공기를 잠시 밀어내며, 계절의 결을 바꾸어 놓는다.

그리고 다시, 소나기가 찾아온다. 짧지만 격렬한 비는 마치 세상의 모든 감정을 쏟아내는 듯하다. 분노 같고, 눈물 같고, 그리움 같다. 나는 그 비를 맞으며 걷는다. 우산은 필요 없다. 이 비는 마음을 씻어내고, 생각을 정리해 주고, 나를 새로운 순간으로 데려다줄 테니까.

여름은 숨이 막힐 정도로 진하고, 눈부시게 찬란하고, 때로는 소리 없이 슬프다. 여름비와 소나기, 더위와 바람은 단지 기후의 변주가 아니다. 그것은 삶의 어떤 단면이고, 우리가 살아가는 시간 속의 감정이다. 그 속에서 우리는 잠시 멈추고, 되새기고, 또다시 나아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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