변명엔 단서가 붙는다
스스로의 나태함을 향한 강한 쓴소리
게으른 편이라 자평하는데
주변인들은 종종 나를 부지런하다고 말한다.
결코 그런 후한 평가를 내릴 수 없음을
스스로는 아주 잘 알고 있는데도.
회사에 다니던 때엔 그럭저럭 꽤 규칙적인 생활을 했다.
7:30에 일어나고 7:40까지 씻으며
8:00까지 밥을 먹고 8:10에 젖은 머리카락을 말리곤 했으니.
휴직을 하고서 제일 어려운 건 기상이었다.
어째 더는 같은 시간에 일어날 수가 없다.
집안에만 있으면 어째 나태해지는 기분이 들고
가만히 침대에 누워 있노라면 자연스레 눈이 감긴다.
잠이 늘었다.
낮잠이고 저녁잠이고 하루에 쪽잠 30분은 기본이 된 셈.
휴직한 지 불과 몇 주만에 이러하니, 기가 찰 노릇이다.
하여, 날 부지런하다고 평가하는 사람들에게 말한다.
게으르지만, 성실함으로 그걸 극복하고 있노라고.
실로 그러하니까.
이성을 제외한 본능 입장에서만 설명하자면
늘 편한 것만 찾게 되더라.
그러다보면 게으름을 넘어 나태함이 찾아올 것이고
그게 나한테 얼마나 악영향을 줄 지는 뻔할 뻔자.
그러니 이성으로 최대한 막아야지 않겠는가.
이 몸뚱아리를 적어도 국민연금 받을 때까지는 두루 써먹어야 하니까.
입에 좋은 약은 쓰다고 한다.
때로는 독약과도 같은 이성을 계속 주입시켰다.
집 안에 갇혀있지 말고 밖으로 나가라고.
밖에 나가서 제발 뭐라도 하라고.
헬스장은 헬스장에 가기까지가,
목욕은 씻으러 들어가기까지가,
먹고 난 뒤에 설거지 하기까지가,
머리카락을 감아야 하는데 물을 묻히기까지가,
기타 모든 예시를 포함해서
시작하기 전까지가 제일 어려운 법이다.
마음만 먹으면 금방인데도
그 사실을 이미 알고 있는데도
편함을 추구하는 본능은 계속 유혹을 한다.
변명에 단서를 붙이라고.
나는 주변 지인들이 고민을 털어놓을 때면
공감해주다가도 현실적 방안을 주로 제시하곤 했다.
감정만으로는 기분은 나아질 수 있어도 상황이 개선되진 않으니까.
어느순간부터 같은 조언을 반복케하는 지인들에겐 직언을 포기했다.
한국인 예법 상(?) 한 세 번까지는 얘기한다.
그 이상으로 암만 말해봤자, 그들은 들을 생각이 없다.
아니, 정확히는... 흘려듣고는 실행할 생각을 안 한다.
내가 답답해한다고 무슨 개선이 될까.
뭐든 할 준비가 되어 있는 사람이라면 바로 실천에 옮겼을테지.
관여하고 통제하기 어려운 남의 형편 보다야
나부터 부양하는 게 더 쉽지 않겠는가.
그래서 매 번 내 안의 게으름과 투쟁한다.
내게 가장 큰 구원투수가 내 자신이듯,
가장 큰 적도 바로 나 자신이다.
스스로 변명을 일삼지 말자.
변명에 단서가 붙으면 다음과 같은 어미가 붙곤 한다.
~해서, ~니까, ~라서
그 말이 나오려는 걸 꾹 참고 한 번 실행하기까지가 늘 어렵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실행을 멈추지 않아야 할 이유는 단 하나.
변명(Excuse)에는 단서가 붙지만
행동에는 결과(Result)가 따른다는 것.
긍정적이든 부정적이든 피드백 할 수 있는 그런 결과 말이다.
그 다음 행동을 선택하게 만드는 무언가.
내일도 나 자신과 싸울 것이다.
지겹도록 내 생에 따라붙을 게으름과.
#변명 #습관 #이성