깊이 느껴 마음이 움직였던 일들
내가 감동한 순간이라는 질문을 받고 멍했어요. 아무리 생각해도 감동적인 순간이 떠오르지 않았어요. 열정과 마찬가지로 감동이라는 단어도 내가 일상에서 자주 느끼지 못하나봐요.
내가 깊이 느껴 마음이 움직었던 일 어떤것일까요?
감사함을 진심으로 느끼지 못하고 있기 때문이 아닌가 그런 생각에 미안해지기도 했어요. 그리고 떠오른 것 부모님이에요.
1988년 내가 스물여섯쯤에 부모님은 지금의 내 나이보다 훨씬 적은 50대 초반에 미국으로 이민을 가셨죠. 이민을 가시고 부모님이 그래도 2~3년에 한 번 정도는 한국에 오셨었는데 이제는 부모님이 장시간 비행기를 타기가 힘들어서 한국에 잘 못나오시죠. 언니랑 자주 가자고 했어요.
일을 그만둔 2018년에 우리가족이 갔다왔어요. 23년에 언니와 내가 미국에 다녀왔죠. 부모님과 언니와 나, 미국에 사는 동생들까지 여섯식구가 다 모이게 되었어요. 33년 만인가 봐요.
그렇게 부모님과 4남매가 모두 모이는 것 자체가 감동스러웠어요.
우리가 결혼식을 할 때도, 부모님 칠순 때도 형제들이 모두 다 모이지 못했었거든요. 참 무심하게 살아왔어요. 하지만 각자가 모두 열심히 산 증거이기도 하죠.
부모님이 언니와 나, 동생 부부와 같이 여행을 다녀오라고 하셨어요. 우리 회갑 여행으로 보내주신다고요. 동생 부부의 안내로 미국의 서부지역의 그랜드캐니언을 여행하게 되었어요.
그랜드캐니언의 여행은 내가 정말 가고 싶었던 곳 중의 하나였어요. 부모님과 동생 부부가 마음과 비용을 내어 다녀오라고 한 여행에 언니와 나는 너무 즐겁게 여행하고 신나게 돌아다녔죠.
부모님과 동생들 부부에게 모두 감사했어요. 동생들도 말도 안통하는 미국에 가서 어떻게 살았을지 감히 상상 하지도 못하죠. 미안한 마음도 들었어요.
부모님은 두 분이 노인 아파트에서 지내세요. 그래서 언니와 나는 부모님 집에서 며칠을 묶기도 해요. 엄마와 언니와 나 이렇게 셋이 한 침대에 누웠어요. 아마도 이렇게 셋이 누워본 것은 거의 처음이었던 것 같아요. 엄마가 그렇게 같이 자고 싶으셨데요. 엄마의 순수한 제안에 조금 놀라긴 했어요. 내가 생각하는 엄마는 그런 이야기를 잘 안 하는 분이었거든요. 그렇게 한 침대에서 3 모녀가 같이 잤어요.
여든아홉 살 된 엄마가 새벽에 일찍 일어나서 약밥과, 수수부꾸미를만들어주셨어요. 우리한테 해주는 마음으로 다른 사람들한테도 만들어주었는데 정작 우리한테는 만들어주지 못했다고 하시면서요.
먹을 것을 회갑이 넘은 딸들에게 챙겨주시는 모습에 마음이 느껴져 울컥했어요.
사랑은 내리사랑이라고 하지만 무슨 뜻인지 아이를 낳고서야 알게 되었죠. 조건 없는 사랑, 내리사랑, 무한한 사랑 그것이 자식에 대한 사랑이죠. 그런 사랑하는 마음을 이제서야 알수있게 되었으니, 나와 내가 아닌 사람들에게도 그마음을 많이 내어야겠어요.
24년에는 나와 딸이 함께 미국을 갔다 오고 올해 25년도에는 언니네 가족들이 미국에 방문해요.
이렇게 덩달아 우리가 매년 미국을 다녀오기로 했죠. 부모님을 만나러 가는길도 만나는 일도 모두 감동이에요.
감동한 순간을 찾아보세요. 꼭 있을 거예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