창밖의 세상
낮은 창가에 쌓인 말들
창밖의 빛은 언제나 약속처럼 온다. 새벽이면 어제의 어둠을 밀어내고, 한낮이면 손바닥을 데우듯 따사롭게 내려앉고, 해질 무렵이면 금빛과 푸른 그림자를 번갈아 펼쳐 보인다. 나는 그 빛을 창가에 앉아 기다린다. 기다림은 언제나 감각을 예민하게 한다. 작은 먼지 입자까지도 드라마를 만든다. 빛은 먼지와 만나서 잠깐 동안만 반짝이고, 그 반짝임은 내 마음속 오래된 문을 한 장씩 연다.
어떤 날에는 빛이 너무 선명해서 숨을 쉴 수 없을 것 같고, 다른 날에는 너무 희미해서 내가 있는지 없는지 구분조차 하기 어렵다. 빛의 상태에 따라 내 하루의 온도와 색이 달라진다. 우리가 사랑이라고 부르는 것도, 그리움이라고 부르는 것도, 결국은 빛의 농담처럼 다가온다. 어느 순간 환하게 드러나고, 어느 순간 스며들어 사라진다. 나는 그 경계에서 서성인다. 말이 소용없을 때는 글로, 글이 소용없을 때는 그냥 침묵으로 맞선다. 침묵은 내게 가장 솔직한 대답을 준다.
나는 사람들 사이의 말보다, 말들이 놓치고 간 표정과 손짓을 더 오래 기억한다. 식탁 위에 놓인 컵의 모서리, 버스 정류장에 남은 겨우내의 낙엽, 전화 통화가 끝난 뒤 조용해진 선반의 공기, 그것들은 말이 해주지 못한 이야기를 한다. 사람은 흔히 말로 모든 것을 설명하려 하지만, 말은 늘 무언가를 외면한다. 그 무언가가 결국은 우리의 삶을 이루는 진실일 때가 많다. 그래서 나는 글을 쓸 때, 말하지 않은 부분에 귀를 기울인다. 숨을 멈춘 곳, 말을 삼킨 곳, 그곳에서 이야기는 더 깊어진다.
날씨가 변하면 사람들은 먼저 옷을 고치고, 그다음으로 마음을 정리한다고 한다. 하지만 옷을 갈아입는 일은 곧 끝나지만, 마음을 정리하는 일은 끝이 없다. 사람의 마음은 늘 계절을 앞서간다. 봄이 오기 전에도 이미 설레는 사람이 있고, 가을이 지나간 뒤에도 여전히 미련을 붙잡는 사람이 있다. 나는 이 미련과 설렘 사이의 미세한 틈을 기록한다. 그것은 마치 오래된 사진첩 속 사진이 바래는 방식과 닮아 있다. 처음에는 선명하고도 아찔한 색감이었지만, 시간이 흐를수록 색은 옅어지고 가장자리가 닳아 진심을 더 또렷하게 만든다.
어느 날 나는 오래된 서점을 지나치다가 한 권의 책 속에 끼어 있는 메모를 발견했다. 잉크 번진 글씨로 적힌 몇 줄의 문장은 세상에 다시 태어나겠다는 다짐처럼 읽혔다. 누군가의 평범한 메모가 나에게는 작은 폭발이었다. 그 폭발은 내가 얼마나 오랫동안 자신의 목소리를 듣지 않았는지를 일깨워주었다. 사람은 타인의 흔적에서 자신을 발견하기도 한다. 우리는 서로의 파편을 주워 모아 새로운 문장을 만든다. 그 문장은 때로 위로가 되고, 때로 경고가 된다. 중요한 것은 그 문장이 진짜였는지, 아니면 잠깐의 위안에 불과했는지이다.
사람과 사람 사이에는 종종 말로 다 꺼내지 못한 계약들이 있다. 좋은 친구가 되기로 한 계약, 사랑을 지키기로 한 계약, 서로 신뢰하기로 한 계약. 이 계약들은 대부분 서류로 남지 않는다. 그러나 시간이 지나면서 그것들은 증발하거나 결정적인 순간에 빛을 발한다. 나는 그 빛을 따라가며, 계약이 지켜진 순간과 지켜지지 않은 순간을 기록한다. 지켜진 계약은 마치 오래된 나무의 굵은 줄기와 같다. 바람이 불어도 흔들리지만, 결국 뿌리로 돌아간다. 반면 지켜지지 않은 계약은 작은 종잇조각처럼 바람에 흩어진다. 그 조각들이 모여 풍경을 바꾸기도 하고, 누군가의 얼굴을 찌푸리게도 한다.
사랑이란 무엇일까? 누군가는 뜨거운 감정이라 말하고, 누군가는 서로를 위한 작은 배려의 연속이라 말한다. 나는 사랑을 ‘긴 시간 동안 서로의 결함을 알아가는 일’이라고 생각한다. 완벽을 기대하는 것이 아니라, 부서짐을 보듬는 일이다. 결핍을 채우려 하기보다, 결핍과 함께 걷는 법을 배우는 것이다. 그 과정은 서투르다. 그래서 더 아름답다. 서투름 속에는 진심이 숨 쉬고, 진심은 결국 우리가 서로에게 남기는 가장 큰 선물이다.
나는 가끔 나의 하루를 마감하며 손끝으로 종이 위에 무엇인가를 끌어낸다. 그것은 때로는 시가 되고, 때로는 단편적인 문장들이 모여 자잘한 이야기로 흐른다. 중요하지 않은 듯 보이는 문장들이 모여 삶의 지도를 그린다. 그 지도에는 내가 사랑했던 장소들, 잊고 싶은 말들, 다시는 돌아가지 않겠다고 다짐한 길들이 표시되어 있다. 나는 그 지도를 들여다볼 때마다 놀란다. 내가 생각보다 더 많은 것을 견뎌왔고, 또 생각보다 더 자주 웃었다는 사실에.
밤이 깊어갈수록 창가는 더 어두워지고, 집 안의 불빛이 내게로 말을 건다. 불빛은 따뜻하지만, 동시에 나의 모든 작은 비밀들을 너무도 잘 비춰낸다. 비밀은 언제나 나를 완전하게 만든다. 비밀을 가진 사람만이 다른 사람의 비밀을 이해할 수 있다. 이해는 공감의 출발이다. 그러나 공감은 때로 무겁다. 누군가의 아픔을 오래 안고 있으면 내 어깨도 짓눌린다. 그래서 우리는 서로에게 적당한 거리를 유지하려 한다. 그 거리 속에서 우리는 서로의 온기를 확인하고, 때로는 등을 돌린 채로도 같은 하늘을 본다.
나는 늘 묻는다. 우리가 왜 이토록 서로를 필요로 하는가. 답은 간단하면서도 복잡하다. 우리는 타인의 눈을 통해 비로소 우리 자신을 확인한다. 거울보다 더 솔직한 것이 있다면 그것은 타인의 시선이다. 그러나 타인의 시선은 때로 잔인하고, 때로 따뜻하다. 그 시선을 견디는 과정에서 우리는 자라난다. 견딤은 성장이기도 하고, 포기이기도 하다. 어떤 것을 버려야 더 많은 것을 얻을 수 있다는 역설이 우리의 삶을 끌고 간다.
내가 쓰는 글은 언제나 부족하다. 단어 하나로 모든 감정을 포착할 수 없고, 문장 하나로 모든 진실을 밝힐 수 없다. 그러나 글은 내가 살아있음을 증명해 준다. 쓰는 행위 자체가 나라는 존재의 흔적을 남긴다. 언젠가 누군가 이 글을 읽게 된다면, 그는 나의 빛과 그림자, 숨과 침묵을 볼 것이다. 그것만으로도 나는 충분히 행복하다. 인간은 결국 흔적을 남기려 몸부림치는 존재다. 흔적은 시간이 지나도 누군가의 손끝에 닿아 다시 이야기로 살아난다.
창밖의 빛은 여전히 온다. 매번 같은 빛이지만, 내게는 항상 새로운 이야기를 가져다준다. 나는 그 이야기를 잡아두려 하지 않는다. 이야기는 자유로워야 한다. 붙잡으려 할수록 이야기는 날아가고, 놓아두면 언젠가 다시 돌아온다. 오늘도 나는 창가에 기대어, 조용히 숨을 들이쉰다. 그리고 아주 천천히, 말로는 하지 못한 것을 글로 건넨다. 이 글이 누군가의 밤에 작은 불빛이 되기를, 또는 누군가의 아침에 창문을 여는 손길이 되기를 바란다. 빛과 말, 그리고 침묵 사이에서 나는 오늘도 살아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