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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치즈와케이크 Feb 09. 2022

친했던 누나와의 추억 1

 이 글은 제가 브런치에 글을 기고하려고 마음먹었을 때, 첫번째로 썼던 글이며, 브런치에 작가신청을 하는동안, 한번도 빠짐없이 들어갔을만큼 제 나름의 애착과 정성이 들어가있는 글이었습니다.

정작 브런치 작가가 되고나선 내용이 너무 길고 무겁다는 이유로 한참동안이나 발행을 고민하고 있었지만, 제 20대 초반을 크게 흔들었을 만큼 제 인생에선 꽤 큰 파장에 속하는 일이었기에, 제 마음을 속삭이는 저만의 브런치에서 이 글을 올리는건 당연한 것이라고 생각했습니다.

평범한 인간관계 이야기라기엔 좀 무겁고, 고찰이라고 말하기엔 한없이 가벼운, 어느 소년의 방황기입니다 :)






 "아 맞다, 영이 누나 결혼한다더라."


 친구와 시내에 같이 가기로 한날, 범이는 친구를 기다리는 시간이 지겨워졌는지, 옆에 있던 내게 문득 저런 말을 했었다. 나는 그 말에 감각이 곤두세워지는 듯한 놀람을 느끼면서도 정작 내가 무엇에 놀랐는지는 전혀 알지 못했다. 결혼한다는 사실 자체에 놀란 것인지, 결혼할 상대가 있었다는 사실에 놀랐던 것인지, 30대도 안된 이른 나이에 결혼한다는 것에 놀란 것인지, 전부 놀랄 일 같으면서도 하나씩 따져보면 또 놀랄 정도는 아닌 것 같았다.

"그래서.. 그 결혼식 갈 거야?"

 

내가 그 말을 전부 소화해내기도 전에 범이는 내게 결혼식 참석 여부를 뒤이어 물었다. 분명 범이는 나와 누나 사이에 있었던 갈등을 잘 아는 입장으로써 현재, 누나에 대한 내 감정의 방향을 묻고 싶었던 것이리라. 나는 아직 청첩장도 받지 않은 상황에서 무슨 참석 여부를 결정하느냐며, 애써 덤덤한 체했지만 이미 마음속에선 스스로에게 중요한 물음을 던지고 있었다.

 누나가 결혼한다는 사실 이전에 나는 지금도 그녀의 경사를 내 일처럼 기뻐하며 축하해 줄 수 있을까?

 한창 누나와 친밀했던 과거와, 지금은 아무것도 아니게 된 현재의 괴리감을 생각하면, 굳이 그 결혼식을 갈 이유가 없을 것만 같다가도 이 결혼식이 누나와 관계의 마지막이라고 생각하면, 또 못 갈 이유는 없는 것 같았다. 나는 그때 당시엔 밀물 닥치는 밀려오는 여러 가지 생각의 혼잡함 때문에 저 물음에 스스로 답하지 못하고, 이내 기다리던 친구도 도착함으로써 그 고민을 잠시 내게서 지우고 있었다.

 그리고 지금, 창밖에 떠오르는 어스름한 노란빛의 햇빛이 떠오르는 걸 보면서, 나는 입대 전 나와 누나의 기억에 대해서 하나씩 복기하고 있었다.



 나는 어린 시절부터 스스로에 대한 확신이 없는 사람이었다. 왜냐면 사람이 공동체의 일부분에 속하기 위해선, 반드시 자신만의 가치가 있어야 한다고 믿는 사람이었기 때문이었다. 내게 가치는 실제적인 효용을 지녀야만 했다. 사람들의 마음을 절로 이끌리게 만드는 외적인 매력이나 진로에 도움이 되는 능력들만을 가치라고 여겼다. 그렇기에 내가 부모님에게 특별한 부채의식을 느껴서 집안일과 아빠의 공장일을 푸념 없이 거들고 책이나 미디어에 나오는 인상 깊은 구절을 기억해서 중얼거리고 다니는 남다른 감수성이 있다는 사실 따위는 누군가 알아주지도 않고 또 이 사회가 학생들에게 기대하는 가치와는 완전히 동떨어져 있다고 생각했기에 나는 나 자신이 그러한 가치들에 부응하지 못한다고 생각할수록 점점 작아져만 갔고, 그에 비해 공격성은 날로 늘어만 갔다.

 그래서 이제는 흐릿하기만 한 학창 시절에 대한 기억 중에서도 고등학생 시절은 내게 있어선 완전한 실패로 남아있었다. 그 짧은 시간 동안에도 특유의 공격성으로 인해 급우들과의 추억은커녕, 일말의 친분마저 남기지 못했고 그러면서도 원하던 대학에 진학하지 못해 전혀 예상치 못한 학과로 와버리면서 또다시 나에 대한 실망만을 거듭했으니 나로선 이 시기를 실패라고 밖에 말할 수 없었던 것이다. 그래서 나는 학교 생활중에 겪은 모든 순간들을 단지 지워버려야 할 치부처럼 여기고 졸업식날 당연하게 주어지는 축하에서도 눈 돌린 채, 내게서 남을 수 있는 모든 고등학교 시절들의 잔재들을 빨리 지워버리고자 했다. 그런 내게 있어 대학교 생활은 새로움을 앞에 두고 설레어하는 새내기의 마음가짐보단, 죄로 얼룩진 자신의 과거를 덮어두고 사회로 되돌아온 죄수의 감정과도 같았다. 하지만 나는 감히 변명하지도 못하고 나 스스로마저 실패라고 못 박아놓은 그때의 기억 때문에 가슴에 커다란 불완전함을 품은 채로 끊임없이 나 자신의 가치에 대해 의문을 가지고 있었다.  


 내가 막 고등학교를 졸업하고, 이제 내 이름 앞을 수식할 새내기와 신입생이라는 칭호에 설렘보다도 안도감을 느끼고 있었을 차, 나는 교회에서 영이 누나를 만났다.

 그 시기의 교회에서의 나는 고등부 예배를 졸업하고, 대학부 예배로 올라갈 차례를 남기고 있었다. 대학부 예배는 이전의 학생부 예배와는 다르게, 나이 차이가 얼마 나지 않는 선후배 학생들이 긴밀한 친분의 장을 만들어내고 있어, 사실상 대학교보다 더 일찍 성인으로서의 사교를 경험하게 해 주었었다. 물론 내가 그런 친분의 기회를 반갑게 여긴 것은 전혀 아니었다. 오히려 나는 다소 버선발로 들어와 과한 친절을 베풀어 주는 그들의 태도를 보고 있노라면 서비스 센터 직원의 학습된 친절함을 보는 듯한 부자연스러움을 느꼈다. 그들의 태도에 진심을 느꼈고 안느꼈고를 떠나, 나는 여전히 타인의 눈에 비칠 나 자신에 대한 확신이 없었기에 그들과 친해지려는 생각은 처음부터 하지 않은 채로, 이미 마음속으로 선을 그어 놓고 있었던 것이다.

 하지만 그런 와중에도, 내게 유별난 관심을 보여주는 사람이 영이 누나였다. 나보다 5살 연상이었던 그 누나는 뭐랄까, 연상의 매력을 잘 보여주는 매혹적인 분위기의 여성이었다. 키가 작음에도, 비율이 정말 좋은 탓에 무슨 옷을 입어도 옷태가 살아났고, 체대 사람이 아닌가 싶을 정도로 늘씬했으며, 누나 스스로도 그런 자신의 장점을 잘 아는 듯한 옷 코딩을 통해, 본인의 외적 매력을 강조하곤 했다. 워낙 외적인 미에 둔감해, 웬만해선 '예쁘다' '잘생기다'같은 단순한 외모 평가도 보류하는 내게 있어서도, 영이 누나는 확실히 예쁜 사람이었다.

 누나는 첫 만남 이후부터 내가 자신의 동생과 닮아서 유난히 정이 간다는 이유로 내게 여러 차례 말을 붙여오곤 했었다. 싱글거리는 얼굴로 자신을 누님으로 높여 부르는 내 독특한 말투에 대해서도 물어보고, 나와 닮았다는 동생의 사진을 보여주기도 하며, 이유 없이 내 등을 마구 때리면서 타격감이 찰지다며 만족해하기도 하였다. 나는 다른 사람보다도 좀 더 적극적으로 내게 다가오는 누나를 보고 아, 서비스 센터 직원보단 좀 더 활동적인 방문 서비스 직원 정도는 되는가 보다 하며, 그녀의 유별난 적극성을 강한 의무감으로 받아들이려 했다. 내가 어쩌다 그 사람의 동생을 닮아서, 어쩌다 같은 교회를 다니게 되어서 만나게 된 사람이었을 뿐. 저렇게 예쁜 사람이 관심을 가져주는 것에 의미 부여를 하는 것은 저 아가씨에게도 실례되는 일이겠다. 하고 생각하려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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