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수는 주차장에서 만난다더니
지난 12월 31일.
내가 지옥으로 떨어진 날.
그렇다.
미안하지만, 또 승진 누락 이야기이다.
아직 음력으로
2025년 12월이지 않은가.
구정이 올 때까지만 참아주시오.
인사팀에서의 공식적인 답변은 이랬다.
대상자 중 승진자를 선정하는 과정에서
최종결정권자의 결정이었다는 것.
그 기준이 무엇이냐고 물었지만
그건 알 수 없다고 했다.
나의 팀장도,
인사팀 팀장도 모른다.
최종결정권자만 아는 그것.
과연 그는 알까.
내가 그를 피한 것인지,
그가 나를 피한 것인지는 모르겠지만
어느 퇴근길,
최종결정권자로 추정되는 후보 중 한 명을
주차장에서 마주쳤다.
그래,
어쩌면 너일지도 모르겠구나.
날이 추운 탓에
마스크와 머플러로 얼굴을 폭 가리고,
주머니에 손을 찔러 넣은 채
그의 옆을 지나친다.
나는 이 추운 날,
퇴근 경보를 하며
지하철역까지 서둘러 가는데
너는 아주 태평하게 주차장으로 가서
뜨끈하게 데워진 차에 올라타겠지.
나를 떨어뜨린 원수!
그 순간,
눈이 마주친다.
나도 모르게 고개가 숙여진다.
주머니에서 손이 나온다.
내 이름을 부르며
반갑게 손을 흔들어 주신다.
아, 이 원수가 아닌가.
그래.
죄는 미워해도
사람은 미워하지 말라 했다지.
오늘은
네 죄를 사하노라.
나는 다시
이직의 꿈을 접었다 폈다가,
이렇게 또 글을 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