얻음도 잃음도 아니다
아들이 꽃을 데리고 왔다.
우리는 무슬림이기에 걸프렌드나 보이프렌드라는 말을 쓰지 않는다. 책임 없는 가벼운 만남은 우리 문화와 맞지 않는다. 아들은 이 아가씨와의 결혼을 전제로 한 교제를 알리고, 지지를 얻기 위해 서로의 가족을 만나는 절차를 밟고 있었다.
올겨울이면 아들이 스물다섯이 된다. 여전히 어린 나이처럼 보이지만, 그는 이미 책임질 준비가 된 어른이었다. 객지에서 6년간 홀로 지내며 자립을 경험했고, 이제는 마음이 맞는 사람과 함께 삶을 꾸리고 싶어 했다. 그의 어른이 다 된 모습이 자랑스러웠고, 새 식구가 들어올 것에 기뻤다.
그러나 마음 한편에 작은 불안이 일었다. 이제 내 아들만이 아니구나. 다른 여자가 그의 옆을 지키게 되는구나. 나는 물러서야 하는구나.
단 몇 시간 우리와의 만남 뒤 아들은 그녀의 가족에게로 떠났고, 닷새 동안 여러 명의 식구와 친척과 만남을 가졌다. 벌써 내 아들이 그 집안으로 들어가 버린 듯, 아들을 뺏긴 듯 내 마음이 불편해졌다.
그때 남편이 말했다.
“우리 딸이 남자를 데려 왔다면, 우리도 며칠간 살펴보고 질문하고 확인하고 싶을 것이다. 불평 없이 아들을 믿고 기다려 보자. “
맞다. 첫 발을 잘 내디뎌야 한다.
나는 화들짝 깨닫고 뒷마당 호숫가에 노니는 오리 가족을 바라보았다.
엄마 오리는 두 달 남짓 새끼를 돌본 뒤 독립시킨다. 코끼리는 10년 가까이, 원숭이와 고릴라도 몇 년 동안 새끼 곁을 지킨다. 미국에서는 보통 아이들이 고등학교를 마칠 즈음 독립을 장려한다. 문화에 따라 부모가 자식의 독립을 결혼 때까지 미루기도 하고, 어떤 이는 집착으로 자녀의 삶을 붙잡기도 한다.
내 부모님은 내 유학과 결혼을 존중해 주셨다. 이제는 나도 아들이 자기 삶을 세우도록 물러서야 한다. 조금 옆으로 더 떨어져, 때로는 뒤에서 응원할 것이다.
내가 남편과 함께 우리 삶을 살아왔듯, 아들도 그의 동반자와 함께 그들만의 길을 걸어가야 한다.
그의 결혼은 나에게 더하기도, 빼기도 아니다.
그저, 아들은 내 뒤를 이어 또 다른 삶을 살아가고, 그의 자식들이 다시 세대를 이어 갈 것이다.
나는 이제 놓아줄 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