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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스피릿캐슬 Mar 31. 2024

4. 후회와 자책

 법적인 이혼 절차를 완료하고 한동안 분노의 대상을 나로 선정하여 스스로 자책했다. 이제는 돌이킬 수 없는 관계란 사실 때문인지 아니면 마지막으로 받은 전처의 편지 때문인지는 알 수 없지만 후회와 자책을 했다. 과연 결혼 생활을 유지하기 위해 내가 충분히 노력했을까, 한 번 더 잡았더라면, 내가 이렇게 행동하지 않았더라면 하는 후회가 되었다. 이혼을 결심하기 전 충분히 노력하고 결혼을 유지하기 위해 최선을 다했는가 라는 물음은 필수적이다. 나 역시 스스로에게 질문을 해본 후 이혼을 결정하였지만 몸과 마음이 어지러운 요즘 후회하지 않을 거란 확신은 없다. 다만 이제껏 그러하듯 후회하는 순간도 그렇지 않을 순간도 있었으며 앞으로도 가끔은 후회하는 순간이 있을 것 같다. 다만 그 후회 속에 너무 깊이 빠지지 말고 내가 하는 자책들을 객관적으로 생각해 보고 더 나은 나를 위해서 내 잘못된 점을 인정하고 바꿔보려고 노력해야겠다.


 나의 가장 큰 문제는 공감 능력의 문제다. 상대방의 감정을 헤아리는 능력이 부족하다. 전처가 회사 생활이나 나와의 관계에서 힘듦을 느낄 때 온전히 받아 주질 못했다. 회사 업무로 힘들어할 경우 ‘많이 힘들구나.’라는 위로가 아닌 ‘회사 생활에서 너무 스트레스를 받지 않았으면 좋겠어.’라는 해결책 위주로 제안했었다. 공감 능력이 부족한 점을 인식하고 나서는 의식적으로 힘들었구나 하는 위로의 말을 해주었는데 공감을 통한 진심이 담겨있지 않았기에 잘 전달되지 않았을거다. 또 상대방의 마음을 이해하기보다는 내 마음을 표현하기 바빴다. 한 예로 전처가 나에게 예전보다 자신에게 애정이 줄었다고 말했다. 당시 나도 비슷한 고민을 하고 있어서 전처에게 너 역시도 나에게 관심이 줄어든 거 같다는 대답했다. 이런 방식은 상대방의 감정을 이해해 주는 것보다 내 감정을 우선시하며 먼저 갈등을 더 악화시켰다. 전처의 말에 따르자면 벽에 대고 이야기하는 것 같다고 했었다. 부부상담을 통해서 이런 부분 인지하고 고치려고 노력했지만 결국 진심으로 전처의 마음을 이해해 주기 전에 우리의 인연은 끝이 났다. 돌이켜 보면 결혼 전에도 비슷한 방식으로 싸웠던 적이 있다. 전처가 나에게 왜 결혼하자는 말을 먼저 하지 않냐고 서운해했고 나는 이 대답으로 너는 왜 나에게 결혼하자는 말을 먼저 하지 않냐고 되물었으니, 나는 연애시절부터 결혼까지 소통의 문제가 있었다. 이혼 후에는 좀 더 나아질까?


 나는 부부사이에 무의식적으로 공평함을 추구하며 보상받기를 원했다. 부부상담을 받으면서 관계 개선을 위해 ‘김창욱쇼’라는 프로그램을 종종 챙겨봤다. 프로그램에서 아직까지 기억에 남는 조언은 ‘사랑은 공평함을 추구하지 않는 것’이다. 결혼 후 출퇴근 거리로 주말부부를 할지 아니면 함께 살지를 고민하던 차에 함께 사는 걸 선택했다. 나의 의견이 많이 반영되었고 나는 왕복 3시간 거리를 출퇴근했다. 당시 나는 인지하지 못했지만 돌이켜 보면 내가 더 출퇴근이 힘드니까 좀 더 배려받기를 원했었다. 그리고 주말에 하는 집안일도 내가 원해서 하는 거였지만 내가 하는 만큼 전처도 해줬으면 했었다. 이러한 생각은 내가 은영 중에 가지고 있는 ‘공평함’을 생각했기 때문이다. 모든 일이 공평할 순 없고 특히나 부부관계에서는 공평함 보다는 배려하는 마음을 가져야 했지만 나는 그렇지 못했었다. 내가 전처를 대하는 마음이 작아서 그럴지도 모르지만 나는 사랑보다 공평함의 마음이 더 컸었다.

 

 ‘역지사지’ 다른 사람의 입장에서 생각해 보라는 말이었고 내가 좋아했던 말이었지만 이제는 멀어져야 할 단어다. “내가 너의 입장이었으면 나는 그렇게 생각하고 행동하지 않았을 거야.” “내 입장에서 생각해 봤을까?” 전처와의 갈등에서 내가 느꼈던 생각이다. 다른 사람의 입장에서 생각해 본다는 게 가능한가? 다른 사람의 입장을 온전히 이해하고 것 부터가 어불성설이다. 각자가 살아온 세상이 다르고 그 안에서 만들어진 자아가 다르기 때문에 상대방의 입장에서 생각해 보는 건 말이 안 된다. 만에 하나 상대방의 입장을 온전히 이해했다고 해도 각자의 생각은 다르기 때문에 모든 사람의 행동은 다르다. 하지만 나는 전처의 행동을 내 기준에서 생각하고 판단했다. 마지막 이혼 이야기가 나오게 된 갈등의 시발점도 이러한 나의 생각 때문이었다. 전처가 업무상의 이유로 다른 사람과 식사자리가 길어졌고 나는 이런 부분을 이해하지 못해 싸움으로 이뤄졌다. 전처가 회사 생활에서 얼마나 힘들었는지, 이직을 하며 회사생활에서 외로웠는지 이해하지 못한 채 내 기준에서만 생각했었다. 이러한 부분에 내가 가진 ‘보통의 삶’이란 가치관이 추가되어 내 생각을 일반적인 기준이라고 판단한 부분도 컸다. 사소한 집안일부터 생활패턴 소비습관까지 내 기준이 맞다고 생각하며 잔소리했는데 전처는 이 부분에서 스트레스를 받았다. 전처의 마지막 편지에서 이혼 신청 후 별거기간에는 식사도 잘해 먹고 집안일도 바로바로 하며 부지런하게 내가 좋아할 만한 모습으로 지내고 있다고 했다. 신혼 초 위에서 말한 내 잔소리 때문에 결혼기간 동안 전처가 많이 힘들어했음을 새삼 깨달았다. 다만 이제는 내가 맞다고 생각한 규칙적인 삶과 부지런한 삶에서 벗어나있다. 무력감에 빠져 퇴근하고 침대에 누워 천장만 올려다보거나 핸드폰만 만질 뿐 내가 정한 보통의 삶을 유지하지 못하고 있다.


 이외에도 나의 낮은 자존감과 보수적인 성격, 시댁의 분위기, 서로의 근무 환경 등 여러 가지 이유도 이혼을 결심하는데 영향을 미쳤다. 이러한 내 이혼과정에서 내 문제점을 되새겨 보며 조금은 달라지고 싶다. 지금 나는 후회와 자책에 빠져있지만 전처는 조금 덜 힘들어하며 행복한 삶 맞이할 준비를 했으면 좋겠다. 나 역시도 이제는 스스로에게 조금 더 친절해지려고 노력해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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