질투의 힘

당신에게 보내는 네 번째 편지

by 아알미

안녕하세요. 따뜻한 한 주 잘 보내셨나요.


편지가 조금 늦었지요. 그간 생각을 정리할 일들이 있어서 마음에 여유가 없었습니다. 지금은 차차 해결되어가고 있어요. 불안했던 마음들을 더 이상 흔들리지 않도록 끝까지 힘을 내야겠어요!


4월 첫째 주의 주말은 날씨가 무척이나 따뜻했습니다. 산책을 나가보니 비로소 만개한 벚꽃을 볼 수 있었어요. 바람이 불면 벚꽃비가 솔솔 내리는 데, 그 광경이 정말 아름다웠습니다. 당신도 보셨을까요. 저는 원래 산책을 할 때 음악을 들으면서 거침없이 걷기만 하는 편인데 이 날의 풍경은 저를 중간에 몇 번이나 멈춰 서게 만들더군요. 예쁜 것들을 눈에만 담아두기엔 아까워서 사진으로도 잔뜩 남겼어요. 늦었지만 여기 그때 찍은 사진을 몇 장 올려드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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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는 그간 정리하는 시간을 가졌습니다. 제가 의도적으로 계획한 '정리'라기 보다는요. 약간 눈에 거슬려서 조금씩 치우다 보니 일이 커졌다고나 할까요. 아무튼 엄청난 변화가 일어난 것은 아닙니다만 제가 보기에는 꽤 만족스럽습니다.


집에 원래 안 읽고 쌓아둔 책이 엄청 많았는데 그것들을 정리해서 중고로 팔아버렸습니다. 제 가격을 생각하면 조금 아까운 감이 있긴 하지만 현재 상황에서는 다 읽지 못할 뿐만 아니라 공간만 차지하고 있어서 미련 없이 정리하기로 했습니다. 앞으로는 좀 더 신경 써서 책을 골라야겠다고 반성하게 되네요.


어느 날은 외출 후에 샤워를 하고 있는데 괜히 화장실 청소를 하고 싶은 거예요. 하하. 요즘 눈에 뭐 하나 거슬리면 다 깔끔하게 만들고 싶은 욕구가 샘솟는 것만 같아요. 예전에 우리 어머니는 가끔 욕실에 들어가시면 한참을 안 나오시곤 했는데 나중에 들어가 보면 욕실이 반짝반짝 청소가 되어있던 적이 많았어요. 그때는 잘 몰랐는데 이제는 어머니의 마음이 조금은 이해가 가는 것도 같습니다. 그리하여 욕실을 비롯해 방구석구석마다 뭐 하나만 뒤죽박죽 되어있으면 재배치하고, 더럽다 싶으면 닦아내고, 더 이상 필요 없는 물건들은 말끔히 버렸습니다. 미련 없이!


음... 냉동실에 설날 떡국 만들 때 쓰던 소고기 다짐육이 남은 게 있어서 토마토랑 양파를 넣고 나름 건강한 카레를 만들어 먹기도 했고요. 지난 여름부터 길렀던 머리가 이제는 너무 무겁고 부스스해서 오랜만에 미용실을 방문해 중단발로 잘랐습니다. 오랜만에 앞머리도 내려봤는데 이제는 나이가 들어 20대 초반 때와는 달리 조금 어색하고 안 어울리는가 싶기도 했지만 어찌 됐든 기분 전환이 되었으면 그만이니 이 역시 만족합니다.


앞서 책 정리를 했다고 말씀드렸지요. 그때 마르셀 프루스트<질투의 끝>이라는 책을 발견했는데요. 예전에 군산으로 여행을 갔다가 동네 책방에서 구매한 책인데 갑자기 눈에 띄어서 이제야 읽어보게 되었습니다. 제가 당시에 이 책을 고른 이유는 여러 가지였던 것 같은데요. 아직 읽어본 적은 없지만 <잃어버린 시간을 찾아서>라는 유명한 책의 작가인 마르셀 프루스트의 이름을 익히 들은 바 있어서 그런지 근거 없는 친근함이 가장 먼저 들었고 책 앞에 작가가 어떤 사람이었는지 8줄로 그를 소개하는데 그 내용이 조금은 저의 인생과 맞닿아 있다고 생각했던 것 같습니다. 어떤 내용인지는 비밀. 직접 찾아보세요! 책 두께는 엄청 얇고 작아서 부담스럽지 않게 휴대하기에 딱입니다. 그리고 무엇보다 이 책의 <질투의 끝>이라는 간단명료한, 어쩌면 굳게 단언하는 듯한 제목이 제 마음을 뒤흔들었습니다.


저는 10대 시절에 제가 타인에게 느꼈던 감정을 단 한 마디로 표현하자면 '질투'라고 말하고 싶습니다. 누구나 꿈을 가지고 있고 어린 나이라면 더욱이 넓은 세상으로 뻗어나갈 정도의 비상한 꿈을 지녀도 전혀 이상할 게 없지만 사실 세상을 제대로 만나본 적 없기 때문에 막연하게 큰 꿈을 꿀 수 있는 것이라는 것도 인정할 수밖에 없는 사실인 것 같습니다. 어린 시절의 저는 이제는 돌이켜보면 그게 정말 나의 꿈이었을지, 부모님의 바람이었을지, 그도 아니면 그저 많은 사람들로부터 선망받는 직업이어설 지도 모를 장래희망을 꿈이라 칭하며 무작정 열심히 주어진 공부에 몰두하는 평범한 학생이었습니다. 어쩌면 모범생이었을지도요. 그 당시 저는 꿈이란 게 내 것이 아닌 양 마음에 선명히 와닿지 않으니 미래보단 현실에서 저를 기쁘게 하는 것들을 열심히 했을 뿐이지만요. 그렇게 되면 결과는 좋을 수 있지만 멀리 을 보지 않고 좁은 시야로 나무를 보는 격이니 장기적으로 봤을 때는 그리 현명한 선택은 아니었죠. 하지만 그것도 다 성장의 한 과정이니 지금의 저는 그걸 알지만 약 10여 년 전의 저는 그걸 모릅니다. 그래서 그 시기의 저는 많은 것들을 질투했습니다. 가족의 사랑을 질투했고 나보다 더 공부를 잘하는 아이들을 질투했고 선생님을 질투했고 집에 가는 길에 본 꽃에게 질투했고 과거에 자신만만했던 제 자신을 질투했습니다. 그랬던 저는 자습실 자리의 벽 안쪽에 언젠가 한 교과서에 실렸던 기형도의 시 한 편을 옮겨 적어 붙여 놓고 공부를 하다 머리가 지끈 거려 고개를 들 때마다 멍하니 바라봤습니다. <질투는 나의 힘>이라는 시를요.

기형도 <질투는 나의 힘>

사실 이 시를 찬찬히 읽어보시면 아시겠지만 제목과는 달리, 이 세상 모든 것을 질투하며 남을 의식하며 살아왔지만 돌이켜보면 스스로를 진정 사랑해주지 않았음을 한탄하는 내용인데요. 저는 이 시를 앞에 붙여 놓을 만큼 한 없이 무언가를 질투하는 제 자신을 경계했지만 어리석게도 그 구구절절한 내용보다는 강렬한 제목에 맘이 더 이끌렸던 것도 같습니다. 결국에는 그 시절의 저를 다시 일어서게 하고 계속 공부하게 만드는 것은 나만의 거창한 꿈이 아니라 나보다 더 잘하는 아이들을 넘어서는 것, 질투가 곧 저의 힘이라는 것을 인정하지 않을 수 없었으니까요.


다시 돌아와, 세월이 한참이나 흐른 뒤에 제 앞에 나타난 <질투의 끝>이라는 책은 어린 시절의 저를 상기시킨다는 점에서 의미 있게 다가왔습니다. 질투를 힘이라고 믿었던 제가 이제는 질투를 '끝'이라고 당당히 말할 수 있을지도 궁금했고요.


정말 얇은 이 책에는 4개의 단편 소설이 담겨있는데요. 그중 가장 인상 깊었던 작품은 첫 번째로 실려있는 '실바니아 자작 발다사르 실방드의 죽음'이란 소설이었습니다. 36세의 나이에 시한부 선고를 받은 발다사르가 죽음을 앞두고서 느끼는 회한과 점점 상실해 가는 희망을 어린 조카 알렉시의 생명력과 견주어가며 그의 마지막 삶을 풀어나가는 이야기인데요. 사실 생과 사에 대한 이야기는 부정할 수 없는 삶의 순리라 혹자는 이를 소재로 한 소설 역시 별 거 아닌 내용이라 치부할 수도 있지만 그 섬세한 감정 묘사가 무척이나 뛰어난 작품입니다.


이 소설을 읽으면서 저는 '질투'라는 감정이 생각보다 저열한 감정은 아닐 수도 있겠다 하는 생각을 했습니다. 죽음을 앞둔 발다사르는 알렉시의 건강한 여생을 질투하거나 사랑하는 이가 자신을 떠나 다른 사람에게 가야만 하는 현실을 잘 이해하면서도 결국 그녀를 붙잡으려 하는 일련의 모습들을 보여주는데요. 그런 부분들이 죽음 끝에 다다랐어도 계속해서 생에 매달리는 인간의 가장 밑바닥에 있는 감정을 잘 보여줍니다. 어쩌면 질투라는 건 본인도 모르게 어떤 순간에 나타나는 감정이지만 그렇다고 남들에게 티 내기에는 어딘가 유치해 보이는, 그러나 때론 그 누구보다도 본능에 충실한, 처절한 감정 아닐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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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질투의 끝>을 읽고서 요즘에 드는 생각은 삶을 적당한 온도로 산다는 건 어떤 의미일까, 하는 점이에요.


당신은 치열한 삶을 살아가시나요. 치열하다는 건 과연 어느 정도까지 뜨거워져야 하는 걸까요. 저는 기도를 할 순간이 오면 항상 마지막에는 '어떤 일이 주어지든 열정적일 수 있기를' 바라면서도(사실 열정을 위해 기도한다는 것 자체가 약간은 어불성설이긴 하지만) 이제는 더 이상 치열한 삶을 살고 싶지는 않습니다. 치열하다는 말이 가진 정의나 기준은 상대적이라 설명하기 참 모호하긴 하죠. 음... 때때로 치열하게 원하는 바를 이뤄내는 사람들의 인생사를 들으면 경외심이 생겨나기도 하지만 아이러니하게도 저는 그렇게까지는 뜨거워지고는 싶지 않다고나 할까요.


집청소를 하면서 이것저것 비워내는 연습을 했다고도 생각해요. 때론 이건 왜 샀지, 쓸데없이 왜 그랬지, 곰팡이가 안 슬게 처음부터 관리를 잘할 걸 하는 후회가 막심하기도 하지만 그런 감정들을 벗 삼아 깨끗하게 정리하고 나면 집 안 분위기처럼 제 마음도 조금씩 제 자리를 찾아가는 기분이 들거든요. 질투라는 감정도 사실은 마냥 쓰레기 같은, 지양해야만 하는 감정은 아니라고 생각해요. 그 시절의 어린 나이에는 충분히 가질 수 있는 가장 자양분 같은 감정이 아니었을까요. 중요한 건 그런 감정을 토대로 그 위에 어떤 감정들을 쌓아가느냐 하는 거니까.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해하는 마음, 반성하는 마음, 좋은 점들을 내 것으로 만들고 발전시키는 마음 같은 것들이요. 그런 점에서 저는 여전히 제 마음속의 질투가 끝났다고 말할 수는 없을 것 같아요. 질투는 여전히 저를 살아가게 만들지만 그렇다고 그게 제 인생의 전부가 되게 하고 싶진 않아요. 치열하기보단 열정적인 삶. 그게 오늘의 제가 선택한 삶의 온도입니다.


물론 시간이 지나면 그때의 저와 다른 생각을 가질 수도 있겠죠. 10년 전의 제가 '질투'만을 삶의 화두로 삼았던 것처럼요. 그래도 그게 잘못된 선택이었다고 힐난하고 싶지도 않고 혹시 이게 잘못된 선택일까 봐 망설이고 싶지도 않아요. 지금의 저에게 가장 편안한 온도에 머물고 싶어요.


당신의 삶의 온도는 어떤가요.

저에게도 알려주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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