관계란 호혜성을 요하며, 때론 예의가 필요해
할머니 장례식을 기점으로
인간 관계에 대한 회의감이 물씬 들어서 곱씹어 생각해보았다.
관련된 몇 가지 일화를 소개한다.
할머니 지인분들, 정말 서운한 게 맞습니까?
할머니 발인 이후, 가족과 함께 유품을 정리 중이었다.
허리가 불편하여 바깥 생활을 많이 못한 탓에
옷가지는 새것이나 다름 없는 것,
생활용품 역시 성한 것 투성이었다.
생가 인근에 경로당이 있는데
물건 정리 하느라 부스럭 대니까
종종 친하게 지냈다던 분들이 뭐하나 싶어서 찾아오셨다.
나는 얼굴도 처음 보는 할머니들이다.
"아이고 나는 서운해~" 라면서
정말로 서운한 표정이 아닌 듯 하고
득달같이 당신들에게 필요한 물건을 찾아가는 모습이 인상깊었다.
물론, 인생사 공수래 공수거라
어차피 우리 가족에겐 전부 다 처분할 물건이었고,
엄마는 차라리 필요한 분들에게 드리는 게 낫다셨지만
어느새 세상에 찌들어버린, 사회중년생인 나에겐
그 분들껜 죄송하게도 그닥 곱게 보이진 않았다.
내가 예민하고 못되먹은 성격이라 그런 것일까- 치고
할머니는 죽어서도 나눔하고 가시는가보다 하며
허탈한 웃음만을 지었다.
강조하건대, 그 분들께 드리는 게 싫었던 건 아니다.
어차피 드릴텐데, 뭐가 그리 급했을까.
앞에선 위로하면서 뒤로는 방 빼라니?
할머니가 생전에 거주하던 곳은 오래된 전셋집이었다.
형편을 익히 잘 알고 있으며,
약 30년 이상을 알고 지낸 분이 싸게 세를 내 준 곳이다.
유품을 정리하는 중에
집주인의 며느리 되는 분께서 여러 가지 물어봐주셨는데,
엄마와 작은 엄마가 유달리 그 분의 눈치를 보며
비싼 과일을 드리고 신경쓰는 모습이 이해가 되지 않았다.
알고보니,
혼자 살던 할머니가 병환으로 앓아누운 이후
계속 방을 빼라는 요청이 있었단다.
때가 되면 어련히 알아서 할까.
어차피 오늘, 내일 하셨던 분인데
꼭 그래야만 했을까.
물론, 임대인의 사정이란 게 있을 수 있다.
한데, 우리가 전세금을 다 못냈느냐? 아니다.
공과금을 밀렸느냐? 그것도 아니로소이다.
최소한 할 도리는 다 해왔는데도
집주인의 권리를 그런 식으로 종용해 왔다니
참으로 씁쓸한 일이다.
20년 만에 만난, 소꿉친구가 장례식에 왔다
할머니 장례식에 찾아온 조문객 중에 의외의 인물이 있었다.
첫 눈에 못알아봤는데, 이름을 듣고 알아챘다.
20년 만에 만난 소꿉친구이자, 먼 인척이었다.
그 어머니 되시는 분이 돌아가신 이후
연락이 완전히 끊긴 사이였는데, 종종 할머니 안부를 묻곤 했단다.
가난했던 나의 어린 시절에,
할머니는 우리 남매는 잘 못 챙겼어도...
소위 '잘사는' 이들의 식모 생활을 다년간 한 적이 있는데
그 때 돌봄을 받았던 고마움을 잊지 않았던 거다.
나의 소꿉친구는, 무려 20년 만에 만났음에도 불구하고
어린 시절 자신들을 세심하게 보살펴 주었던
할머니를 잊지 않고 찾아와줬는데도,
일부는 우리 할머니와 그리 오래 알고 지냈건만
뒤돌아서고 나니 남이고, 제 잇속을 우선 챙길 수도 있다는 걸 알았다.
본인들이 말로써, 행동으로써 지은 과오는
언젠가 어디에선가 그대로 돌려받겠지.
세상은 그렇게 순환하니까.
일련의 사례를 통해
영원한 우정, 의리는 없다는 결론을 내렸다.
잘 모를 순 있어도, 몰지각해서는 안되며,
사람 관계에선 아무리 친해도 예의가 필요하다.
씁쓸하지만, 이참에 인간에 대한 회의를 느꼈으니
나도 혹시라도 말과 행동으로 우를 범하지 않도록 주의해야겠다.
세상에 영원한 우정, 의리 같은 게 없다고 해도
이성과 감정이 살아있는 인간으로서
모든 인간관계에 예의를 지켜야겠다.
#우정 #의리 #인간관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