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 가지 질문, 레프 니콜라예비치 톨스토이, 존 J. 무스 >
행복하려면 많은 것을 가져야 할까?
많은 사람들이 끊임없이 행복에 대해 생각하고, 행복을 염원한다. 나 역시 그러하다. 행복하려면 무엇이 필요할까?
“행복하려면, 많은 것을 가져야 할까?” 라는 질문 속에는 묘하게도, 행복하기 위해서는 많은 것들이 필요하지 않다는 답이 이미 내포되어 있는 느낌이 든다. 아마도 “행복은 마음 속에 있어.” “절대 돈으로는 살 수 없는 거야.” 등의 말들을 꽤나 많이 들어온 탓일 것이다.
행복을 어떻게 정의하느냐에 따라 행복에는 많은 것들이 필요할 수도, 그렇지 않을 수도 있다. 행복을 “편안하고 기분좋은 현재의 상태”라고 정의한다면, 행복에는 많은 조건들이 필요없다. 일상 속에서 매일, 순간순간 우리는 행복, 또는 불행을 느끼며 살아가기 때문이다.
그러나, 행복을 단순한 현재의 기분이 아니라, 좀 더 “영속적이며 만족스럽고 의미있는 상태”라고 정의한다면, 행복은 적어도 몇 가지의 조건들이 필요해진다. 우선 건강해야 하고, 삶의 품위를 유지할 정도의 돈도 필요할 수 있다. 사람들과의 원활한 인간관계를 바탕으로, 내가 원하는 삶을 누릴 수 있는 자유로움도 중요한 조건이 된다. 그 밖에도 사람마다 각기 다른 많은 것들이 더 필요할 수도 있을 것이다.
우리는 행복하기 위해서 무엇을, 얼마만큼, “필요”로 하는 걸까?
톨스토이의 “사람에게는 얼마만큼의 땅이 필요할까?” 라는 단편이 떠올랐다.
땅을 갖기를 원하는 가난한 농부 바흠이 받은 제안, "하루 동안 걸어서 해지기 전에 출발한 언덕으로 되돌아온다면, 그때까지 표시한 땅 전부가 모두 당신의 것"이라는 악마의 거래 조건! 바흠은 조금이라도 더 많은 땅을 차지하기 위해 계속 앞으로 나아가다가, 결국 입에서 피를 토하고 숨을 거두고 만다. 조금만 더, 조금만 더 가서 많은 땅을 얻으려고 했던 바흠이 하루를 걸어 차지한 땅은, 그가 묻힌 구덩이 "머리끝에서 발끝까지의 키와 같은 2미터 정도"에 불과했다.
행복해지기 위해서는 여러 조건들이 필요하지만, 그것이 지나칠 때, 그로 인해 행복은 더 멀리 비껴날 뿐, 절대로 우리 곁에 다가오지 못한다.
톨스토이의 단편선에는 이 외에도 “사람은 무엇으로 사는가” “세 가지 질문” 등의 글도 함께 실려 있다. 그 중 “세 가지 질문”은 그림책으로도 출판되어 더욱 눈길을 끈다.
소년 니콜라이의 세 가지 질문, 가장 중요한 때는 언제일까? 가장 중요한 사람은 누구일까? 가장 중요한 일은 무엇일까? 친구들은 각자의 생각대로 그 질문에 답을 해 주지만, 니콜라이의 의문을 풀리지 않았다.
우여곡절 끝에 늙은 거북 레프를 통해 얻은 답은 “ 가장 중요한 때란 바로 지금, 이순간, 가장 중요한 사람은 지금 너와 함께 있는 사람, 가장 중요한 일은 지금 네 곁에 있는 사람을 위해 좋은 일을 하는 것. 그것이 우리가 세상에 있는 이유!” 라는 것이다.
니콜라이가 가진 이 세 가지 질문은 “행복에 필요한 것이 무엇일까?”에 대한 답이 될 수도 있겠다.
우리가 행복하기 위해서는 바로 지금 이 순간을 소중히 여기고 긍정적인 마음으로 살아야 하며, 지금 나와 함께 있는 사람과 함께 마음을 나누어야 한다. 그리고, 지금 내 곁에 있는 사람을 위해 좋은 일을 함으로써, 더욱 의미있는 행복을 누릴 수 있을 것이다.
행복에는 많은 것이 필요할까?
그렇다. 행복에는 많은 것은 아닐 지라도, 필요한 것들이 있다. 그러나, 그 필요에 매몰되어 만족함을 모른다면, 행복은 더 멀리 달아난다. 행복하기 위해서, 우리는 각자가 필요한 것들을 얻기 위해 노력해야 하지만, 현재의 시간을 소중히 여기며, 주위 사람들과 사랑을 나누며 살아야 한다.
행복은 현재의 만족함 속에 더 쉽게 깃드는 게 아닐까?
농부 바흠은 땅의 소유를 통해 행복을 느끼고자 했지만, 지나친 과욕으로 행복은커녕 삶 전체를 잃었다. 바흠이 만족함을 알고, 그에게 더욱 소중한 것이 무엇인지를 알았다면 어땠을까... 문득 나에게도 바흠의 모습이 있지는 않은 지 반성해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