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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스피릿캐슬 Mar 21. 2024

3. 협의이혼의사확인

 협의이혼의사확인기일 당일이 되었다. 어제 자기 전까지 이혼에 관한 여러 글을 읽고 뒤숭숭한 마음에 늦게까지 잠을 이루지 못했지만 아침에 알람이 울리기 전 잠에서 깼다. 생각을 하지도 감정을 느끼지도 않은 텅 빈 마음으로 법원에 도착을 했고 전처가 먼저 와있었다. 법원 안의 대기실 의자는 3개씩 연결되어 있었다. 나는 습관처럼 그녀의 오른쪽에 앉았다. 우리 이외에도 10쌍이 이혼 확정을 기다리고 있었고 그들 대부분은 가운데 자리를 비워 두었지만 나는 무의식중에 가운데 자리에 앉았다. 이혼 판결 당일까지도 의혼을 받아들이지 못하고 있었다. 간단한 안부인사 후 준비한 말을 하려고 몇 번은 시도했지만 차마 입술이 움직이질 않았다. 이후 담당자가 본인 확인하고 우리의 이름이 불리길 기다렸다. 우리와 같이 대기하던 사람들은 연령대는 다양했지만 분위기는 크게 두부분으로 나눠졌다. 이미 마음의 정리를 하고 앞으로 나아가려는 눈빛을 장착한 사람과 텅 빈 눈동자를 가진 무감각한 표정의 사람이 절반씩 있었다. 당시의 나는 무감각한 표정을 짓고 있었지만 전처의 얼굴을 차마 볼 용기가 없어 그녀의 표정은 알 수 없었다. 이미 어느 정도 이혼을 인정하고 마음을 다잡고 왔지만 그녀의 얼굴을 보는 순간 마음이 다시 무너져 내릴걸 알기에 애써 회피했는지 모르겠다. 드디어 마지막으로 내 이름과 전처의 이름이 불리며 우리는 재판장실에 들어가 결혼의 종지부를 찍는 협의이혼 사실 등본을 받았다. 바로 옆 건물에 읍사무소가 있었기 때문에 당일 이혼을 확정한 모든 사람들이 줄을 서 이혼신고서를 신청하러 갔다. 우리 역시도 이혼신고를 하기 위해 읍사무소 앞에 도착했는데 전처가 지금 당장은 힘들 것 같다고 눈물을 보였다.


 전처의 떨리는 목소리와 눈물에 심장이 다시 뛰기 시작했다. 감정이 없는 텅 빈 눈에서 나도 모르게 눈물 한 방울이 떨어졌다. ‘이혼에 대해 후회하고 있을까?’, ‘내가 잡아주길 기다리는 건가?’, ‘지금이라도 이혼을 무를 수 있겠다’ 이런 기대를 하며 최악의 상황으로 마음은 움직였다. 다만 내 마음은 작은 바람에도 흔들리는 상황이었지만 머리는 이성적인 판단을 강요했다. 지금의 원만한 이혼만이 서로를 위하는 길이라고. 이후 정신을 차리고 이혼신고서에 내 인적사항과 서명이 필요하니 그 부분만 작성해서 전처가 나중에 신고해 달라고 말하곤 몸을 돌렸다. 조금이라도 더 얼굴을 보면 무너져 내릴 것 같았다. 읍사무소에 비치된 신고서에 서명을 한 후 서류를 내밀자 마지막으로 내게 쓴 편지를 건넸다. 편지를 받는 순간 다시금 북받치는 감정에 눈물이 앞을 가렸다. 전처 역시도 눈물을 보이고 있었지만 마지막 순간인 만큼 최대한 감정을 억누르며 마지막 인사를 했다.

“정말로 지금보다 행복하게 잘 살았으면 좋겠어. 잘 가”


 편지를 가지고 차에 탄 후 소리 없이 꾸역꾸역 울었다. 이제는 그녀가 울 때 눈물을 닦아주거나 안아주면 안 되고 자기를 비켜줘야 한다는 사실이 더 내 마음을 슬프게 했다. 마음을 어느 정도 추스르고 그녀가 적은 마지막 편지를 꺼내 읽었다. 이혼을 받아들이는 과정에서의 힘듦, 나에 대한 원망, 그럼에도 진심으로 내 행복을 바라는 인사까지…

 내가 이혼신청서를 작성하기 전 마지막 준 편지에서 시간이 많이 흐른 뒤 우리의 찬란했던 순간에 이런 사람을 만났었구나 정도로만 생각해 달라고 했지만 그녀는 좀 더 무거운 마음으로 오래 기억하겠다고 답장했다. 애써 담담히 그녀가 쉽게 잊을 수 있길 바랐지만 나 역시도 그렇듯 그녀도 많이 힘들었고 시간이 많이 필요해 보였다. 그래도 이혼을 조금씩 받아들이고 더 이상 눈물로 괴로워하지 않아도 되길 바란다. 전처 역시도 차에서 감정을 추스르고 있는 모습이 보였다. 이전까지는 이기적이게도 전처에게 이러한 상황에서 먼저 발길을 돌리길 기다리고 있었다. 먼저 손을 놓았던건 내가 아니라고 자위하면서 애써 마음의 짐을 덜었던 것 같다. 마지막까지 그녀에게 부담을 주기 싫어서 먼저 자리를 떠났다. 5년이란 시간 동안 항상 손을 잡고 다녔지만 이제는 그 손을 놓아야 할 시간이다. 


“안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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