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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치즈와케이크 Dec 08. 2022

첫 면접에서 합격통보 받았는데 거절했습니다.

사회초년생 면접 후기

-커버사진 : 비주얼 노벨, 로맨티컬리 아포칼립틱 중-


 여느때와 같은 평일, 언제나처럼 전공 수업을 듣고 있는 중이었는데 문득 핸드폰으로 전화가 왔었다. 나는 핸드폰이 성능 좋은 시계가 된지 오래된 아싸였어서 오전시간대엔 전화 울릴 일이 거의 없었던데다가, 010이 아닌 번호로 전화가 왔었기 때문에 처음엔 거의 망설임 없이 핸드폰 전화를 끄려고 했었다.


 하지만 통화 거절 슬라이드를 누르려던 차, 갑자기 꺼림칙한 느낌이 들어 핸드폰에서 손을 뗐다. 혹시 내가 올해 5월에 신청했었던 조혈모세포 기증과 관련된 전화거나, 아니면 이력서를 넣은 기업에서 전화가 왔을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스쳐갔기 때문이었다. 만약에 그 전화가 보험 권유나 여론 조사라 해도 속으로 욕한마디 해주면 그만이고 내가 보는 손해는 없기 때문에 나는 강의실 바깥으로 나가 전화를 받았다.


 '여보세요?' 하고 전화를 받자, 전화기 건너편에서 차분한 여성의 목소리가 내게 물었다.


"안녕하세요, 잡코리아에서 이력서 넣으신 xxx 맞으십니까?"

    

  나는 그 첫마디를 듣고 속으론 '그렇지!' 하며 전화를 받은 내 선택을 칭찬했다. 사람의 감이라는건 되게 뜬금없이 발휘되면서도 그때마다 기이할 정도의 정확성을 보이곤 했었다.

 내가 그렇다고 답하자, 여성분은 본인을 기업의 인사팀이라 밝히면서 내게 면접 가능 여부를 물었다. 나는 자칫 '아이 물론이죠, 천국과 지옥만 아니라면 어디든 가겠습니다' 라고 말하지 않게끔, 간신히 들뜬 마음을 억누르며 면접에 갈 수 있다고 답했다. 인사팀은 내 이메일로 면접 장소와 시간을 보내겠다고 말하며 전화를 끊었다.

 전화는 끊겼지만, 내 떨림과 기대는 쉽사리 가시질 않았다. 물론 합격 통보도 아니고 고작 면접 전화일 뿐인데다 앞으로도 많이 겪여야 할 일이었지만, 원래 처음이라는 이름으로 겪는 모든 것들은 대게 과장되고 특별하게 받아들여지기 마련이었다.


 이후에 나는 강의실엔 되돌아왔지만 수업에는 하나도 집중하지 못했다. 이미 내 머릿속은 면접 준비에 관한 내용으로만 가득차 있었기 때문이었다.

'무슨 준비를 해가야 하지?' '맞다 정장도 새로 맞춰야 하는데' '스펙적인 부분에서 압박 질문 받으면 어떻게 하지?' '아, 준비도 안하고 너무 일찍 이력서를 넣었나?'

 머릿속에서 수없이 떠오르는 생각들이 하나같이 정돈되지도 않은 채, 혼란스럽게 내 머리를 휘저어 놓고 있었다.

 오후에도 수업이 하나 더 있었지만, 그것도 제대로 듣지 못했다. 그날은 하루종일 무언가에 집중하지 못했던 것 같다.

 이후에 나는 가족들에게 이 사실을 알리고 하나하나씩 면접준비를 하기 시작했다. 면접 정장을 대여하고 겸사겸사 나중에 입을 정장도 구매한 다음, 내가 넣은 이력서를 살피고 기업 정보를 찾아보며 예상질문들을 적고 스스로 대답하는 일들을 하며 나는 기대인지 불안인지 모를 떨림이, 불쾌하지 않게 잔잔히 심장을 두드리는 느낌을 만끽하고 있었다.

 

 면접 당일, 나는 세상 불편한 정장을 입은 채, 차에 탑승했다. 대구에서 경기도 오산까지 3시간 가까이 걸리는 먼 거리를 이동하면서, 나는 시시때때로 창문 바깥과 핸드폰을 번갈아보며 마음속의 긴장을 행동으로 드러내고 있었다. 나는 긴장이 커질때마다, 명쾌한 답변으로 면접관들을 수긍시키는 내 모습과 압박 질문에 가로막혀 대답을 얼버무리는 정 반대의 상상을 떠올리고 있었다. 왜 그런 상상을 했는지는 나도 모르겠다.


 우여곡절끝에 도착한 면접장소는 5층 높이의 공장 건물 형태를 하고 있었다. 내가 경비실에 가서 면접자라고 말하자, 경비원분은 명단을 가져와 내게 사인을 시키고 5층에 가라고 말하셨다. 사인을 하면서 출입자 명단을 천천히 살펴 보니, 면접을 온 사람은 나 말고 아직 아무도 오지 않은 듯 했다.

 엘리베이터를 타고 5층으로 올라가자 커다란 사무실이 보였다. 그 커다란 사무실 안을 채우고 있는 많은 직원들은 모두 책상 앞에 앉아 컴퓨터로 사무를 보거나 바쁘게 전화를 받고 있었다. 나는 그 넓은 사무실을 방황하며 면접장을 찾으려고 했지만, 5층내에 면접장이라 적힌 곳은 아무데도 없었다.


 내가 평상복을 입은 사람들 틈바구니에서 방황하고 있자, 그곳에 있던 분 중 한명이 "면접자시죠?" 라고 말하며, 나를 데리고 빈 회의실에 데려다 놓고 조금만 기다려달라고 하셨다. 내가 생각한 면접은 면접실과 복도에 의자가 있고, 면접자들이 한명씩 들어가는 구조였는데, 여기는 좀 더 자유로운 분위기의 면접이었던 것이다.  


 내가 손가락을 맞부딪히고, 핸드폰을 보며 시간을 보내고 있자, 곧 QA(내가 신청한 직무)팀장과 인사 팀장이 와서, 가벼운 인사와 함께 면접이 시작되었다. 사람도 두명밖에 없고 회의실도 그리 넓지 않아서 그런지, 약간 면담스러운 분위기 면접을 보았다. 면접관 분들은 내게 직무 연관성과 직무 이해도, 회사에 대한 관심등을 물었고, 나는 적당히 잘 답변했다.

  '이 회사에 대해서 어떻게 알게되었냐'를 물었을 때에, 이 회사 재직중인 학교 선배가 특강을 와서 본인 회사가 괜찮다는 얘기를 해서 관심을 가지게 되었다고 얘기하자,  '누군지 모르겠는데, 칭찬해줘야겠다'라고 얘기하며 흡족한 반응을 보인건 재밌는 장면이었다.


 그렇게 면접이 막바지에 다다르자, 인사팀장이 내게 물었다.


"다 정리하고 언제쯤 오실 수 있으세요?"


   나는 좋은 신호라 생각하며, 아마도 학기끝나고 졸업식까지해서 넉넉하게 1, 2월쯤 마무리 될 것 같다고 말하자, 면접관들은 우리는 지금 사람이 급해서 그렇게까지 기다려줄순 없으며,

 아무리 늦어도 11월 말까지는 정리가 되야된다고 말씀하셨다. 좋은 답변을 해서 안정을 찾았던 내 머리는 금세 다시 혼란스러워졌다.

'취업계를 내야하는데, 수업이 5개나 되니 교수님 5명을 일일히 방문해야되네. 아, 내가 조장인 조별과제도 있는데, 나 없이 별 문제 없을까? 영어 원어민 수업도 있는데 그건 도대체 어떻게 설명드려야하지?'

나는 스스로도 명쾌하게 답변하지 못하는 상황이라서 '가서 알아보겠다' 라는 답변으로 그 순간을 넘겼지만, 면접관님들은 '급하다' 라는 의견을 강조하며 만약 취업계를 내고 올 수 있으면 합격 통보를 보내주겠다고 말씀하셨다.


말씀하시는 걸로 보아, 면접 분위기는 사실상 합격된거나 마찬가지였다. 하지만 이 글의 제목처럼, 나는 건물 바깥을 나서면서 기뻐하기도 낙담하기도 그런 애매한 감정에 휩싸였다. 내가 사실상의 합격통보에도 주저한 이유는, 면접을 보면서 느껴진 꺼림직함 때문이었다.


첫째, QA 팀장님은 QA 부서가 개편을 겪으면서 현장직과 업무를 병행하게 될 것이라고 말씀하셨다. 그렇게 되면 아마 야근과 철야업무를 하게될 수도 있을 것 같다고 첨언하셨는데, 조심스러운 표현이었지만 결국 내 부서 업무가 현장직과 다름없다는 말이었다. 현장직을 하고 야근을 하는 건 상관이 없지만, 지금껏 내가 실험 실습을 하고 전공 공부를 배운 것이 현장직을 위해서는 아니였지 않은가. 나도 실습으로 제조 및 포장과 같은 현장 근무를 해본적이 있지만, 그 근무는 전공 지식에 대한 필요성이 별로 없는 직무였다.


둘째, 인사팀장님이 회사에서 기숙사 지원을 해준다고 했는데, 기숙사방 4개가 있는 아파트한 집에 두명씩 들어가서 총 8명이 함께 생활할 것이라고 말씀하셨다. 난 이부분에서 좀 놀랐다. 기숙사에서 독방 생활을 기대한 건 아니지만, 한 집에 최대 8명이나 들어간다는 점에서 나는 순간 군 복무 시절 생활관을 떠올렸다. 거기도 최소 화장실과 샤워실은 커다랬는데, 일반 아파트면 그것도 아니지 않은가. 스타크래프트에서 고도로 발전된 외계인들인 프로토스 종족들도 파일런 하나에 8명 밖에 살지 못하는데..!

(근데 사실 필자도 사회 초년생이라 기숙사 생활이 뭐가 일반적인지는 잘 모른다. 이 부분은 여러분들의 지식에 맡긴다.)

뭐 기숙사가 불편하면 방을 얻으면 되는데, 하필 지금은 등록금을 내는 바람에 지갑 사정도 빈곤했고 면접관님들도 강조했다시피 시간 여유도 많이 없는데, 어느 시간에 5명의 교수님을 찾아가 취업계를 내고 적절한 위치의 방을 계약해서 출근 준비를 마친단 말인가. 그것도 대구랑 190km 떨어진 경기도 오산에서!


 이 글을 읽는 브런치 독자분들께선  고민이 분에 넘치다고 생각할지도 모른다. 이런 불경기속 고용불안 상황에서 니 편의만을 생각해서 기업을 고르려 하냐, 너무 편한것만 찾아 하려는 것 아니냐, 라고 말이다.


 사실 맞다, 나는 기왕지사 최대한 내게 편한 근무를 하고 싶었고 런면 기업의 여건내게 너무 불편게 느껴져서, 사실상의 합격통보에도 별로 기뻐하지 못했다.


 물론 현장 근무도 야근과 철야도 할 수 있다. 불편한 기숙사 생활도 할 수는 있다. 정 안되면 부모님께 도움을 요청해, 방을 얻을 수도 있으리라. 다만 나는 그걸 얼마나 버틸 수 있을지 예상할 수가 없었다. 열정과 패기에 휩싸여 불편한 여건의 근무를 덥석 받아들인다면, 나중에 열정의 유통기한이 다 되었을때, 그 순간을 버틸 수 있을지에 대한 자신이 없었던 것이다. 나는 내 자신이 그것도 견딜 수 있을 만큼 튼튼하다는 과대평가를 하지 않으려 했다.


결국 가지 않겠다는 생각을 굳힌 나는, 인사팀 이메일로 지극한 사과를 담아 정중하게 가지 않게 되었다는 의사를 밝히고 첫 면접을 끝내었다.


 다시금 취준생이 된 지금도, 구직사이트에서 이력서를 수차례 고치고 기업에 이력서를 넣으며 구인구직을 이어가고 있다. 나중에 일이 잘 풀리지 않아서 그때 합격통보를 받지 않은 내 선택을 후회하게 될지는 모르지만, 어쨌든 희귀하고 좋은 경험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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