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도, 무슨 일이 있었던 거야?"
미도를 올려다보는 정아의 얼굴에는 걱정이 가득했다. 푸들같이 곱슬곱슬하게 파마를 한 단발머리가 아직 물기에 젖어 있는 것으로 보아 일어나자마자 달려온 모양이었다. 그래도 기본적인 피부 화장과 심플해 보이지만 고급스러운 원단으로 만들어진 하얀색 티셔츠와 청바지, 거기에 쌀쌀한 가을을 의식한 베이지색 카디건을 입은 정아는 어디로든 외출할 준비가 되어 있었다.
"지금 몇 시야?"
엉망진창으로 어질러진 집을 보여주고 싶지 않아 미도는 정아가 들어오지 못하도록 현관문을 최소한으로 연 채 문고리를 꽉 붙들었다. 왜 들여보내 주지 않냐고 불만스러운 표정을 짓는 정아를 내려다보며 미도는 피곤함을 감추지 않은 얼굴로 고개를 가로저었다. 아담하고 키가 작은 정아는 힘으로 미도를 밀어낼 수 없다.
"7시 좀 지났어..."
주머니에서 휴대폰을 꺼내 시간을 확인하고는 시무룩한 목소리로 고개를 떨군 채 가만히 서 있다.
"나 보통 자는 시간인 거 알잖아."
상냥하고 남을 잘 챙기는 정아가 미도에게 이른 아침은 한밤중과 같다는 것을 모를 리가 없다. 그런데도 이렇게 찾아왔다는 것은 사실 화가 났다는 뜻일 것이다. 걱정스러운 표정과 어조를 사용하고 있지만, 분명 정아는 화가 나 있다. 지안의 절친한 친구로서.
"지안이가 울었어."
처음 정아를 봤을 때는 천사가 현신한 줄 알았다. 소묘 기초반의 반장을 자처할 때부터 자신과는 참 다른 세상을 사는 사람 같다는 인상을 받았다. 미도와 정아, 둘을 제외한 수강생들은 최소 50세 이상의 어머님들이었는데도 정아는 싹싹하게 웃으며 온갖 귀찮은 일을 도맡아 했다.
매주 수업이 시작하기 전 학기 초에 거둔 회비로 간단한 먹거리를 사 오고 그림을 그리는 데 필요한 물품의 공구를 진행하고 공지 사항을 전달하는 등 자질구레한 일들을 싫은 기색 없이 수행했다. 넉살은 또 얼마나 좋은지 나이 많은 어머님들과 금세 친해져서는 언니, 언니, 하면서 살갑게 굴었다. 덕분에 소묘 수업 시간은 늘 즐거웠다. 매시간 웃음과 수다가 가득했고 선생님께서도 이렇게 분위기가 좋은 반은 처음이라고 칭찬을 아끼지 않으셨다.
"밖에서 이야기 하자."
집 앞에는 일찍 출근하는 직장인들을 겨냥해 이른 시각부터 문을 여는 작은 카페가 있었다. 카운터를 지나면 좁은 통로를 따라 1인석이 늘어져 있고, 화장실로 가는 통로로 꺾어 들어가면 넉넉한 공간에 2인용 테이블이 놓여 있다. 이 시각이면 테이크아웃을 하는 손님이 많을 테니 크게 방해받지 않고 이야기를 나눌 수 있을 터였다.
"세수만 하고 나올게. 기다려줘."
문밖에 있으라고 손짓을 하자 정아는 군소리 없이 고개를 끄덕였다. 문을 닫고 집 안을 향해 몸을 돌리자 한숨이 절로 나온다. 모든 게 엉망이다. 어디부터 치워야 할 지 감이 오지 않는 쓰레기장에 던져진 기분에 미도는 온 몸이 간지러워졌다.
정아를 오래 기다리게 할 수는 없으니 일단 손에 잡히는 대로 까만색 체육복 바지에 짙은 보라색의 후드티를 입었다. 그리고 대화만 끝나는 대로 집에 들어와 잠이나 늘어지게 잘 요량으로 얼굴에 물만 묻힌다. 거울에 비친 얼굴이 말로 표현할 수 없을 정도로 수척하다. 일주일 넘게 제대로 잠을 못 잤으니 당연한 결과였다.
눈 밑에는 다크서클이 턱까지 이어질 듯 짙게 늘어져 있고 피부는 푸석푸석하다 못해 거칠다. 언제 부르텄는지 입술에는 세로로 피딱지가 앉아 있다. 한술 더 떠 머리카락에는 기름기가 가득한 것이 언제 마지막으로 감았었는지 기억이 나지 않는다.
완전 폐인의 몰골이구만.
속으로 자신을 조소하면서 미도는 캡 모자를 깊게 눌러쓴 뒤 후드티에 달린 모자를 그 위에 뒤집어썼다.
지안이 울었다고 한다. 슬퍼서일까, 화가 나서일까, 아니면 둘 다일까. 펑펑 소리 내 목 놓아 울었을까, 조용히 눈물만 흘렸을까, 아니면 울음을 삼키려 애쓰며 흐느껴 울었을까. 나도 울고 싶은데. 분노 때문에도 슬픔 때문에도 아닌 그저 너를 향한 감정 때문에.
"술 다 깼네."
담배 연기를 내뿜듯 숨을 내뱉으며 미도는 말을 입술 사이로 흘려보냈다.
결론부터 말하자면 대학 입시에 실패했다. N과 같은 지역의 대학은커녕 근처도 갈 수 없었다. 다음 해부터 교육과정이 바뀔 예정이었기에 올해 유난히 수능 응시생의 수가 많았다는 변수도 있었지만, 역시 수학이 내 발목을 잡았다.
혹시나 하는 희망을 처참히 박살 내는 성적표를 받은 후 착잡한 심경으로 선생님과 상담을 했다. 가군은 상향 지원, 나군은 성적에 맞춰, 다군은 혹시 모르니 하향 지원하기로 결정.
하지만 나군이 문제였다. 경기권 변두리에 있는 고만고만한 대학을 가느니 지방 거점의 국립대로 지원하는 게 나을 거라는 조언을 들었다. 가군은 떨어질 확률이 굉장히 높지만 N과 같은 지역에 있는 대학교였고, 다군에서 지원할 대학은 학과가 바라던 과에서 어긋나있었기 때문에 합격하더라도 가고 싶지 않았다.
"빠나님이 학교 후배라구?“
N의 자취방은 우리가 처음 만났던 부산, 그녀의 고향보다 훨씬 더 가까운 곳에 있었다. 첫 만남이 부산이었던 이유는 N이 살아온 곳에 직접 가보고 싶다는 지극히 개인적인 호기심을 충족하기 위해 ‘부산여행’을 핑계로 삼았기 때문이었다. 게다가 마침 월요일이 공휴일이라 주말을 포함한 3일의 연휴기간이 완성되는 바람에 N도 고향에 내려갈 예정이었다.
그렇게 N의 고향도 방문해 봤으니, 이번에는 N의 대학 생활의 자취를 따라가 볼 차례였다. 이전처럼 무장배기로 만나달라 조르기에는 눈치가 보였기에 N의 학교에 합격하고 당당히 찾아가기로 마음먹었는데, N이 선뜻 크리스마스이브에 초대를 해준것은 나에게 정말 대단한 행운이었다고 표현할 수밖에 없었다.
"응. 학교 얘기하다가 우연히 알게 됐어."
번화가에서 조금 떨어져 있는 으슥한 골목의 안쪽에 위치한 원룸의 4층. 잠시 머무는 집이기에 크게 꾸미지 않았다고 하지만, 책상에 놓여있는 물건들과 벽에 붙어있는 포스터와 엽서들이 N의 취향을 여실히 드러내고 있었다.
미술을 전공하는 사람답게 전시회를 자주 보러 가는 N은 전시회의 티켓을 버리지 않고 널찍한 코르크 보드에 일일이 붙여놓았는데 그것이 꽤 멋있었다.
"...그렇구나."
그렇게 침대에 걸터앉아 방을 구경하며 N이 해주는 초간단 토마토 파스타를 즐겁게 기다리던 나에게, '빠나'님에 대한 이야기는 참으로 씁쓸한 소식이었다. 식욕이 뚝 떨어졌달까. 그래도 열심히 먹을 테지만.
하지만 침울해질 수밖에 없었던 것은, '빠나'님이 바로 N에게 그림을 그려달라고 요청했던 길드원이었기 때문이었다. 볼을 맞대고 있는 그림을 그려달라고 했던 그 사람. 내 신경을 온통 긁어놨던 그 사람. 하필 그 사람이 N의 학교 후배라니. 그러면 실제로 만나서 같이 밥도 먹었겠지. 같은 캠퍼스를 거닐면서. 수업에 관한 이야기도 하고, 학교생활에 대한 조언도 얻고, 어떤 동아리가 재미있는지 등등, 내가 N과 하고 싶었던 모든 것을 함께 했겠지.
생각이 거기까지 미치자, 질투심에 가슴이 활활 불타오르기 시작했다. 괜히 폴라티를 입고 왔어. 열이 오르며 얼굴이 빨개지는 것이 느껴져 나는 손으로 연신 얼굴에 부채질을 했다.
"앗, 방이 많이 더운가?"
일부러 평소보다 보일러를 더 따뜻하게 틀었다며, 더우면 보일러 온도를 낮추겠다고 N이 말했다. 그 말에 오히려 머리에서 식은땀이 나기 시작했다. 이 알량한 질투심을 들킨 것 같아서. 하지만 야속하게도 얼굴은 계속 뜨거워졌고 나는 내 얼굴이 토마토처럼 새빨갛게 물들었을 거라고 확신했다.
"너무 더우면 잠깐 창문 열어 줄게."
네모난 접이식 식탁에 토마토 파스타가 한가득 들어있는 접시를 두 그릇 내려놓으며 N이 상냥한 목소리로 제안했다. 나는 손사래를 치며 괜찮다고 답을 했다. 창피함이 섞인 웃음을 흘리며 어째서인지 몸은 차가운데 얼굴만 더워지는 경우가 있다고 변명 아닌 변명을 하면서.
실제로 이 때문에 수업을 듣다가 도저히 견딜 수가 없어서 교실 뒷문을 열고 몸의 반은 복도에, 반은 교실에 걸친 채 수업을 들은 적도 있었다.
"원서 접수는 다 했어?"
포크로 파스타를 큼직하게 돌돌 말아 입에 밀어 넣는데 N이 문득 생각났다는 어투로 입을 열었다.
"다음 주에."
황급히 입안에 있는 파스타를 꿀꺽 삼키고 답을 하자, N이 먹는데 말을 걸어 미안하다는 제스처를 취했다.
"학교는 정했어?"
그렇게 말하며 N도 파스타를 먹기 좋은 크기로 돌돌 말았다. 그리고 입가에 소스도 전혀 묻히지 않고 깔끔하게 입에 쏙 집어넣는다.
"응. 잘 될지는 모르겠어."
약간 가라앉은 내 목소리를 눈치채고 N은 어느 학교에 지원했는지는 묻지 않았다. 다 잘될 거라는 상투적인 위로를 입 밖에 내놓고는 다음 화제를 무엇으로 할지 고민하듯 눈을 굴린다.
"저기... 빠나님이랑 자주 만나?"
분명 맛있을 게 분명한 파스타 맛이 하나도 느껴지지 않았다. 그래서 물어볼 수밖에 없었다. 살살 상대의 눈치를 보면서도 나는 결국 내 욕심대로 행동한다.
라떼를 시켰다. 우유를 구비해두지 않기 때문에 평소 집에서는 먹을 수 없는 메뉴다. 카운터는 모닝커피를 손에 들고 출근하려는 직장인들로 바글바글하다. 이 시간에 카페에 오는 일이 내 생에 과연 있을까 했는데. 역시 무엇이든 단정을 지으면 안 된다.
"둘이 헤어진 거야?"
무어라고 답하면 좋을까. 우리는 헤어진 걸까? 전화한다고 해놓고 지안은 전화는커녕 기다림에 지친 내가 먼저 보낸 문자에도 답하지 않았다.
그건 일방적으로 헤어지자는 메시지로 간주하면 되는 걸까? 아니, 얼마나 오랫동안 답이 오지 않아야 헤어졌다고 확정이 되는 걸까? 이런 부분도 진작에 합의해 뒀으면 좋았을 텐데. 일주일이 지나도 연락하지 않으면 공식적으로 헤어진 걸로 하자. 요일로 따질지, 1분 1초까지 칼같이 시간을 따질지. 뭐 이따위 것들에 대해 이야기 해둘 걸 그랬다. 아니, 그래도 보통 연인들은 이런 이야기까지는 하지 않나? 헤어질 걸 상정하고 사귀는 사람이 어딨어. 가정은 할 수 있겠지만. 어렵네, 연애.
"글쎄. 나도 잘 모르겠어."
일단은 대답을 유보한다. 잘 모르겠다는 답은 두루뭉술하지만, 현재 미도에게 가장 솔직한 답이었다. 아이스 아메리카노를 한 모금 삼키고 정아가 인상을 찌푸렸다. 원두가 맛이 없나 보네. 하긴, 여기는 저가로 승부를 보는 매장이기 때문에 원두에는 크게 공을 들이지 않는다.
"어제 바(bar)에 와서 한참을 우두커니 앉아만 있길래 퇴근할 때 돼서 가보니까 울고 있더라."
정아의 목소리에는 지안을 향한 걱정이 가득 묻어나왔지만 동시에 둘 사이에 있었던 일에 대해 어떤 말로 미도에게서 답을 끌어낼지에 대해 고뇌하는 듯한 긴장감이 느껴졌다.
"N이 누구야?"
결국 직구로 들어오는구나. 하지만 미도의 신경은 온통 지안이 어떻게 울었을지에만 쏠려있다. 그것을 알아야 N에대해 이야기할지, 아니면 회피할지 결정할 수 있을 것 같았다. 미도는 아직 입에도 대지 않은 라떼를 내려다보다 고개를 살짝 들어 자신을 뚫어져라 응시하는 정아와 시선을 맞추었다.
결국 너에게 더 중요한 친구는 지안이었구나. 애초에 나는 네 친구로 여겨졌을까. 지금만큼은 나도 그 걱정 조금만 받고 싶은 심정인데.
말을 꿀꺽 삼키고 미도는 라떼를 한 모금 마셨다. 커피와 우유가 제대로 섞이지 않아 씁쓸한 커피의 맛만 가득 느껴진다. 어차피 모든 것이 엉망인데 라떼가 제대로 섞이지 않은 것 정도야 아무 일도 아니다.
"지안이는 많이 울었어?"
대화를 시작하려면 우선 내 욕심을 채워야 한다.
아, 실례합니다. 자박자박 발소리가 들리더라니 낯선 사람의 목소리가 옆을 지나간다. 심상치 않은 분위기를 풍기며 마주 앉아있는 우리를 보고 저 사람은 무슨 생각을 할까. 아침부터 싸우다니 할 짓 없네? 카페에서 이게 무슨 민폐지?
"지안이가 그렇게 운 거, 할머니 돌아가신 이후로 처음이야."
애지중지 키우던 고양이, 신사가 죽었을 때도 지안은 울지 않았다. 그저 넋이 나간 사람처럼 화장된 후 뼛가루가 된 신사가 담긴 자그마한 단지를 신사가 가장 좋아하던 캣타워의 중간 높이의 자리에 올려두고 오래도록 바라보고만 있었다.
"지안이는 할머니랑 단둘이 살았다고 했었지."
미도가 지안의 할머니에 대해 아는 이야기는 딱 이정도 뿐이다. 할머니 손에서 컸다. 할머니와 단둘이 살았고, 성인이 되면서 독립했다. 미도와 지안은 서로의 과거에 대해 자세히 이야기를 나눈 적이 없었다. 가족 관계에 대해서도 담백하게 가족 구성원이 어떻게 되는지 정도만 설명하고 넘어갔고, 서로의 학창 시절에 대해서도 이야기를 나눈 적이 없었다. 오롯이 현재에만 집중했다. 사실 별것 아닌 이야기일 뿐일 텐데도 어쩐지 이야기를 나눌 기회가 없었고 그것이 그대로 굳어졌다. 과거에 관해 묻는 것이 금기인 것처럼.
"지안이에대해 이야기 해줘. 그러면 나도 N에 대해 말해 줄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