술에 대한 기억 1
그날, 나는 세상을 넘겼다
고등학교 2학년. 교복은 아직 몸에 익지 않았고, 어른들의 말은 여전히 낯설었다. 그 시절의 나는, 규칙과 질서 속에서 조심스럽게 살아가는 평범한 학생이었다. 하지만 그날, 나는 선배들의 부름을 받았다. 그 자리는 단순한 모임이 아니었다. 후배로서의 복종을 강요받는, 말로는 ‘전통’이라 불리는 부당한 요구의 자리였다.
선배들은 우리에게 말없이 압박을 주었다. 웃으며 건넨 말속에는 권위가 숨어 있었고, 그 권위는 우리를 시험하려 했다. 나는 그 요구를 받아들이지 않았다. 아니, 받아들일 수 없었다. 그것은 단순한 반항이 아니라, 나 자신을 지키기 위한 정당한 선택이었다. 그 순간, 나는 후배라는 이름 아래 침묵하지 않기로 했다. 그 선택은 곧장 나를 선배들의 눈 밖에 나게 했고, 그 자리에서 나는 조용히 밀려났다.
그날 저녁, 친구들이 나를 불렀다. 집 근처의 허름한 포장마차. 붉은 천막 아래, 낡은 플라스틱 의자에 앉아 우리는 말없이 서로를 바라보았다. 그들은 내게 소주를 따라주었다. 그전까지 나는 막걸리만 마셔봤다. 부드럽고 달큼한 맛, 어른 흉내를 내기에 적당했던 술. 하지만 그날은 달랐다. 투명한 병 속에 담긴 소주는, 마치 어른들의 세계를 상징하는 듯했다.
나는 조심스럽게 잔을 들었다. 그리고 그 쓰디쓴 액체가 목덜미를 타고 넘어가는 순간, 나는 단지 술을 넘긴 게 아니었다. 나는 세상을 넘겼다. 그 한 모금은 어른들의 세계로 들어가는 입구였고, 동시에 아이였던 나를 뒤로 남기는 출구였다. 쓰디쓴 맛은 낯설었지만, 그 낯섦이 이상하게 익숙하게 느껴졌다. 마치 오래전부터 기다리고 있었던 통과의례처럼.
그날의 소주는 위로였다. 친구들의 침묵은 지지였고, 그 밤의 공기는 자유였다. 우리는 말없이 서로를 이해했고, 나는 그 순간 처음으로 ‘나’를 지켜낸 기분이 들었다. 그 쓰디쓴 맛은 지금도 기억난다. 그것은 단지 술의 맛이 아니라, 내가 처음으로 세상과 맞서며 느낀 감정의 맛이었다.
그리고 그날 이후, 나는 세상을 조금씩 알아보기 시작했다.
선배들의 권위가 언제나 옳은 것은 아니라는 것, 전통이라는 이름 아래 숨겨진 폭력이 있다는 것, 그리고 그 폭력에 맞서는 것이 결코 나약함이 아니라는 것. 나는 사람들의 말보다 그들의 눈빛을 보게 되었고, 웃음 속에 숨겨진 의도를 읽기 시작했다. 세상은 생각보다 복잡했고, 어른이 된다는 건 단지 나이를 먹는 게 아니라, 그 복잡함을 견디는 일이었다.
그날 이후로 나는 더 조심스러워졌지만, 동시에 더 단단해졌다. 누군가의 말에 쉽게 휘둘리지 않게 되었고, 내 선택에 책임을 지는 법을 배웠다. 그리고 그 쓰디쓴 소주의 맛은, 여전히 내 안에 남아 있다. 그것은 내가 처음으로 세상을 알아보기 시작한 날의 기억이자, 나를 나답게 만든 순간의 흔적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