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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평온 Feb 13. 2024

흔들리는 너에게

『균형 - 유준재 (지은이), 문학동네, 2016』

설날 연휴를 맞아 친정에 다녀왔다. 같은 도시에 살면서도 코로나19로 인해 예전처럼 자주 만나지 못했기에 부모님과 동생들이 더욱 반가웠다. 시간 가는 줄 모르고 엄마가 차려주신 음식들을 먹으며 실컷 수다를 떨었다.

친정에 가면 대체로 나는 과식을 한다. 이번에도 사나흘을 굶은 사람처럼 허겁지겁 먹는 나를 지켜보며 남편은 슬며시 타박을 주며 말렸지만 이미 내 앞의 그릇들은 깨끗이 비워진 상태! 기분 좋게 잘 먹었지만, 내 위장은 예전과는 달리 제 기능을 발휘하지 못했다.

집에 돌아오자마자 속이 울렁거리더니, 심한 편두통이 시작되었다. 내가 체했을 때 나타나는 전형적인 증상이었다. 소화제를 먹고 그 무서운 손가락 사혈까지 총동원했지만 고통은 쉽게 가라앉지 않았다. 머릿속에서 ‘과유불급’이란 단어가 왔다갔다 떠다녔다.     

‘아, 도대체 나는 왜 ‘적당히’를 모르는 거야. 다이어트 한다며 굶을 때는 언제고, 왜 이렇게 식탐을 부리는 건데!’     

머리를 싸매고 누워서 후회하고 자책하며 다짐했다. 다음부턴 무슨 일이 있어도, 아무리 맛있어도 내 사전에 식탐은 없다. 유혹에 흔들리지 않고 적당히 먹으리라…

삶의 모든 부분에서 이렇게 ‘적당히’의 중요성을 실감하게 되는 경우가 참 많다.

적당히 일하기, 적당히 놀기, 적당히 거리두기...

너무 과하거나 부족해서 낭패를 보는 일이 비단, 식습관만의 문제는 아니다. 나는 뭔가에 빠져들면 다른 일은 뒷전으로 밀어놓기 일쑤다. 좋아하는 드라마를 보느라 2박 3일동안 거의 밤을 새느라 온 집안이 뒤죽박죽이었던 적도 있고, 새벽까지 업무를 처리하다가 기진맥진한 경험도 한두번이 아니다.     

그런데, 가만 보면 온 세상, 모든 사람들이 나와 비슷한 상황을 살고 있다. 일과 여가, 우정과 사랑, 식탐과 다이어트 등의 숱한 문제 상황에서 이쪽저쪽으로 흔들리며 균형을 잃는다.

태어나는 순간부터 우리는 수많은 흔들림 속에서 살아간다. 비틀비틀 넘어져 가며 걸음마를 배우고, 자전거를 익힌다. 내 마음 속에서 일어나는 다양한 감정들, 가족, 친구와의 관계, 학교나 사회생활에서도 수많은 형태의 흔들림이 존재한다.

인터넷 뉴스나 SNS에 올라오는 각양각색의 언어들에선 한쪽에 치우친 생각과 행동들이 어지럽게 쏟아지고, 그 속에서 우리는 이리저리 흔들린다. 생각과 생각, 말과 말, 사람과 사람, 이것과 저것 사이에서 아슬아슬 균형을 잡기 위해 노력한다.     

잠시라도 긴장을 늦추고 생각을 멈추어 균형을 잃게 되면, 우리의 삶은 균열이 생기고 많은 난관에 부딪친다. 건강, 사랑, 관계, 행복 등등, 대부분의 중요한 가치들은 균형을 유지할 때만이 우리 곁에 건재하기 때문이다.

어느 한 쪽에 치우치지 않는 것. 너무 과하지도 않고, 모자라지도 않는 것. 균형은 공자가 지극한 덕으로 칭송한 가치, 중용이다.

그러나, 넘치지도 모자라지도 않게 균형을 유지하며 사는 것은 결코 쉽지 않은 일이다. 삶과 세상에 대한 끊임없는 정성과 진지한 성찰이 있어야만 하는 이유다. 

   

유준재 작가의 그림책 <균형>은 매순간 끊임없이 균형을 유지하기 위해 애쓰는 우리의 삶을 이야기한다.

파란 공과 지렛대 위에 아슬아슬하게 서 있는 소년, 떨어질 듯 위태로운 곳에서 균형잡기 연습을 한다. 수많은 연습 끝에 올라온 무대 위에서 소년은 잔뜩 긴장한다.

그때, 줄을 잡고 뛰어내린 소년의 손을 잡는 한 소녀가 있다. 

   

겁낼 거 없어, 혼자가 아니니까.

우린 잡은 손을 놓지 않을 거야.

너에게 눈을 떼지 않을게.

너에게 귀를 기울일게.    

 

아슬아슬 균형을 잡는다는 것, 분명 어렵고도 힘든 일이다. 그러나, 함께 손잡고 호흡을 맞출 누군가가 있다면 우리는 더욱 쉽게 균형을 이룰 수 있을 것이다.

소년과 소녀는 함께 호흡을 맞추며 커다란 공을 굴리고, 마침내 모든 서커스 단원들과 아름다운 피라미드를 만들어 균형을 이룬다. 모두의 협력으로 이룬 가장 완벽한 모습이다.

삶의 흔들림 속에서 균형을 잃으면 많은 것들이 함께 무너진다. 그것은 건강일 수도 있고, 일이나 사랑, 사람일 수도 있다. 그 위태로운 순간 균형을 잃지 않도록, 누군가에게 기댈 수 있고 함께 할 수 있다면, 우리는 어느새 거대한 피라미드를 만들어 단단히 균형을 잡게 될 것이다. 누군가에게 내가 먼저 손 내밀고 눈빛을 맞추며 함께 호흡할 수 있기를 바란다.

그리하여 서로 다른 우리가 함께 흔들리지 않는 피라미드를 만들어낼 수 있기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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