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별의 타이밍

승기에게 보내는 편지

by 아알미

승기야 안녕. 그곳에서는 잘 지내고 있니.


집 근처 공원을 산책할 때마다 네 생각을 하곤 했어. 나는 이 거리의 나무들과 흐르는 강물 냄새, 이 맘 때쯤의 계절에만 느낄 수 있는 봄의 무게를 좋아하는데 그런 것들을 너도 함께 누릴 수 있다면 참 좋았겠다 싶었어. 어쩐지 너도 이곳을 맘에 들어했을 것만 같거든.


그 집을 떠나기 전, 그러니까 너와 내가 마지막으로 함께 했던 우리 집을 떠나기 전에 내가 너에게 마지막으로 했던 말이 기억이 나질 않아. 그때는 그 집으로 언젠가는 다시 돌아오리라는 생각을 했었고, 또 항상 나를 반겨주던 네가 다음번에도, 또 그 다음번에도 나를 위해 웃으며 달려와 줄 거라고 막연하게 생각했는지도 몰라. 시간이 지날수록 예전만큼의 활기찬 생동력을 잃어가고 있다는 걸 어느 순간부터 눈치채고는 있었지만, 머지않아 반드시 거쳐야 할 이별의 순간을 조금씩 유예하며 불안한 마음을 애써 피하고만 싶었나 봐.


그래, 떠나던 그날 너에게 마지막으로 남겼던 나의 말은 아마도,


"다녀올게!"


하루는 꿈속에서 너를 찾았어. 엄마, 아빠, 그리고 동생까지 불 꺼진 방에 나란히 이불을 덮고 자려고 하는데 왠지 허전한 느낌이 드는 거야.

"엄마, 그런데 승기는 어디 있어?"

고요하던 방은 그 보다 더 정처 없이 가라앉아버렸고 그 순간 무언가를 직감한 듯 내 심장부터 턱 끝까지 피가 뜨겁게 솟구치는 느낌이 들었어. 내가 대답을 재촉하자 엄마는 결국 너의 소식을 전했지. 나는 그 자리에 몸을 웅크리고 앉아 아프게 울었고 그렇게 꿈에서 깼어. 그 기억이 너무나 생생해서 꿈에서 깨고 나서도 한참을 울었던 것 같아. 낯설고 불안한 기분이 들었어. 장담하지만 이런 경험은 내 인생에서 결코 흔하지 않은 일이었거든.

그 뒤에 엄마에게 꿈속에서 있었던 일을 이야기하며 너에 대해 물었더니 한참 시간이 지나서 답장이 왔더라.


'사실 승기가 이틀 전에 무지개다리를 건넜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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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가가 아파트로 이사를 하면서 네가 있어야 할 곳을 마땅히 정하지 못해 난감한 상황이었지. 그전까지는 마당이 있는 집에서만 살았으니 네가 자유롭게 뛰어다닐 수 있었지만 이제는 그런 환경이 아니니까 너를 친척 집에 맡겨야 하나, 어떻게든 실내에서 데리고 살아야 하나 어쩌나 하고 말이야. 그러다 이사를 거의 다 마쳤을 때 즈음, 그 시기에 네가 세상을 떠난 건 혹여 네가 우리에게 곤란한 존재라고 생각해서 그렇게 함께 있을 수 있는 순간을 마지막까지 지켜보다가 떠난 것은 아니었으면 좋겠어. 이럴 줄 알았으면 내가 더 빨리 용기를 내서 현재의 불안한 상황들을 빨리 정리하고 조금 더 일찍 너를 보러 갈 걸 그랬다. 그걸 지금도 후회해.


헤어지고 나서야 더 잘해주지 못한 것에 대한 아쉬움과 미련이 오나 봐. 좀 더 재미있는 장난감을 사주고 이 세상에 있는 맛있는 간식들을 하나씩 맛 보일 걸. 겁이 많은 너지만 그래도 한 번쯤은 차를 타고 맨날 똑같은 동네가 아닌 더 넓은 바다와 뛰어놀 수 있는 들판이 있다는 걸, 세상은 네가 생각하는 것보다 훨씬 넓다는 걸 알려줄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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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시절 좋아하던 가수의 이름을 따라 붙였던 너의 이름. 이젠 그 이름을 들으면 나는 그 사람이 아닌 너를 떠올릴 수밖에 없을 것 같아. 가끔 네가 승기라는 너의 이름을 알고 있는지 궁금해서 승희야, 철수야, 뽀삐야 부르면서 너의 반응을 살피며 장난을 치곤 했었는데, 다 커서도 접혀 있던 귀를 쫑긋거리는 너의 모습이 참 귀여웠어. 너는 너의 이름이 맘에 들었을까. 음, 이름은 정작 이름의 주인보다 주변 사람들이 더 많이 불러준다잖아. 그렇다면 말야. 적어도 난 그만큼 너의 이름을 부를 수 있어서 행복했어.


그거 아니. 나와 동생은 어렸을 때부터 개를 무서워했어. 하굣길에 어쩌다 마주친 이웃집 강아지가 달려들자 우리는 너무 무서워서 소리를 지르며 경찰서로 달려간 적도 있었지. 너를 처음 만났을 때도 어딘가 불편했는지 낑낑대고 이따금씩 제 몸집보다 우렁찬 목청으로 짖기를 반복하던 이 작은 강아지를 어떻게 하지 못해 난감해했었잖아. 물론 너무 어렸을 때라 승기는 기억 못 하겠지만. 그랬던 내가 이렇게 겁을 먹지 않게 된 건 네가 나에게 준 무한한 사랑, 내가 너에게 가면 어떤 경계도 허물어 버리고 달려오던 그 순진하고 해맑은 사랑 덕분일 거야. 그러니까 너와 함께한 14년은 사랑을 배운 세월이기도 한 거야. 그런 사랑을 알려줘서 고마워.


해가 저물어져 가던 어느 이른 저녁, 집 근처로 산책을 가기 위해 아직 어렸던 너를 처음으로 품에 안았던 날. 너의 두근거리던 심장 소리를 잊지 못해. 유난히 겁도 많았던 너는 물을 무서워했고, 폐쇄된 공간을 싫어했고, 높은 곳을 싫어했지. 마치 드라마 속 품어주고 싶은 비련의 남자주인공처럼. 그런 너는 천둥 번개가 치면 무서워서 벌벌 떨곤 했는데, 그때마다 너를 안심시키느라 얼마나 혼났는지 몰라. 한편으론 너의 존재만으로도 많은 위안을 얻기도 했어. 이상하게 마음이 요란한 날에는 햇볕 드는 마루에 식탁 의자를 끌고 와 가만히 너의 곁에 앉아있으면 말이 통하지는 않지만 어쩐지 '괜찮다'라고, '내가 옆에 있다'고 말해주는 것 같아서 큰 힘이 되었어. 나는 비로부터 너를 지켜주고 너는 낯선 이들로부터 나를 지켜주고. 우리는 어느샌가 서로를 지켜주는, 부정할 수 없는 가족이 되어 있던 거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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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즘 나는 변화의 시기를 맞고 있어. 변화가 많은 만큼 이별의 순간들도 많아졌는데, 그래서 마음이 조금 싱숭생숭해. 생각해 보면 이별에 타이밍이라는 게 있나 싶어. 마냥 선언한다고 멈출 수 있는 결론이 아니라 과정이니까. 하지만 이렇게 한 순간에 많은 이별들을 감당해야 지금 이 순간에는 이별이 오는 타이밍을 진지하게 생각해 볼 수밖에 없는 것 같다. 이제는 아프게 무너지고 부서지는 걸 두려워하지 말고 스스로 가둬둔 울타리에서 벗어나야 할 때라는 걸 조금씩 받아들이고 있어. 물론 이별은 매번 익숙해지지 않는 것 같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번에는 도망치지 않으려고. 헤어짐이 슬픈 건 그만큼 함께 한 시간들이 소중했다는 의미이고 또 이별이 있어야 새로운 길이 펼쳐지기도 하는 거니까. 그치?


그래도 지금의 솔직한 심정으로는 난 더 이상 내 인생에서 너와 같은 존재를 새로운 가족으로 받아들일 수 없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들어. 그 정도의 용기는 아직 나에게 버겁나 봐. 이런 마음도 언젠가는 꺾일지 모르겠지만 말야. 그래도 앞으로 마주할 여러 삶의 변곡점에서 사랑이 필요한 순간에 너를 기억할게. 두려워하지 않고 의심하지 않고 있는 힘껏 사랑할게. 승기 너도 그곳에서는 더 이상 아프지 말고, 행복하게 잘 지냈음 좋겠다. 너와 함께 한 세월들은 큰 행복이었어. 먼 훗날에 다시 만날 수 있겠지? 그때가 되면 내가 너를 찾으러 갈 테니까, 그러니까 이제는 더 이상 하염없이 우리를 기다리지 말고 마음껏 하고 싶었던 것들을 누려. 많은 아름다운 것들을 눈에 담아. 너의 빈자리는 여전히 힘들겠지만 승기의 마음이 평안해질 수 있도록 마음속으로 늘 기도할게.


사랑해.


있는 힘껏 사랑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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