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주말부부에게 주말이 사라졌다

내 거친 생각과 남편의 불안한 눈빛! 그건 아마도 전쟁같은 주말부부

by 단신부인

원치 않는 인사발령 이후, 삶이 피곤해졌다.

우리 부부에게 주말이 사라진 것이다.

전쟁같은 주말부부의 강제 견우직녀 생활 본격 개막이다.


세상 일 하나 쉬운 것 없다지만

한꺼번에 처리하거나 적응해야 할 과업이 몰려버렸다.

정리하자면 다음과 같다.


1) 기존 부서에서 하던 업무 인수인계

2) 새로운 팀에서 해야 할 업무 숙지

3) 필연적 주말근무로 인한 가족 상봉 불가


가장 문제가 되는 건 마지막, 필연적 주말근무이다.

하나씩 살펴보자.


첫째, 기존 업무 인수인계의 난제!

도대체 왜 일 잘하는 사람에게 일이 몰리는가?

보상을 더 줘야 하는 것이 아닌가고 따지고 싶다.

원체 하던 일이 많았는데,

그걸 타인에게 이관하려니 분량이 만만치 않았다.

더구나, 후임자는 이런 류의 업무를 한 번도 해보지 않은 사람인데다,

나보다 직급이 낮은 사람에게 고난이도의 업무를 준다니!

그렇다고 추가적 보상을 주는 것도 아닌데!

송구할 따름이다.


인수인계서만 약 20장 상당이며,

넘겨준 파일 총 용량은 약 30GB나 되었다.

마치 책 한 권 쓰는 느낌이었다.

차라리 본인 명의의 책이었다면 보람이라도 느꼈을텐데!


눈 밑 다크써클이 턱끝까지 내려오는 걸 감수하고,

우여곡절 끝에 구두 설명까지 마쳤다만

어디 한 번으로 될까! 절대 불가능하다.


한 회기가 끝나는 연말까지 바쁠 전망이다.

아마도 계속 질문에 시달리겠지.


둘째, 새로운 업무 숙지

새로 부여받은 업무는 상당한 노력을 요했다.

기획·조정부터 필드에 나가서 뛰어야 하는 사업부서의 중직이었다.

행정은 행정대로, 사업은 사업대로

챙겨야 할 게 많은데다 질문까지 쏟아지는 형국이었다.


현 직장에서 이렇게 매일 힘들다고 성토한 적 없었는데

적응이 좀체 되지 않으니

연신 살려달라고, 힘들다는 말이 입 밖에 난다.

내 전보 소식을 접한 타 지사의 절친한 직원들 일부가 가로되,

"도대체 어떻게 된 일이냐"

이에 관한 본인의 답변은 한결 같다.

"나도 모른다, 힘들어 죽겠다."


고매~하신 윗 분들의 소행인데 내 그 높은 뜻 어찌 알리오.

다만 바라옵건대, 인과응보의 철퇴가 하늘에서 내려지길!


한 달도 안 됐건만, 정말 체력적으로 힘들다.

평소에도 1만 보 이상 걸었는데

현 부서에선 더 걸어야 한다.

15,000보 이상은 기본으로 찍는다.

바빠서 운동을 잠시 쉬었더니 근육도 다 빠졌는데

걷기까지 많이 해야 하다니...

행정 업무까지 겸하느라 눈이 자꾸만 감겨온다.


사회초년생이면 엉엉 울면서

못하겠다고 바꿔달라고 했을텐데

이 몸은 무려 사회중년생이다.

기대의 눈빛을 보내는 이들이 많고,

현 부서에서조차 나를 의지하는 직원들이 많은데

어찌 감당하지 못하겠다고 빌빌거리겠는가.


이 죽일 놈의 책임감과 의무감이

자승자박(自繩自縛)이 되어 날 옭아맨다.

적응할 때까지 당분간 정신없을 전망이다.


셋째, 필연적 주말근무

날 가장 힘들게 하는 건, 가족을 보기 어려워졌단 사실이다.

연고지를 떠나 객지생활을 하는 것도 서러운데

사랑하는 남편과, 친정 엄마까지 쉬이 보지 못하게 되었다.


매주 있는 건 아니지만

순번제로 돌아가는 주말, 휴일근무인데

직급이 남들보다 조금 높다하여 혼자만 빠져나가기엔

비슷한 상황에 처한 다른 이를 외면하는 처사이다.

그들도 나처럼 가족과 멀리 떨어져 근무하는 처지인데

나만 봐달라고 하는 건 어불성설인 셈.


게다가,

다들 월요일 또는 금요일에 휴일대체를 원하니

휴일이 몰릴 수밖에 없다.

인력은 부족하고, 날짜 조정이 필요한 상황.


하필이면 대쪽같고 올곧은 내 성품이 또 발목을 잡네.

온당치 않은 건 행할 수 없다.

스스로 떳떳하지 않으니까.

게다가 난 이기적이지 않다.

하여, 나 역시 주말근무를 후임들과 함께하게 되었다.


하루는 너무 힘들어서 남편에게 물었다.

지금보다 업무 강도가 낮고 급여는 적은 곳이라도

당신 곁에서 매일 보며 일할 수 있는 곳으로

이직하면 어떻겠느냐고.


그는 답해줬다.

그게 나의 뜻이라면 존중하겠노라고.


사라진 주말 앞에서

객지생활이 숙명인 직장에서 근무하는 아내는

이제 모종의 결심을 해야만 한다.


이대로 적응하면서 가족과 떨어진 삶을 이어가면서

임신까지 준비할 수 있을까?

위태한 주말부부의 결말은

어떻게 될 것인가.


어떤 식으로든 끝을 맺어야 한다.

그게 이직이든, 임신이든, 휴직이든, 병가든...

지긋지긋한 주말부부 생활을 청산해야만 하겠다.


#주말부부 #신혼부부 #주말근무

keyword
작가의 이전글어느 초보 운전자의 멘탈붕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