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부산일보 Jan 09. 2022

왕족의 뉴턴 시신 운구, 과학 혁명의 징조였다

판타 레이/민태기

과학은 혁명과 낭만의 역사를 낳고, 혁명과 낭만의 역사는 또 다른 과학을 낳았다. 그러니까 과학은 고립된 독특한 전문 분야가 아니라 인간의 삶과 시대에 대한 전체적이고 통합적인 사고의 산물이라는 거다. 〈판타 레이〉는 500년에 걸친 서양 과학사를 ‘혁명과 낭만의 유체 과학사’라는 관점에서 들여다본 책이다. ‘판타 레이’는 ‘모든 것은 흐른다’라는, 헤라클레이토스 경구의 그리스 말이다. 이 책의 주요한 관점이 ‘유체 역학’이다.


서양 과학사 유체 역학 관점서 들여다봐

볼테르 ‘뉴턴 역학’서 새 시대정신 간파

코페르니쿠스 ‘천구의 회전’이 과학혁명

과학서 추동 사회 혁명으로 이어지기도

1830년 7월 혁명을 그린 들라크루아의 ‘민중을 이끄는 자유의 여신’. ‘혁명’의 어원은 지동설의 천구 ‘회전’에서 왔다. 과학혁명이 결국 사회혁명을 이끈 셈이었다. 부산일보DB


과학혁명이 어떻게 사회 역사적으로 실현됐을까. 혁명을 뜻하는 ‘Revoution’은 코페르니쿠스의 1543년 저작 〈천구의 회전에 대하여〉에서 유래했다. 천구의 ‘회전’이 ‘레볼루션’이었다. 실제 그 ‘회전’이 결국 ‘혁명’이 되었다. 1727년 뉴턴 장례식에 참석한 볼테르는 왕족이 뉴턴을 운구하는 것에 충격을 받고 ‘뉴턴 역학’이 구체제를 무너뜨릴 시대 정신임을 간파한다. 그렇게 해서 달랑베르 디드로 루소 등이 가담한 프랑스 계몽주의가 꽃을 피웠고 1789년 프랑스 대혁명으로 절정에 이른다. 결과적으로 천구의 회전이 서구 세계의 코페르니쿠스적 전회, 혁명을 가져왔다.

과학은 사상을, 사상은 예술을 변화시켰다. 새로운 시대는 새로운 선율을 요구했고 그에 따라 모차르트 베토벤이 탄생했다. 당대의 공론장인 ‘커피 하우스’(살롱)와 ‘서신 공화국’(편지 왕래)을 통해 사상은 동지를 얻고 넓게 교류됐다. 1776년은 이제껏 뒤처진 서양이 동양을 앞지른 해라고 한다. 그해에 애덤 스미스 〈국부론〉, 제임스 와트의 증기기관, 제퍼슨과 프랭클린이 기초한 미국 ‘독립선언서’가 발표됐다. 영국에서는 18세기 중엽 ‘루나 소사이어티’ 회원들이 과학 지식을 바탕으로 산업혁명을 더욱 전진시켰고, 프랑스에서는 18세기 후반 혁명사관학교로 설립된 ‘에콜 폴리테크니크’에 천재들이 모여든다.

과학에서 추동된 사회 혁명이 일직선으로 내달은 건 아니다. 혁명과 반혁명이 교차했다. 그 와중에 1832년 ‘갈루아 방정식’의 천재 수학자이자 공화파인 갈루아가 결투 중에 죽었고, 공화파 지도자 라마르크도 콜레라로 죽었다. 이 둘의 장례식이 있던 1832년 6월 봉기가 일어났다. 빅토르 위고는 그 봉기 중에 시위대가 세운 바리케이드에 갇히고, 그 경험을 녹여 들라크루아의 그림 ‘민중을 이끄는 자유의 여신’에서 착상을 얻어 쓴 것이 대하소설 〈레미제라블〉이었다.

책에는 유체 과학사의 관점과 관련한 내용이 적지 않다. 데카르트는 보텍스(소용돌이) 이론을 펼쳤다. 우주 공간을 가득 채운 에테르의 소용돌이가 행성들을 회전시킨다는 거였다. 그러나 과학사는 유체 소멸의 역사를 걸었다. 뉴턴 역학은 데카르트에 대한 도전이었고, 뉴턴 역학에 의해 ‘전류 개념’(프랭클린) ‘전자기 방정식’(맥스웰)이 나오면서 데카르트의 에테르는 완전히 없어지기에 이른다. 엔트로피 개념과 열역학, 전자기학, 상대성이론에 의해 에테르 개념은 완전히 소멸한다. 하지만 물리학에서 잊힌 유체 역학은 20세기 두 차례의 세계대전을 거치면서 항공기와 로켓의 기초이론으로 각광 받았다. 화폐 유동성을 추적하는 경제학 이론에서 유체 역학의 유산을 확인할 수 있는데 저자는 “유체 역학은 여전히 현대 사회의 중요한 구조와 흐름을 이끌고 있다”고 말한다.

이 책에 등장하는 천재적 인물은 500여 명이다. 비트겐슈타인은 20세기 언어철학의 슈퍼스타였다. 유체 역학을 공부한 젊은 비트겐슈타인 밑에서 공부한 이가 현대 컴퓨터의 아버지인 앨런 튜링이다. 애플 창업자 스티브 잡스가 가장 큰 영향을 미친 사람으로 꼽은 이다. 튜링은 독이 든 사과를 먹고 자살했다. 비트겐슈타인이 영향을 준 또 다른 인물이 케인즈다. 둘은 경제학 모임 ‘카페테리아 그룹’을 이끌었다. 거기서 케인즈의 유동성 개념도 나왔다. 유체 역학 용어를 경제학에 전면 도입한 거였다. 케인즈는, 아인슈타인이 뉴턴 역학을 흡수 통합했듯이 애덤 스미스 시장경제학을 흡수 통합해 자본주의를 구원했다. 케인즈의 대척점에 선 자유주의 경제학자가 하이에크였는데 그는 비트겐슈타인의 사촌동생이었다고 한다. 과학을 이해하기 위해서는 과학자들이 살았던 시대와 그들의 삶에 주목해야 한다는 것이 이 책의 관점이다. 과학뿐 아니라 사상 예술 사람 얘기가 종횡무진하고 있다. 저자는 누리호 개발에 참여한 터보 엔진 전문가다. 민태기 지음/사이언스북스/548쪽/3만 원.

최학림 기자 theos@busan.com

작가의 이전글 무녕왕? 무령왕?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