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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부산일보 Feb 07. 2022

적벽돌 비워 낸 파사드… ‘이어지고 통한다’

[정달식의 공간 읽기] 부산 중구 중앙동 연경재

연경재 전경. 박공지붕에 적벽돌로 삼 면을 감싸, 지극히 근대적이고 서구적이다. 하지만, 정면은 벽돌을 걷어내 마치 건물 속살을 보여주는 것 같은 반전을 택했다. 이성민 사진작가 


‘이어지고 통한다’는 의미 담은 건물

오래 기억될 장소성에 내부도 깔끔

과거·현재의 융합, 색다른 분위기

구도심 표정 바꿔 버리는 ‘매력’


오랫동안 기억될 장소성을 갖췄다. 온전히 건물이 갖는 매력이다. 여기다 건물 내부마저 군더더기 없이 깔끔하다. 카페 연경재(聯涇齋·부산 중구 중앙동)에서 커피를 마셔본 사람이라면 한 번쯤 느껴봤을 인상이다. 그 인상…, 구도심의 표정을 바꿔 버렸다. 그게 치장이라도 좋다. 사람이 자신의 외양을 꾸미듯 건물의 외양 또한 꾸몄다. 치장은 예의가 됐다.

건물은 지난해 3월 준공해 그해 7월에 문을 열었으니 거의 1년이 흘렀다. 165㎡(약 50평) 남짓한 대지 위에 지상 4층 규모로 들어선 적벽돌 건물이다. 건물 디자인과 소재 선택은 건축주가, 건물 설계는 오은주(건축사사무소 지안) 건축사가 했다. 건물 정면(남쪽)이 훤한데, 적벽돌로 채우지 않은 파사드(facade) 부분이 마치 (고려)청자나 (조선)백자 같기도 하고, ‘엄지척’하는 엄지 모양이기도 하다. 이렇게 건물 정면을 비워놓은 것은 건축주의 요구도 있었지만, 건축사의 마음도 건축주와 일치했기 때문이다. 줄탁동시(啐啄同時)라고나 할까? 여하튼 이게 연경재의 상징이 됐다.


연경재 1층. 천장을 높여 고객들이 들어서면 시원한 개방감을 느낄 수 있게 했다. 이성민 사진작가 제공


■이어지고 통하다

연경재라는 이름부터 궁금했다. 어디서 들어 본 낯익은 이름이다. 아니나 다를까. 건축주는 서울 창덕궁 후원의 연경당(演慶堂·보물 제1770호)에서 따왔다고 했다. 연경당은 건축주가 수년 전 가본 곳이었다. 그때 받았던 전통식 근대 가옥(궁궐 건물)에 대한 인상이 깊게 남아 있었다. 한자와 의미는 다르지만, 우리 음을 빌렸다. 이을 연(聯), 통할 경(涇), 집 재(齋), ‘이어지고 통한다’는 의미다. 이름 짓는 데만 거의 1년이 걸렸다.

건축주는 “사람과 사람, 과거와 현재, 이질적 문화와의 융합이 연경재라는 이름 속에 내포해 있고, 건물 속에 함축해 있다”고 했다. 40대 건축주는 대학에서는 경영학을 전공했지만, 디자인과 건축에 해박했다. 연경재를 설명하는 그의 입에선 막힘이 없었다.                

카페라는 곳이 만남의 공간이니, 사람과 사람을 이어주는 것은 어쩌면 당연하다. 그렇다면 과거와 현재는 어떻게 이을까? 본래 이곳엔 약국과 전통 찻집의 2층짜리 적산가옥(敵産家屋)이 있었다. 이를 해체하면서 나온 목재 일부는 고객들이 머무는 카페 2, 3층에 기둥으로 재활용했다. 연경재가 자리한 인근엔 조선시대 때 초량왜관에 정박하는 무역선들의 선착장이자, 개화기 해외 문물 유입의 관문인 해관(현재의 세관)이 있었던 것으로 전한다. 연경재 서쪽으로 이어지는 길은 그래서 지금도 ‘해관로 가로수길’로 불린다. 어찌 과거와 현재가 이어지지 않는다 할 수 있겠는가?


연경재 2층. 적산가옥(敵産家屋)을 해체하면서 나온 목재 일부를 기둥으로 재활용했다. 이성민 사진작가 제공


카페 내부 인테리어는 서구적이면서도 한·중·일을 융합해 놓은 것 같은 묘한 분위기를 연출한다. 다양성을 포용하는 아량이랄까. 연경재 외부는 박공지붕에 적벽돌로 삼 면을 감싸, 지극히 근대적이고 서구적이다. 하지만, 정면은 벽돌을 걷어내 마치 건물 속살을 보여주는 것 같은 반전을 택했다. 곡선이 그리는 자유로운 입면이 스쳐 지나가는 객(客)에게도 마음 설레게 한다.

연경재는 박제된 전통을 넘어서 새로운 것을 편견 없이 받아들인다. 그러면서 넉넉히 포용하고, 융합해낸다.

건물 외벽, 파사드의 곡선은 한옥의 지붕 선에서 모티브를 따왔다. 건축사나 건축주는 건물 안에서도 한옥 느낌을 주면서 건물 밖에서도 한옥 느낌을 보여주고 싶었다. 마치 병산서원 ‘만대루(晩對樓)’에서 바깥 풍경을 봤을 때의 느낌을 구현해 보고 싶었다고나 할까.

“적벽돌과 창 사이 공간을 조금 넓게 둬 건물 안에서도 적벽돌이 만들어 낸 곡선을 온전히 보여주고 싶었는데, 땅이 좁아 완벽하게 구현하지 못한 것이 못내 아쉽다”고 건축사는 말했다. 당초에는 적벽돌과 유리창 사이 틈을 1m가량 두는 것으로 했지만, 60cm 정도에 만족해야 했다.

건축주는 건물 이미지가 오롯이 한 곳, 한 틀 속에 머물러 있기만 바라지 않는다. 이름을 붙일 수도 있고 드러나 보이기도 하지만, 이름을 붙일 수도 드러나지도 않는 존재, 이렇게 다양한 모습으로 고객에게 다가갔으면 한다.


연경재 2층 모습. 정원 모습을 구현했다. 정달식 신임기자


■정성이 더해 차이를 만들다

연경재는 조그마한 공간이지만, 공간 효율성이 뛰어난 편이다. 쓸데없이 버려진 공간이 별로 없기 때문이다. 오 건축사는 “대지 면적이 넓지 않아, 계단과 엘리베이터, 화장실 등 코어 면적(Core area)을 최소화해 서비스 공간 확보에 주력했다. 이렇게 하다 보니 고객을 위한 서비스 공간이 효율적으로 나왔다”고 말했다. 실제 공간은 30평 남짓이지만, 공간이 더 넓어 보이는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었다.

오 건축사는 “건축주가 요구하는 맞춤형 설계를 했는데, 공간이 예상보다 잘 빠졌다”고 했다. 건축주도 “공간을 알뜰하게 잘 썼다. 원하는 동선을 잘 뽑았고, 이에 대해 건축사가 설명도 쉽게 해 줘 소통이 잘됐다”며 만족감을 표시했다.

연경재 1층은 천장을 높여 고객들이 들어서면 시원한 개방감을 느낄 수 있게 했다. 2, 3층은 마치 한옥 정원에 있는 느낌이다. 그런데도 모던함을 잃지 않는다. ‘반복’과 ‘변주’를 했기 때문이다. 2, 3층은 같아지기와 달라지기가 거듭되면서, 서로 같으면서 같지 않은, 다르나 다르지 않은 매우 독특한 모습을 드러낸다. 차 마시는 위치에 따라 느낌이 다르게 테이블, 의자를 모두 다르게 배치했다. 한 움큼의 정성이다. 공간 위치에 따라 분위기도 다르다. 창문 쪽 대청마루 다르고, 안쪽 좌식 공간 다르다. 마치 방 위치에 따라 다르게 꾸며진 한옥과 흡사한 구조로 공간을 배치했다. 한옥이라면 안쪽 좌식 공간이 사랑채가 되는 셈이다. 남쪽을 향해 의자에 몸을 기대어 앉아 있으면 햇살이 따스하게 내리쬔다. 고요하면서도 아늑한 느낌. 어느 순간, 나른함이 주인이 된다.


연경재 3층. 안쪽에는 좌식 공간도 보인다. 이성민 사진작가 제공


‘자세히 보아야 예쁘다/오래 보아야 사랑스럽다/너도 그렇다’ 나태주 시인의 시 ‘풀꽃’이다. 주변에서 흔히 볼 수 있는 일상적인 사물에서 차이를 발견하고 새로운 가치를 부여하려면 주의 깊은 관찰력과 시간이 필요하다. 연경재 남쪽 창을 통해 드러나는 풍경은 멋지다고는 할 수 없다. 얼기설기 뒤엉킨 전깃줄이 지극히 도시적이다. 하지만 봄엔 남쪽으로 하얀 이팝나무 꽃이, 가을엔 서쪽으로 노랑 은행나무 잎이 눈을 간지럽힌다. 구도심 한가운데 이런 풍경을 느낄 수 있다는 건 소소한 행복이다.

오 건축사는 디자인을 예쁘게 제시하는 것도 좋지만, 실제 사용자 입장을 최대한 고려하는 게 본인의 설계관이라고 했다. 그는 “내 생각이 맞는지 늘 생각한다. 스케치를 놓고 건축주와 얘기하고 소통하는 것을 중요시한다”고 했다. 이런 과정이 연경재가 여느 카페와 다름(차이)을 만들었다.

다른 지역에서도 비슷한 모양의 카페가 들어설 정도로 연경재 효과는 예상보다 크다. 이미 예쁘장한 카페 하나가 구도심을 변모시키고 있다. 서울에서도 고객들이 SNS를 보고 찾아오기도 한다. 연경재가 활력소가 돼 주변에도 하나둘 카페가 들어서고 있다. 건축주는 주변 문화공간이나 콘텐츠와 연계해 내심 상권이 활성화됐으면 하는 눈치다.

도심에는 여러 공간이 있다. 나만 아는 곳, 나도 잘 모르지만 지나가다 좋아 보여서 들리는 곳, 건축사나 건축가의 유명세 덕분에 유명한 곳, 사람들이 많이 가는 익숙한 곳…. 연경재는 어떻게 다가올까? 참 표정이 좋은 공간이다.

좋은 사람 주변에는 사람이 모이듯이, 좋은 건축에는 사람이 모인다. 그렇게 사회는, 우리의 건축은, 조금씩 나아간다.


정달식 선임기자 dosol@busa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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