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말부부 복귀 2개월차 현실
1년 휴직하고 직장에 돌아왔다.
다행히, 휴직하고자 했던 소정의 목적을 무사히 달성했고,
원소속 복귀가 원칙이라 인사이동 대상자임에도 원래 자리로 돌아올 수 있었다.
작년 3/4분기에 희망 근무지 조사를 실시할 때에도
현재 임신 중이며 다음 연도 상반기 중 육아휴직을 쓸 예정이라
현 소속을 유지하고 싶음을 강력히 어필한 것이 먹혔나보다.
회사와 업무에서 아예 손을 뗀 지 한참의 기간이 지났기에...
적응을 못하면 어떡하지?
내가 실수라도 하면 어떡한담? 하는 고민이 든 것이 사실이다.
허나, 기억이란 머리로만 하는 게 아닌가 보다.
전자 시스템, 일부 인력은 조금 바뀌었을지언정, 근본적인 틀은 변치 않았다.
보고서나 공문서를 쓸 때도 자연스럽게 손가락이 단축키를 눌렀고,
분명 대뇌 속 어딘가에 묻어두었을 업무 용어들이 술술 나왔다.
경력이란 역시 허투루 쌓이진 않나보다.
직장에서 성실하게 일해왔던 경험은 어떻게든 도움이 된다.
새로 채용되거나 다른 지사에서 온 낯선 인력의 이름과 얼굴을 매칭시키는 일을 제외하고는
2주 이내로 현업에 적응할 수 있었으니, 참 다행스러운 일이 아닐 수 없다.
다만, 임신 전후로 달라진 점은 매주 집에가지 않게되었다는 점이다.
자동차로 가나 대중교통으로 가나 편도 2시간 걸리는 이동은 부담스럽다.
좁은 공간에 오래 있으면 답답함에도 불구, 후천적 집순이가 되기로 했다.
더구나 주말에 대부분 집에 혼자 있을 집돌이 남편과는 달리,
본인은 한 몸이되, 홀몸은 아니고 두 개의 심장이 뛰는 사람이 아니던가.
심지어 차도 하이브리드 자동차다(?)
하여 외롭지 않다.
어느날, 육아맘인 동료 하나는 이렇게 말했다.
아이가 말 안 듣고, 떼쓰고 자주 아플때면 차라리 아이를 뱃속에 품고 있을 때가 그립기도 한다고.
산모 본인의 건강만 오롯이 신경쓰면 태아는 모체의 영양분을 빨아먹고 편안하게 있을 수 있으니.
영영 뱃속에 품고 있을 수만은 없다는 걸 아나,
한 몸으로 연결되어 함께 있을 수 있는 지금, 조금의 불편함은 기꺼이 감수하려고 한다.
강제 집순이가 되어서라도, 좋아하던 아메리카노를 다 끊어도,
휴일이면 즐기던 시원한 생맥주 한 잔도 당분간 포기할 수 있다.
임신 전엔 할 게 없어서 지겹고 답답하기만 했던 강원도 깡촌 근무지도
임신하고보니 차도 적고 공기도 맑고 더없이 평안하기만 하다.
왜 도시의 바쁜 일상에 지친 이들이 촌캉스나 힐링여행을 오는지 비로소 이해가 간다.
느림 속에 미학이 있음을 이제는 안다.
숲태교, 촌태교 굳이 갈 필요없이 매일 시골에 있는 지금이 태교나 다름없다.
주말에 도시로 돌아가면 빠른 인터넷에, 콘텐츠 몰아보기를 하느라 늦게 자곤 했는데...
TV도 없고 인터넷 연결도 원활치 않은 이곳에서는 일찍 자고 일찍 일어나는 것이 습관이 되었다.
어렸을 적 서산에 있는 외갓집에 끌려가면
어르신들이 꼭두새벽부터 기침하여 밥 먹으라고 채근하는 것이 화가 났는데,
정작 시골에서 근무를 해보니 그럴 수 밖에 없는 환경임을 알게 되었다.
일찍 자니까 일찍 일어나게 된다.
그리고 뱃속 태아도 새벽에 모닝 발차기를 해댄다. 일어나라고.
이야... 참 효녀가 아닐 수 없다.
잦은 야근으로 피로에 쩔어있는 남편도 종종 주말에 나를 보러 오는데,
당신도 할 게 없어서 따끈한 방바닥에 몸을 지지고 깊은 숙면을 취하니
다음날 두통이 말끔히 사라졌다고 신기해했다.
격주에 한 번씩은 내가 가거나 혹은 남편이 오기로 했다.
임신 5개월차가 넘어가니 배가 불러 점점 힘들어질테니,
아마도 남편이 내 쪽으로 오는 빈도가 늘어날 것이다.
매일 보지 못해도,
남편의 유전자 반을 따온 아기가 내 안에서 숨쉬고 있으니 외롭지 않다.
출산휴가를 떠나는 그 날까지 남편이여 잠시만 안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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