또 만나요 나의 소중한 가족이여
지난 1년간 매일부부에서, 복직하자마자 다시 주말부부로 돌아왔다.
이전과 크게 달라진 건, 더 이상 내가 매주 고향으로 가지 않는다는 점이다.
임산부에게 장거리 운전과 이동은 상당히 부담스러운 일이니까.
편도 120km, 운전을 해도, 대중교통으로도 2시간 이상이 걸리는 거리.
홀몸이었으면 기꺼이 감내했을 수도 있겠으나 임신 중기에 다다른 지금은 삼가게 됐다.
태동을 시작한 태아는 나의 일거수일투족과 상관없이 본능적으로 일어나고 가만히 있고를 반복한다.
혈류량을 증가시키려 심장은 빨리 뛰고, 기력이 금방 소진되어 하루 8시간 일하고 집에오면 지친다.
그러니 몸을 사릴 밖에,
나와 아이가 보거싶거든 당신이 오시오 남편.
그를 부르니, 남편이 내쪽으로 오는 경우가 왕왕 있었다.
이왕지사 집에 오는 거라면, 간만에 장거리로 와야한다면 오래 머무는 게 좋겠지.
마침 운 좋게도 연휴 다음날이 태아 검진일로 잡혔다.
남들 다 귀성 마치고 편하게 복귀할 수 있겠지- 하는 생각에 쾌재를 불렀다.
시간은 어쩜 이리 빨리 가는가.
나는 30분 이내에 다시 강원도로 돌아가야 하는 몸...
휴일은 짧고, 일하는 날은 많다.
집으로 출발하던 날,
역귀성이라 길이 막히지 않음에도 불구하고 일찍 발걸음을 뗐다.
새벽 5시. 그게 너무 이른 시간이었을까.
도시와는 달리 시골의 새벽은 캄캄한 어둠만이 자리한다.
30분 일찍 깨서 차를 데워놓길 잘했다. 출발 당시 기온은 영하 10도였으니.
앞유리엔 선명한 눈결정이 얼어있어 시야를 가렸고, 차문은 잘 열리지도 않았다.
얼어서 빠각거리는 얼음 부서지는 소리가 귀에 선연히 들릴 정도였다.
구태여 KTX 명절기차를 예매하지 않았으니, 오롯이 내가 운전해서 가야한다.
네비게이션을 찍어보니 평소보다 약 30분은 더 짧게 도착시간이 책정된다.
임신 전에는 2시간 연속 운전도 소변 참을만 해서 충분히 가능했다.
임신하고부턴 방광이 약해져 1시간 마다 쉬어가야하겠다고 생각했다만,
무려 30분이나 시간이 단축된다고? 그렇다면 얘기가 다르지.
여유있게 IC 근처 주유소에서 기름을 넣고 가야지- 하는 생각이었다.
그런데 아뿔싸!
출발지가 강원도 격오지임을 간과했던 탓일까.
예상치 못하게 셀프주유소의 불, 모든 주유기는 꺼져있었다.
도시에 가서 기름을 넣을까, 아니면 중간에 저렴한 휴게소가서 넣을까 고민했건만
어차피 시간도 남는 김에 차를 돌렸다.
지역화폐도 써야했고, 마침... 2월 한달은 가맹점에서 사용 시 캐시백이 15%였다.
그렇다면 넣지 않을 이유가 없지! 5만원을 주유해서 7,500원이나 돌려받을 수 있는데.
주변에 차와 가로등이 없어 깜깜한 도로를 천천히 달려 유턴을 했고,
마침에 그 이른 새벽에도 열려있는 주유소를 발견했다.
그리고 주유구를 열려는 찰나... 어?
이게 왜 안 열리지?
손으로 누르면 딸깍- 하고 열리는 주유구가 얼어서 열리지 않았다.
입춘이 지났건만, 강원도의 겨울은 가혹했으며 혹독했다.
주변부를 매만져 녹이고 나서야 겨우 열렸고, 다행히 속 안의 주유캡은 어렵지 않게 열렸다.
기름을 넣고 다시 출발, 어두운 고속도로 속으로 진입했다.
대체 우리나라 사람들은 왜 이리 부지런한가.
강릉, 동해 방향 영동고속도로는 새벽 5시라는 이른 시간에도 반대편 차선의 차 수가 많았다.
줄줄이 전조등을 밝혀 오는 모양새가 성탄절날 촛불을 들고 오는 행렬같아보였다.
덕분에 반대편 차선에서 막힘없이 달렸던 나는 어둠에 잠식당해 무서워하지 않고 운전할 수 있었다.
그리고 깨달았다.
아 다음 번에는... 그냥 날이 밝을 때쯤 출발해야겠다고.
아참, 어차피 6월이 출산일이니 추석 땐 역귀성할 일이 없겠군.
요즘 아파트엔 등록한 차가 입차하면 집에 알림이 가는 서비스가 있나보다.
도착한 시간은 아침 7시, 남편이 부스스한 모습으로 현관 앞에 서 있었다.
뱃속에 있는 태아와 나를 잠깐 맞아주고선 다시 방으로 들어가 잠을 청한다.
나도 피곤했던 몸을 뉘이고 아가와 함께 휴식을 취했다.
다음날은 설날 당일.
시어머니는 내 건강을 염려하여 오지 않아도 된다고 하셨기에 전화로 갈음했다.
하지만 친정은 다르지. 제사를 지내지 않는 집이라고 해서 가지 않아도 되는 건 아니다.
근 두 달만에 보는 엄마라서 이번에는 꼭 뵈어야했다.
오전 9시까지 가기로 엄마와 약속한 것까진 좋았는데...
야속한 남편의 구 선임들이 그를 불러내고야 말았다.
그들은 가정은 있으나 나처럼 임신한 아내는 없는 이들.
예전에 남편이 신세진 바가 있어 보내는 주되, 밤 10시까지 돌아오라고 했다
허나, 정작 술에 꼴아서 당신께서 돌아온 시간은 밤 12시. 해도 너무했다.
눈치껏 돌아올 수 있도록 9시부터 계속 전화로 돌아오라고, 남편 보내달라고 애걸했건만
다음 번엔 좌시하지 않겠다. 직접 차를 끌고서라도 모시러 갈 것이다.
그러고도 내 아이의 아비를 놓아주지 않는다면 당신들은 나한테 가정파괴범으로 제대로 찍힐 것이다.
몸상태로 보아, 도저히 오전 9시까지 갈 수 없을 듯 하다.
이른 아침 깨자마자 전화해서 남편 상태가 말이 아니니 10시까지 가겠노라 전했다.
엄마가 끓여주는 떡국은 내가 끓인 것과는 다르게 늘 맛있다.
하다못해 들어간 고기까지 부드럽게 씹힌다.
작년 추석 때만 해도 바닥에 상을 놓고 나란히 앉아 먹었으나,
배가 부르고 몸이 말을 듣지 않아 결국 나 혼자 쇼파행을 택했다.
먹고 싶은 반찬이 있으면 마치 아기의자에 앉은 아이처럼 "이거 줘"를 외쳤고,
남편과 엄마는 임신한 나를 먹이기 위해 상전 모시듯 코앞까지 반찬을 갖다주었다.
왠지 모르게 기묘한 감정이 느껴졌다.
설날 다음날은 각자 친구들과 약속이 있는 날이다.
이미 설 전날 술에 취해 늦게 돌아온 전력이 있는 남편은, 웬일로 이번엔 일찍 돌아왔다.
명절 친구들 중 한 명이... 당뇨 확진을 받아서 오래 앉아서 계속 먹기 불가능하고 술도 안된다고...
그 얘기를 듣고 든 생각. 당신도 이제 조심해야 하는 나이라는 것.
한편으로는 나도 걱정되었다. 다음 4주 뒤에는 임신성 당뇨 검사를 해야 하니까...
실로 평안하고 조용히 보낸 날이었다.
그리고 다음날.
몇달째 씻기지 못했던 차를 세차하는 날이었다.
그간 늘 혼자 갔으나 예약해둔 셀프세차장에 이번엔 남편을 처음으로 데려갔다.
튀어나온 배 때문에 몸을 구부리기도 어려워 타이어 구석구석 솔로 닦기가 어렵고,
몸이 닿으면 흠뻑 젖을 것을 염려한 탓이다.
여러 차례 세차를 거듭해 온 나는 기능을 알려주며 학습시켰다.
그 속뜻은 무엇인가?
아이를 낳고, 돌볼 즈음엔 내가 갈 수 없으니 당신 혼자 가셔야 한다는 의미되겠다.
혹은 당신이 돌보고 내가 가든지. 그것이 육아분담이니까.
연휴 마지막날은 평이하게 보냈고, 그리고 남들 다 출근하는 13일이 돌아왔다.
이 날은 태아검진 날이다.
간만에 자란 우리 아이는 어느새 500g. 조금만 있으면 1근 돌파다.
지난 19주차에는 299g이더니 어느새 약 2배 증량을 했구나. 기특하기 그지없다.
오늘은 정밀초음파를 찍는 날이라 꽤 오랜시간 산부인과에 머물러야 했다.
한데 이녀석,
휴일임에도 새벽 5시나 6시에 깨서 왼쪽 배를 쾅쾅 발로 차더니... 오늘은 멀쩡하다.
초음파로 확신하게 됐다. 발이 이쪽에 있어서 그랬구나!
4주 뒤엔 입체 초음파를 찍어야 하니 그 때는 제대로 얼굴을 보여주렴.
이제는 태동을 남편까지 느낄 수 있게됐다.
나야 뭐 시도때도 없이 뱃속에서 꿈틀대니 잘 있는지 확인 가능하지만
아이 아빠는 배를 만지고 지긋이 오래 기다려야 꿍- 하는 발소리가 느껴진단다.
제 아이의 태동이라 무척이나 신기해했다. 앞으로는 더욱 놀랄 일들이 많아지겠지.
짧고도 긴 연휴가 끝났다.
이제 먼 길을 다시 돌아 강원도로 돌아가야겠다.
안녕, 또 만나요 매주 볼 수 없는 나의 가족.
새해 복 많이 받기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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