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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평온 Feb 13. 2024

삶의 의욕을 잃은 너에게

『틈만 나면- 이순옥, 길벗어린이, 2023』

3월, 모든 것을 새롭게 준비하고 시작하는 계절이다. 하지만, 봄을 느낄 사이도 없이 정신없이 일하다 보면, 벚꽃과 목련의 계절은 늘 속절없이 지나갔다. 

올해도 그렇게 봄을 허무하게 보낼 수는 없겠다 싶어, 늦은 오후 아파트 주변을 산책했다.

느릿느릿한 걸음으로 동네 주변을 둘러보다가 문득 발 밑을 내려다보았다. 

세상에나! 단단한 보도블록 틈 사이로 작은 민들레 한 송이가 나를 보며 노랗게 웃고 있었다.

그 환한 미소가 너무 예뻐 눈을 떼지 못하고 한참을 바라보았다.

시멘트 사이에서 피어난 민들레를 보며 이안 시인은 “금 간 곳에 달아주는 노란 단추”라 했다. 온 세상이 시끄러운 파열음을 내며 쪼개진 이 균열의 시기에도 민들레는 좁디좁은 틈에서 희망처럼 피어난 것이다. 

어디 민들레뿐일까. 척박한 아스팔트 도로, 갈라진 틈을 비집고 무성하게 잎을 펼친 잡초들이나 높은 담장 위를 거침없이 기어오르는 담쟁이덩굴을 보고 있노라면 그 경이로운 생명력에 숨을 죽이게 된다. 

    

그림책 『틈만 나면』은 이렇듯 우리가 주변에서 흔히 만날 수 있는 들풀의 생명력에 대해 이야기한다. 

‘어디라도 틈만 있다면’ 피어날 수 있고, ‘한 줌의 흙과 하늘만 있다면’ 꿈을 꿀 수 있는 들풀의 당당한 외침은 무기력하고 나태한 나를 일으켜 세운다.

화려한 꽃이나 탐스런 열매 없이도 ‘나’로 살아갈 수 있다면, 우리는 멀리 나아갈 수도 있고, 높이 올라가 마침내 담장을 넘을 수도 있다. 

 그림책을 읽고 나니, 어릴 적, 국어 교과서에 실려 있던 안데르센의 “ 다섯 개의 완두콩” 이 떠올랐다. 한 소년의 고무총에 의해 멀리 날아간 다섯 개의 완두콩, 그 중 다섯 번째 콩은 어느 지붕 밑 창가에 떨어진다. 오랜 병으로 삶의 의욕을 잃었던 소녀는 좁은 창문 틈에서도 힘차게 싹을 틔우고 꽃을 피우는 완두콩을 통해 희망을 얻고, 마침내 기운을 차린다. 

오 헨리의 ‘마지막 잎새’에서도 아픈 존시는 거친 폭풍우에도 굴하지 않는 한 장의 담쟁이 잎에서 삶의 의지를 배웠다. 

살아간다는 것, 삶은 때론 몹시도 외롭고 힘겹다. 각양각색으로 빛나는 주인공들 틈에서 나의 존재는 너무나 작고 초라하게 느껴지기도 한다. 아무리 둘러봐도 나를 위한 자리는 없고, 모든 것이 숨 막히게 답답할 때도 있다. 

그럴 때면, 문득 눈을 들어 자연을 본다.

갈라진 바위틈에서 마침내 싹을 틔워 무성한 잎으로 우뚝 선 나무들, 수없이 오가는 사람들의 발길 속에서 무심히 꽃을 피우는 들풀들은 오늘도 힘차게 살아가고 있다.     

그 옆, 작은 틈에 있는 나도 함께 뿌리를 내리고 기운찬 하루를 시작할 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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