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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어떤 Sep 23. 2021

우리 집은 꽃(많은)집


엄마가 사랑하는 마당에 가을 소식이 한창이다. 석류, 사과 대추가 나뭇가지에 주렁주렁 매달려 있고 가지각색의 꽃들이 애정에 보답하듯 환한 미소를 띠고 있다. 엄마와 딸, 우리 모녀는 좋아하는 게 극명하게 나뉜다. 엄마는 산과 들을 오가며 자연에서 행복을 찾고 딸은 틈만 나면 널브러져 활자의 세계에 빠져든다.



"아이고 예뻐라, 딸아 이것 봐라 화원에서 다 죽어가는 거 얻어와서 정성을 쏟았더니 꽃을 보여주네"



엎드려 책을 읽고 있는 내 시야에 불쑥 화분이 들어찬다. 이것뿐인가, 마당에 심긴 꽃들을 하나하나 꼽기 시작한다. 페튜니아, 하와이무궁화, 낮달맞이꽃, 흰사프란, 천일홍, 만데빌라, 덴파레... 이 어려운 이름들을 하나하나 나열하며 저마다의 기특함에 감탄을 연발하는 엄마. 같은 레퍼토리를 30년쯤 듣고 있지만 엄마에게 마당 꽃들은 처음 보는 것처럼 마냥 신기하고 새로운 아이들인가 보다.








본가에 방문하는 날이면 저 멀리서부터 알록달록한 꽃들이 어서 오라 내게 손짓한다. 계절마다 넘치는 꽃들 덕분에 본가는 동네 '꽃(많은)집'으로 불린다.



사실 식물을 키워본 사람은 알겠지만 이 취미는 고상과 거리가 멀다. 이건 노동이다. 중노동. 계절마다 쓸고 닦고 치우고. 해야 할 일 리스트엔 마침표가 없다. 보통 부지런함으론 마당의 아름다움을 유지할 수 없다.








가을엔 구근을 마당 곳곳에 심고(작년에는 라넌큘러스를 심었다.) 찬바람이 불기 시작하면 곧 있을 입동 맞이를 해야 한다. 나뭇가지를 꺾어 정리하고 화분에서 자라는 화초들은 깨끗이 닦아 각각 창고와 방으로 들어간다. 겨울에는 겨울꽃들이 있어서 또 바쁘다.




엄마는 사계절 모습을 그리는 것이 너무나 기대되고 기쁜 일이라고 했다. 취향이 확고한 마당 디자이너라 내가 가져간 꽃이나 다육이는 문전 박대당하기 일쑤. 꽃이 나보다 더 좋다고 했던 우리 엄마. 아무리 사춘기라도 그렇지 자식이 꽃보다 못하다니, 그때는 그 말이 그렇게 서운할 수가 없었는데 씩씩거리던 그 시절을 생각해보면 얘네들이 더 나은 것 같기도 하다.




꽃들이 보여주는 모습만큼 내가 받은 사랑을 돌려드릴 수 있을까. 자랑스러운 딸이 되는 게 참 어려운 일이다. 엄마 그래도 건강 하나는 자신 있으니 자식 농사 잘 지은 거 아닐까. 겨울 오면 또 가서 열심히 화분 나를게. 키우고 싶은 꽃 있으면 원 없이 키우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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