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들... 무사히 승진하셨나요?

12월 31일, 총 맞은 것처럼

by 쌀미

12월 31일.

절대 잊을 수 없는 날이 된 나의 2025년 마지막 날.


직장인이라면 다들 공감할 것이다.

승진 차수에 해당되는 직장인이라면 더더욱 기다리게 되는 날.

바로 승진자 발표다.


나 역시 이번에 승진 대상자였다.


정말 열심히 일했고, 그 과정은 결과로 증명되었다.
팀장과 동료들 또한 나의 수고를 인정해주었다.
덕분에 가장 높은 성과를 받았고, 승진 기준도 모두 충족시켰다.

정말 이변이 없는 한,
나는 승진이 되는 것이었다.

그래, 나도 이제 드디어!


그.런.데.

이변이 생겼다.
그것도, 하필 나에게.

회사 홈페이지 새 글 알림이 뜨자마자 바로 클릭했고,
승진자 리스트를 스크롤했다.


그래, 어디 보자.
내 이름이…


엇, 너무 급하게 봐서 놓쳤나?

다시 위에서부터.

...?

...!

!!!!


어쩌면 나도 모르게
내면 깊숙한 곳에 아주 작은 불안감이
0.0001%쯤 자리하고 있었던 걸까.

스크롤을 내릴수록 이름이 보이지 않자 점점 초조해졌고,
끝까지 확인한 뒤에는
처음 느껴보는 불쾌감과 분노가 치밀어 올랐다.

총 맞은 것처럼
구멍 난 가슴으로
용암처럼 뜨거운 화가 흘러나왔다.

퐈이아!!



나의 심리적 과정은 상실의 5단계를 착실히 밟아나갔다.


1단계: 부정(Denial)

현실을 받아들일 수 없었다.
인사팀의 착오인가?
시스템 입력 오류인가?
나는 계속해서 나 자신을 방어하고 있었다.


2단계: 분노(Anger)
팀장을 통해 인사팀에 확인을 요청했다.

조건을 충족한 승진 후보자 중 50%를 최종 선정하며,
그 기준은 최종 결정권자의 권한이라는 기준 없는 기준.

성의 없는 답변이 돌아왔다.

무력감과 억울함에 당장 회사를 그만두겠다고 결심했다.
나의 가치를 알아보지 못하는 이 회사,
그리고 이 세상에 대한 분노가 치밀어 올랐다.


3단계: 타협(Bargaining)

“내가 그때 부서 이동을 하지 않았더라면…”
“조금 더 영향력 있는 리더를 만났더라면…”

과거의 선택과 내가 통제할 수 없었던 환경을 끝없이 곱씹었다.


4단계: 우울(Depression)
퇴근길, 깊은 슬픔이 밀려왔다.

친한 친구들에게 전화를 걸어 나의 상황을 털어놓았다.
앞으로 일을 계속할 동기도,

일의 의미도,
나아가 삶의 의미까지 잃어버린 것 같다고.


5단계: 수용(Acceptance)
자존심이 많이 상했다.

하지만 한 발짝 물러나 상황을 객관적으로 바라보았다.

회사의 비전과 전략상 지원 부서보다 다른 부서가 더 주목받았을 수도 있겠다.
사내 정치에 소질 없는, 사람 좋은 리더를 만난 탓에

최종 결정권자에게 영향력이 닿지 못했을 수도 있겠다.

이렇게 나는 서서히 현실을 인정하며 받아들이고 있다.



그리고 문득, 이런 생각이 들었다.

“아, 현실에 안주하지 말고 조금 더 나아가라고 채찍질을 하는 건가 보다.”


사실 나는 그동안 전략적으로 커리어를 고민해왔다.
부서 이동도 신중히 결정했고,
새로운 업무에 도전하며 경험의 폭을 넓혀왔다.
타 부서와 협업하는 TFT에도 적극적으로 참여했다.

이런 나의 가치를 알아보지 못한다고?


좋다.
드디어 때가 왔다는 걸 직감했다.

고민만 하던 이직을 이제는 조금 더 구체화해볼 필요가 있겠다.

이번 승진 누락은 어쩌면 나의 커리어 레벨업을 위한 전화위복일지도 모른다.


12월 31일,
총 맞은 것처럼 구멍 난 마음을
12월 32일, 33일까지 끌고 가지 않기로 한다.


오늘,
2026년 병오년 새해 첫날.

똥실똥실 예쁘게 떠오르는 해를 보며
나의 의지를 다시 다진다.


직장인 동지 여러분,
여러분의 승진은… 무사하신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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