솔직하게 빚이 있다고 하지 그랬어

뇌졸중 환자의 가족 이야기 4편

by 단신부인

누구에게나 비밀이 있다.

단, 숨기거나 감추려는 일이 감당되지 않을 땐,

그게 가족과 관련된 일일 때는

혼자 끙끙 감추지 말고 알려야 한다.

잠깐의 감정 소모로

문제를 해결할 수 있다면 감수해야 한다고 본다.

그게 더 큰 일로 비화되기 전에...


가족은 생활 공동체이기도 하지만

경제 공동체 아닌가.


아빠에게 뇌졸중이 발병하고

중증 뇌병변 장애인이 되고 나서야

우리 가족은 마침내 알아버렸다.

불어난 빚으로 인해 스트레스를 받아왔단 걸.


모든 전말을 알게 되기 전까진

다년간 계속 아빠를 이해할 수 없었다.

언젠가부터 그는 화가 많아졌고

술을 과하게 마실 정도로 자제가 안됐으며

명절날 친척들이 모이면

특정한 한 사람을 꼭 싸잡아서

그 누군가의 감정이 지독하게 상하도록 만들었다.


이제서야 얘기하건대

그렇게 화 잘 낼 수 있는 거였으면

차라리 솔직하게 빚 때문이었노라고

털어놓지 그랬나 싶다.


아빠가 금융제도에 무지할 수도 있지

세상 만물의 이치를 뭐 다 알아야 하나?

그깟 세대주로서 자존심이 무어라고.


한낱 나조차 못하는 게 많은 인간인데

당신은 그게 뭐라고 그리 속 안에 꾹꾹 담았나.

그 사실을 밝히지 않으려다가

지금 당신께 무슨 일이 생겼나.

어차피 진실이 밝혀질 것을.

이렇게 배신감 느껴지는 방식으로 알게 했어야 했나.


뇌졸중엔 다양한 원인이 있다고 한다.

심지어 전초 증상도 존재한다.

본인이 그 신호를 무시해 왔을 뿐이지.

그것도 철저하게,

자신에겐 병이 일어나지 않을거라 믿으며

방심했으리라.


아빠에게 있어 아마도 뇌졸중의 가장 큰 원인은

음주보다도 어쩌면, 과도한 스트레스가 더 먼저 아녔을까.

만병의 근원이라 일컬어지는, 그 것 말이다.


쓰러지고 나서,

병원비 하며, 회사 물건을 엄마와 함께 정리해야 했는데

각종 물건, 장부, 재산목록 등을 정리하다가

엄마는 크게 충격을 받았다.

그제서야 부군의 진짜 월급 수준을 알게된 것이다.

제게 가져다 주면서 가계살림에 보태라 한 돈이

자식 둘 키우기에도 빠듯하고 매우 모자랐는데,

실제로 아빠 수입 분의 절반 이하만 주신 거라고...


회계나 세무 업무도 곧잘 척척 해내는

엄마가 뭐 그리 돈을 떼 먹을 일이 있다고.

차라리 돈 관리를 애초부터 엄마한테 맡기고 용돈 받고 사셨으면

우리 남매가 이토록 가난하게, 먹고 싶은 거 못 먹고

하고 싶은 거 제약받으며 살지 않았을텐데...

더구나 두 분의 노후 역시 어느 정도 여유로웠을텐데...


심지어 퇴직금 중간 정산 사유에 해당할 일이 기가막히게 있었는지

수중에 쥔 퇴직금 조차 몇 푼 없었고

그마저도 빚을 갚느라, 값비싼 병원비에 보태느라

허상으로 사라져버렸다.

그조차도 모자라 차용증을 쓰고 외가 친척들에게 손을 벌려야 했다.

엄마 입장에서 얼마나 자존심 상하고 궁색했을까.

속이 까맣게 타들어갔을진대,

결코 나나 동생에게 티를 안 내려고 부던히 노력하셨을거다.


당신 손에 오물을 묻히는 일이 있을 지언정

절대로 자식 대엔 노후 빚까지 물려주지 않겠다고

나이 많은 나의 엄마는 여즉 퇴직도 못 하고 일을 한다.

자식 된 입장으로, 제 앞가림이나마 겨우 하고 사는 나는

엄마에게 늘 죄송하기만 하다.


갖은 노력 끝에, 아빠의 빚은 청산했다.

매년 법원에 보고하던 후견사무보고서에도 그리 알렸다.


시간이 한참 지난 지금은

더는 아빠를 같은 일로 원망하지 않는다.

이미 충분히 영겁의 고통처럼, 뇌졸중을 견디고 있으니

본인이 가장 힘들 것이오, 제일 후회할 것이다.


다년간 아빠를 돌봐오고 지켜보면서

나 역시 남편에게 함부로 숨기는 건 없어야겠다고 판단했다.

특히나 가계 경제 관련, 민감한 일은 더더욱!

부끄럽지만 서로 연말정산 내역서 공개부터 시작했다.

월급으로 현재 얼마를 받고 있으며

회사에서 어떤 복지 혜택을 받을 수 있는지도.

부끄러움과 민망함은 잠시 뿐이었다.


절대 빚은, 숨기지 말아야겠다고

숨기는 것 자체가 빚이 된다고 그리 체감했으니

앞으로도 우리 가족에게 민감한 일은

혼자서 끙끙 앓지 말고 함께 해결을 도모해야지.

그게 가족을 지키고 나를 지키는 일일테니.


#뇌졸중 #장애인가족 #가계경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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