삶이 단단해지는 시간
한여름의 햇살은 피할 수 없을 만큼 뜨겁게 내려앉았다. 밭두렁에 앉아 호미를 잡으면, 금세 손바닥이 뜨겁게 달아오른다. 잡초는 하룻밤 사이에도 기세 좋게 자라나, 마치 주인 행세라도 하듯 밭을 뒤덮으려 한다. 그 풀들을 하나하나 뽑아내는 일은 끝이 없고, 조금만 방심하면 다시 고개를 내민다. 하지만 그 지루하고 반복되는 노동 속에서도 이상하게 마음은 고요해진다.
허리를 굽히고 호미를 휘두를 때마다 이마에서는 굵은 땀방울이 떨어진다. 그 땀은 흙에 스며들어 자국조차 남기지 않지만, 내 안에서는 작은 승리의 흔적으로 남는다. 한 줄, 두 줄, 정리된 고랑을 바라보면 이상한 뿌듯함이 찾아온다. 남들이 보기엔 그저 풀을 매단 흔적일 뿐이지만, 나에게는 하루의 의미와 노력이 고스란히 쌓여 있는 결과다.
김을 매다 보면 자연스레 어린 시절이 떠오른다. 아버지의 넓은 어깨너머로 보이던 끝없는 밭, 함께 김을 매던 형제들의 웃음소리, 그리고 어머니가 멀리서 불러주던 점심밥상. 그 기억은 한여름의 열기보다 더 뜨겁게 가슴을 데운다. 그 시절에는 힘겹다고만 생각했지만, 지금 돌이켜보면 그 시간들이야말로 내 삶의 뿌리를 단단히 내려준 순간이었다.
삶은 밭과 다르지 않다. 우리가 뿌린 씨앗을 가꾸기 위해서는 잡초를 뽑아내야 한다. 잡초를 내버려 두면 금세 밭을 덮듯, 마음속 불필요한 욕심과 게으름도 금세 삶을 잠식한다. 그래서 김을 매는 시간은 단순한 노동이 아니라, 내 마음을 정리하는 수행의 시간이 된다. 잡초를 뽑으며 나는 묻는다. 내 안의 잡초는 무엇인가?
노을이 깔린 저녁, 하루 종일 손을 놀린 밭을 돌아보면 허리는 쑤시고 손바닥은 거칠어졌지만, 마음만큼은 이상하게도 가벼워져 있다. 흙냄새가 묻은 옷은 하루의 기록이고, 반짝이는 땀방울은 고생의 증거이자 기쁨의 보상이다.
나는 안다. 땀을 흘려 밭을 가꾼다는 것은 결국 내 삶을 가꾸는 일이라는 것을. 밭은 결코 배신하지 않는다. 오늘 흘린 땀방울은 내일의 곡식이 되고, 내일의 평안이 된다. 그렇게 흙과 땀은 나를 키우고, 내 삶을 조금씩 단단하게 만들어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