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빠, 이젠 내가 지켜줄게

뇌졸중 환자의 가족 이야기 6편

by 단신부인

지금은 박물관에 전시돼 있을,

교육과정을 거친 나는 <법과 사회> 란 과목을 수강한 적이 있다.

그 당시 선생님은 '초, 중, 고등학교 때 배운 게 평생간다'고 하셨는데

허투루 넘겼던 그 말이 참말이었다.


얼핏설핏 넘겼던 개념 중 하나.

<성년후견인 제도>

그 카드를 내가 꺼내들 줄은 몰랐다.

스스로를 지킬 수 없는 아빠를 대신해

나와 엄마가 아빠를 지켜야 했으니까.


자본주의 사회에선 금융거래는 제한적으로 이뤄진다.

고도로 지능화된 금융범죄, 스미싱 등이 횡행하다보니

본인이 아니면 조회를 아예 해주지 않거나

전화로는 택도 없는 경우가 많았으며

지점을 방문해도 본인이 와야 한다며 퇴짜를 놓기가 일쑤.

일부는 입원증명서, 진단서 등 과도한 증빙을 요구한 끝에

겨우 아빠를 대리할 수 있었을 정도다.

그나마 일부는 기존에 있던 공동인증서로도 가능한 경우가 왕왕 있었다.


솔직히 진이 빠지고 지쳤다.

은행 대출 빚을 갚는다고 해도

본인이 아니면 창구에서 처리를 도와주지 않으니

우리 입장에선 이들이 도둑놈이요 천하의 나쁜놈들이나 다름 없는 셈.


제일 화가 나고 분하게 만드는 반응은 이러하다.

본인이 올 수 없으면 전화하면 되지 않겠냐고...

중증 뇌병변 장애인이라서 말을 잘 못 하고 문장을 일체 말할 수 없으며

핸드폰을 사용할 줄도 모르는데

무슨 동의를 하고 어떻게 소통이 가능한가?

금융사 직원이 출장을 와도 불가능하다.


특히나 엄마한테 너무 죄송했다.

비루한 딸자식, 아들놈은 가족과 멀리 떨어져

저 멀리 강원도에서 일하는데

엄마는 수도권에서 회사생활 하면서 오만 걱정거리를 다 안고

제 몸 성치 않은 지아비까지 돌보니 말이다.

자식된 도리로 도저히 가만히 있을 수 없었다.


하여, 성년후견인 신청을 하기로 결심했다.

그렇다고 먼 거리를 오갈 수는 없는 노릇이라

법률자문 관련 서비스 플랫폼에서도 검색해 봤는데

대리를 시키려고 보니 예상치를 훌쩍 넘는 단가를 부르더라.

하는 수 없이 발품을 팔기로 했다.

사전에 인터넷으로 가볼만한 곳을 검색한 뒤

주말에 법원 일대에 방문하여 법무사, 변호사 사무실에서 상담했다.

물론, 엄마를 모시고 갔다. 본인께서 안심해야 하니까.


업무를 대리한다고 해도, 최소 반년은 걸린다고 했다.

그래도 어쩔 수 없지 않은가.

어려운 법적 절차를 이해하면서 출석까지 하기엔

당장 먹고 사는 문제를 해결해야 할 우리에게 어려웠으니.

소위 말해 '내 코가 석자' 였다.


그래도 나를 낳고 기르는 데 일조한 아빠를 위해

어느 정도 비용 감수는 하자 싶었다.

약 150만원 정도의 수임료를 납부하고 계약이 시작됐다.

법무사와는 주로 문자, 전화, 메일로 소통했으며

중요한 안내 사항은 고지 받았다.


성년후견인은 꼭 한 명이 아니어도 된대서

성격이 영 꼼꼼하고 세심하지 않은 남동생을 제외하고

나와 엄마를 지정하기로 했는데,

그러자면 동생의 동의서가 필수적이었다.

녀석에게 사정을 잘 설명하니 둘이 어련히 알아서 하겠지- 라며

이견없이 술술 써줬다.


그래서 엄마는 돌봄과 케어 담당,

멀리 사는 나는 제도적 지원 쪽을 담당하게 됐다


한편, 법률 대리인을 뒀다고 해서 아예 법원 출석을 안 할 수는 없었다.

마지막 즉결심판 과정에선

거주지가 위치한 곳의 가정법원에 가야했다.


시간만 좀 오래 소요됐을 뿐이지, 판사들의 질의는 대답 가능한 수준이었다.

그렇게 나와 엄마는 아빠의 정식 성년후견인이 됐다.

즉, 합법적인 보호자가 된 것이다.

의사무능력자나 다름없는, 그를 보호하기 위해서.

권한 대리는 선택적으로도 진행할 수 있었지만

판사의 판단 여하에 따라 모든 권한을 부여 받을 수도 있다.

다만, 집과 자동차 같은 재산의 처분은 별도로 판결을 받아야 한다고 했다.


그저, 아비가 뇌졸중 발병 이전에 가입해놓은

불합리한 금융상품을 처분하거나 빚을 정리하는데

매우 불편한 본인확인 절차를 완화하고 싶었을 따름이다.


판결문은 두 번에 걸쳤다.

하나는 성년후견 개시에 관한 것이오,

다른 하나는 성년후견 감독에 관한 분이다.


이후, 모든 금융적 빚은 차용금 포함하여 몇년에 걸쳐 탕감했다.

애초에 자산이랄 것도 없었다. 물려받을 거라곤 빚밖에 없었고.

실제로 내가 결혼하는 과정에서 친정에서 지원받은 게 거의 없었다.

남편에게 참 미안했지만 사정을 잘 헤아려줘서 얼마나 다행인지.


아무튼, 판결 이후 번거로운 게 하나 있다면

매년 제출해야 하는 성년후견 감독보고서 작성 의무이다.

어차피 내가 처리하니 엄마가 걱정할 일은 아니다만

그래도 마음만은 편하다.

혹여 아빠한테 무슨 문제가 생긴다면

나와 엄마가 당신을 대리해 해결해줄 수 있으니.


아빠, 이제 내가 지켜줄게.

그러니까 아프지 말고 속 썩이지 말고

병원에서 선생님들 말 잘 듣고 있어야 해?


코로나19로 인한 면회 제한 때문에

얼굴은 못 보러 가지만, 늘 걱정하고 있어.

꼭 다시 만나, 우리.


#성년후견인 #뇌졸중 #가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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