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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백양 Jan 20. 2023

고전 세계를 거닐다 - 『바람의 노래를 들어라』

명성과 기대 대비 고전하는 고전

 결국 글을 쓴다는  자기 요양을 위한 수단이 아니라 자기 요양을 위한 사소한 시도에 불과하기 때문이다.(p.10)


 그럼에도 불구하고 글을 쓰는 일은 즐거운 작업이기도 하다. 삶이 힘든 것에 비하면 글에 의미를 부여하는  너무나도 간단하기 때문이다.(p.14)


 의사의 말은 옳다. 문명이란 전달이다. 표현하고 전달해야  것이 없어졌을  문명은 끝난다.(p.33)


 죽은 사람에 대해서 얘기하기란 매우 어려운 일이지만, 젊은 나이에 죽은 여자에 대해서 얘기하는  더더욱 어렵다. 죽었기에, 그들은 영원히 젊기 때문이다.(p.94)


 실제로 우리는 자주 거짓말을 하고, 자주 입을 다물어버린다. 그러나 만일 우리가 1 내내   없이 지껄여대면서 그것도 진실만 말한다면, 진실의 가치는 없어져버릴지도 모른다.(p.123)


 매일 아침 저는 침대에서 일어나 항구까지 걸어가 바다 내음을 가슴 가득해 들이마실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하고 상상합니다.   번이라도 좋으니까 그렇게  수만 있다면,  세상이  이런 식으로 이루어져 있는지 알게 될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듭니다. 그리고 아주 조금이라도 그것을 이해할  있다면, 침대 위에서 생을 끝낸다고 해도 참고 견딜  있을  같습니다.(p.139)


 모든  스쳐 지나간다. 누구도 그걸 붙잡을 수는 없다. 우리는 그렇게 살아가고 있다. (p.143)


 행복하냐고 묻는다면 그런  같다고 대답할 수밖에 없다. 꿈이란 결국 그런 것이기 때문이다.(p.144)


 정직하게 쓰려고 하면 할수록 정직하지 않은 문장이 된다는 것을 깨달았다. 문장을 문학 언어적으로 복잡화심화시키면 시킬수록, 거기에 담기는 생각이 부정확해지는 것이었다. 요컨대 나는 언어의 이차적 언어성에 의존하여 문장을 썼던 것이다.(p.155)




“어차피 언젠가는 누군가에게 얘기하게 될 테고, 나라면 들은 얘길 아무에게도 하지 않을 테니까.”


이 서적의 모든 부분이 허구인지 혹은 작가 본인의 과거를 섞은 자전 소설인지 알 수 없지만, 만일 해당 부분이 실화에 기반한 거라면 주인공 ‘나(작가)’는 거짓말쟁이가 틀림없다. 소설로서 이렇게 온 세상에 공표해 버렸는걸, 그녀의 이야기를.




겨우 데뷔작 하나를 가지고 작가의 사상이나 문학성을 논하는 것이 우스울 수 있으나, 달리 보면 짤막한 글 하나에도 고스란히 드러나는 게 저자의 인생관이다.


-단편적으로 끊기는 다소 매끄럽지 못한 전개에 대해선 말하지 않겠다. 하루키 본인 역시 아무 부담 없이 아무렇게나 써 내린 게 장점이자 단점인 처녀작이라 시인했으니.-


처음 이 책을 읽겠다 결심한 데는 하루키라는 작가의 명성이 큰 몫을 했다. -꼭 주인공 ‘나’와 같은 나이인 스물하나에 처음으로 경험한 하루키 작품이다- 생각보다 문체도, 내용도 별로 인상적이지 않았고, 어째서 세계적인 작가로 칭송받는지 내 기준에선 알 수 없었다.


5년이 지난 지금 다시 읽는 <바람의 노래를 들어라>는 무언가 다를까 싶어 먼지 쌓인 책을 꺼내 들었지만, 역시 기대만큼 특별하지 않았다. 전과 달리 마음에 꽂히는 구절이 꽤 생기긴 했지만, 난 여전히 이 책과 결이 맞지 않는다.


고독과 상실, 결핍에 지나치게 취한 우울하고 비관적인 인간상을 그리 달갑게 여기지 않아서일까나.

-다자이 오사무의 <인간 실격>을 읽을 때와 비슷한 감상이다.-


하필 하루키라는 작가에 대한 유일한 경험이 이 다듬어지지 않은 데뷔작을 통한 것이라 아쉽다. 자국인 일본에서 여러 문학상을 수상한 것은 물론 국제무대에서도 수많은 상을 휩쓸고, 뉴욕 타임스의 ‘올해의 책’에까지 당당히 작품을 올렸다는 그 하루키인데 정작 그런 작품들을 만나볼 의향이 생기질 않으니 말이다.


언젠가 다시 하루키가 궁금해지는 날엔 이 저서는 뒤로 하고 다른 작품을 곧바로 만나야겠다. 하루키에 대한 생각이 달라지면 그때 다시 이 데뷔작을 돌아봐야지.


P.S. 혹여나 오해의 소지가 있을까 말해두는데, 무작정 해당 작을 폄하하고 싶진 않다. 심금을 울리는 몇몇 부분도 분명 존재했고 구사하는 문장들의 수준도 상당했다는 게 솔직한 감상이다. 내가 말하고 싶은 건 단지 지극히 개인적인 선호와 맞지 않았다는 것, 그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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