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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주 만에 회사에서 잊혀졌다

직장에 충성하지 말아야 할 나만의 이유

by 단신부인

휴직을 했다.

휴먼굴림체로 있는대로 나를 부려먹던 회사 내지 조직은

일주일 만에 나를 완전히 잊고 대체했다.


회의감이 물씬 들었다.

하루 이틀 일한 것도 아니고

다년간 일해왔던 나의 노력이나 성과가 과연 회사에 득이긴 했는가?

직을 그저 유지하는 것 외에

더이상 내가 기여할 필요가 있을까?

난 그저 쓸만했던 장기말 중 하나였지 않을까?


기실, 휴직하기 전 회사에 번 아웃을 느낀 포인트는 수차례 왔다.

가장 서운한 일을 떠올려보자면 포상에서 여러 차례 누락되었을 때다.

한, 두번은 이해했다.

그래 그럴 수도 있겠지.

고매하신 심사위원님들이 어련히 알아서 평가하셨을까.

나보다 더 대단한 업적을 남긴 직원이 있었겠지.

한데, 이러한 일이 다년간에 걸쳐 5회 이상 반복되자

돌연 의구심이 생겨났다.


왜?

회사에 상을 몇 번이나 안겨주고

회사가 평가를 잘 받는데 직접적으로 관여했으며

'성실' 하면 무엇하나 빠진 게 없는 내가?

한, 두해도 아니고 '연속으로' 외부 평가기관으로부터

지적이나 감점 받지 않게 관리해왔던 내가?


성과를 내고 아니고는

입사시기와 연관성이 100% 있다고 단정하지 못한다지만

나보다 늦게 입사한 사람이 어째 족족 받아가는 걸 보니

마음 속 얄팍한 마음이 콕콕 쑤셨다.


지사 대표로 포상 대상자로 추천 받을 때마다

매번 파이널 라운드에서 참패를 면치 못했고

직원 중 고참급에 해당하는 나로 인해

동일 근무지 소속 후배들까지

순서가 밀리는 것만 같아 종종 미안함을 느꼈다.


그제서야 깨달은 참담한 심정은

스스로 나를 '포상 들러리'라고 여기기 시작했다.

언젠가부터 '여우와 신포도' 일화에서처럼

추천 대상이 되기를 거부했다.


'어차피 해봤자 안 될 테니까'

'회사는 나의 업적과 상관없이 날 곱게 보질 않으며

줄 생각 따윈 1도 없이 나를 굴리려 했으니까' 라며

학습화된 무기력이 엄습해왔다.


회사로부터 질리게 된 두 번째 포인트는 이렇다.

나의 업무와 관련된 공로연수에서 누락되고

전혀 생뚱맞은 중간 관리자가 나를 대신해서 갔다.

그들은 직접 기여한 바가 아무것도 없는데도.

그동안 업무과 관련된 모든 이들이 공로를 인정받아

멀리 유람 내지 학습할 수 있는 기회를 얻어왔기에

자연스레 나도 갈 수 있지 않을까 기대를 한 게 사실이다.


나중에 선임을 통해 듣게 된 말도 안되는 썰 하나.

내가 근무지 이동을 했고,

이동한 지사에서 갈 사람들이 여럿 되니 다른 사람을 선발했다는 것.

이 무슨 황당한 판단이란 말인가.

이쯤되니 저도 모르게 임원들에게 찍힌 것은 아닐까 의심했다.

허나, 심증만 있고 물증은 확실하지 않은 셈이다.

그러려니 하고 넘겼지만 마음 속 앙금이 결국 남았다.

생각보다 기억력이 좋은 편이라서.


마지막 포인트는 부당한 인사 발령이다.

기관 대 기관으로

본사에서 이동을 시킬 적엔 적어도 희망지 여부는 타진하고

경력과 이력, 시기까지 고려하여 배치를 했는데

규모가 상대적으로 작은 지사에선 관리자가 곧 권력자로 군림하는 형국인 듯 하다.

몇 년간 성실하게 근무해 온 날 통보식으로 배치해버렸다.

모든걸 당사자 없이 결정해놓고서

결정권자는 '그냥 명령할 수 있는데' 면담을 하는 거라며 실언을 일삼았다.

그 말에 몹시 기가 찬 건 나 뿐만이 아니었을테지.

당신께서 말로 내뱉은 과오는 언젠가 꼭 돌려받으시길.


서운하게 생각하지 말라며

그 결정에 참여한 이 중 하나가 날 다독였다.

겉으로 괜찮다고 말한 건 그저 그에 대한 예의였을 뿐

결코 본의가 아니었는데.

입사 이래 얼마나 회사에 참아왔는지를 어찌 당신에게 풀겠는가.

당신 또한 장기말 줄 하나였겠지.


결정적으로, 맞벌이 주말부부가 얼마나 힘든데,

겨우 주말에나 원거리에 있는 소중한 가족을 보러 가는데

그마저도 '주말근무'가 있는 부서로 보내니,

모든 일상생활이 망가진 기분을 느꼈다.

그러고도 회사는 계속 날 휴먼굴림체로 부리려 했지.

계속 굴러가야 했으니까.


너무나 크게 번 아웃이 왔다.

이대로는 안될 것 같았다.

스트레스가 막심했고 2세 계획마저도 연거푸 물거품이 됐다.


하여, 휴직을 했다.

철저하게 업무 인수인계까지 완수하고서.

다행히도 회사에서 나에게 연락하는 일은 거의 없었다.

회사로부터 잠시 안전 이별을 한 셈.


다시 돌아가더라도 이전처럼 순진하게 당하지만은 않으리라.

철저하게 되갚아줄 수는 없다 하더라도

눈에는 눈, 이에는 이가 될 것이다.


#직장생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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