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동네에 책방이 생겼다. 카페, 식당, 편의점만 우후죽순으로 생겼다 사라지는 동네에 책방이라니. 대형 서점도, 도서관도 없는 삭막한 생활환경에 단비 같은 소식이었다. 곧장 책방으로 나섰다. 멀리서부터 눈에 들어오는 보라색 문과 나무 벤치를 보며 어떤 예감이 들었다. 책방을 다녀온 후, 그날의 감상을 기록했다.
2020년 8월 22일
2020년 8월 22일. 들어가기 전부터 이미 좋았다. 곳곳에 붙은 안내 포스트잇과 라벨에서 느껴지는 애정과 수고로움. 책은 예전보다 더 쉽게 만날 수 있게 됐는데 왜 서먹해진 친구 사이 같을까. 돌아오는 길에 원고지 노트도 한 권 구입했다.
2020년 9월 25일 / 2020년 12월 23일
그날부터 나는 틈만 나면 책방을 들락거렸다. 10년 전의 시간으로 멈춰버린 책장을 모조리 갈아 치웠다. 허겁지겁 배를 채우는 사람처럼 온갖 책들을 찾아 읽으며 책방에서 운영하는 프로그램에 출석 도장을 찍었다. 그렇게 독서모임으로 나눈 책이 16권, 글쓰기 수업으로 작성한 글이 80개 넘었다. 이 두 가지는 현재 진행 중이다.
1년 동안 나는 나의 한계를 갱신하며 살았다. 읽을 수 없을 거라 생각했던 책을 완독 하고, 숨어 있는 감정, 부끄러운 마음을 써 내려갔다. 2021년 8월 22일. 책방과 함께한 지 1년 되는 날. 가장 좋아하는 케이크를 포장해 책방을 찾았다. 뜬금없이 케이크를 건네며 웃는 나를 어리둥절하게 바라보던 책방지기의 표정이 잊히지 않는다. 내게 베풂이 선물임을 알게 해 준 고마운 이들.
수많은 책방 중에 왜 이곳이었을까. 떨린 마음으로 보라색 문을 열던 순간이 문득문득 떠오른다. 책이 사람의 인생을 바꿀 수 있다는 말. 나는 진심으로 공감한다. 책방에 간다는 건 단순히 책을 사러 가는 일이 아니었다. 나의 케렌시아. 내가 채운 건 공감과 경청이었다. 책 한 권이, 동네 책방이 사람을 구원하기도 한다.
내게 찾아온 변화 중 가장 큰 변화는 쓰는 사람이 되었다는 것. 집으로 돌아오는 길에 구입했던 원고지 노트는 지금의 브런치가 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