언덕에서
언덕 너머에서 불어오는 바람은 언제나 조용히 다가온다. 그것은 소리 없이, 그러나 분명하게 나를 멈추게 한다. 땀방울이 이마를 타고 흐르던 어느 여름날, 그 바람이 내게 닿았을 때 나는 괜스레 하늘을 올려다보았다. 이유는 없었다. 그저 마음이 끌렸다. 마치 오래된 기억이 바람에 실려 온 듯, 그 순간 나는 나를 잊고 하늘을 바라보았다.
하늘은 그날따라 유난히 깊었다. 구름은 느리게 흘렀고, 햇살은 바람에 흔들리며 나를 감쌌다. 나는 그저 서 있었다. 바람은 내 몸을 감싸며 땀을 식혀주었고, 그 순간 나는 내가 살아 있다는 것을 느꼈다. 숨을 쉬고, 느끼고, 생각하고 있다는 단순한 사실이 그렇게도 선명하게 다가온 건 오랜만이었다.
발은 땅을 딛고 있었다. 단단한 흙, 차가운 돌, 그리고 그 위에 선 나. 그 위에 선 나는 무게가 있었다. 존재했다. 하지만 머리 위로 펼쳐진 하늘은 너무 멀고, 너무 자유로웠다. 구름들은 바람을 따라 흘러갔다. 아무런 저항도 없이, 그저 흘러갔다. 나는 그 사이에 있었다. 움직이지 않는 발과, 멈추지 않는 구름 사이. 그 간극 속에서 나는 나를 바라보았다.
왜 나는 이 자리에 서 있는가. 왜 나는 흘러가지 못하고, 딛고 있어야만 하는가. 바람은 아무 말도 하지 않았지만, 그 침묵이 오히려 더 큰 위로였다. 말보다 더 깊은 위로. 그것은 마치 오래된 친구가 아무 말 없이 옆에 앉아주는 느낌이었다.
나는 흐르고 싶었다. 구름처럼, 바람처럼. 무게 없이, 방향 없이. 하지만 나는 땅을 딛고 있었다. 그것이 삶이었다. 무게를 가진 존재로서, 이곳에 서 있는 것. 흘러가고 싶지만, 머물러야 하는 것. 그 사이에서 나는 나를 이해하려 했다.
바람은 지나갔다. 구름은 흘러갔다. 나는 여기에 남았다. 그리고 그 모든 것을 바라보며, 나는 조용히 숨을 쉬었다. 그것만으로도 충분하다고, 오늘은 그렇게 믿어보기로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