필리아(philia), 선을 향한 협력의 우정

우정의 편지, 공동선을 향한 동행

by 후추
빌립보서 1장, 새번역

3 나는 여러분을 생각할 때마다, 나의 하나님께 감사를 드립니다.
4 내가 기도할 때마다, 여러분 모두를 위하여 늘 기쁜 마음으로 간구합니다.
5 여러분이 첫 날부터 지금까지, 복음을 전하는 일에 동참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6 선한 일을 여러분 가운데서 시작하신 분께서 그리스도 예수의 날까지 그 일을 완성하시리라고, 나는 확신합니다.


고대 그리스 로마 세계에서는 편지가 단순한 소통 수단을 넘어 우정을 표현하는 중요한 방식이었습니다. 그런 점에서 빌립보서 역시 바울과 빌립보 교회가 서로의 신뢰와 사랑을 나눈 우정의 편지라고 할 수 있습니다. 물론 빌립보서는 단순한 우정의 편지가 아니라 복음을 위한 협력과 감사의 편지이지만, 그 안에는 서로를 향한 깊은 신뢰와 애정, 곧 ‘필리아적 우정’의 정서가 깃들어 있습니다.


그런데 고대 그리스 사람들이 생각한 '우정'은 우리가 생각하는 것과 조금 달랐습니다. 우정을 뜻하는 그리스어 필로스(philos)는 '소중한', '친애하는'이라는 뜻이 있습니다. 이 단어는 '친구'를 의미하기도 하는데, 단순히 친한 친구 사이를 넘어서 함께 협력하는 동료 관계를 뜻했습니다.


오늘날 우리는 우정을 대개 감정 상태로 생각합니다. 그래서 감정 상태나 환경에 따라 친구 관계를 유지하고, 그렇지 않으면 멀어지기도 합니다. 시간이 지나도 안부를 묻고 연락하는 사람이 있는가 하면, 그렇지 않은 사람도 있습니다. 시간이 흘러 자연스레 잊혀지는 친구들도 있습니다. 영원할 것만 같던 인연이 끊어지는 경우도 허다합니다. 아쉽기도 하고 야속하지만, 인연이 아니라고 생각하며 돌아설 뿐입니다. 표현하기엔 애매모호한 감정 상태에 따라 친구 관계가 유지되기도 하고, 절연되는 건 감정이 그만큼 우정의 지속에 중요한 영향을 미친다는 점을 보여줍니다.


하지만 고대 그리스 사람들은 우정을 감정이 아니라 인격과 품성으로 생각했습니다. 철학자 아리스토텔레스는 이렇게 말했습니다. "감정은 금방 변하지만, 우정은 오랜 시간 동안 신뢰를 쌓으면서 만들어지는 습관 같은 것이다." 즉, 우정을 일시적인 감정이 아니라 서로 협력하는 동반자 관계로 이해했던 것입니다. 그들이 친구나 동료를 배신하는 일을 수치스럽게 생각한 까닭이 그에 있습니다.


그러기에 진정한 우정은 친구, 동료를 위해 선한 일을 행합니다. 내가 원하는 것을 얻기 위해서가 아니라, 상대방에게 유익이 되는 선한 일을 하는 것 자체가 목적이 됩니다. 우정은 함께 나누는 교제 속에 존재하며, 가족, 동료, 이웃 사이의 정과 사랑을 모두 포함합니다.


이처럼 우정은 사랑의 한 형태이기에, 그리스인들은 사랑의 유형을 네 가지로 구분해 표현했습니다. 본능적이고 열정적인 사랑 에로스(eros), 조건 없이 베푸는 사랑 아가페(agape), 가족 간의 본능적인 애정 스토르게(storge), 그리고 친구들 사이의 우정인 필리아(philia)입니다. 이 중에서 필리아는 단순히 친구 사이의 사랑만이 아니라 부모와 자식, 스승과 제자, 시민들 사이의 사랑, 심지어 인류애까지 포함하는 넓은 의미였습니다.


예수님의 사랑은 아가페 외에 필리아로도 표현됩니다. 요한복음 11:3에서는 마르다와 마리아가 예수님께 사람을 보내 말합니다. “주님, 보십시오. 주님께서 사랑하시는(philei) 사람이 앓고 있습니다.” 예수님과 나사로가 깊은 우정으로 연결되어 있었다고 볼 수 있습니다. 절친했던 친구 나사로의 죽음 앞에 눈물을 흘리셨던 예수님의 사랑이 이해가는 대목입니다. 예수님과 나사로는 이성적 협력을 넘어 인간적인 감정이 어우러진 사랑을 나눴던 것입니다.


이익을 얻거나 즐거움을 위한 우정은 쉽게 변합니다. 하지만 진정한 우정은 일시적이지 않고 오래 지속됩니다. 우정은 순간적인 감정이나 개인의 만족을 위한 것이 아닙니다. 서로를 유익하게 하고 공동의 선을 지향하게 됩니다. 바울은 빌립보 교회의 사람들과 그런 우정을 나눴습니다. 빌립보서를 보면 서로 유익을 주고받는 표현들이 자주 나옵니다.


“여러분이 첫 날부터 지금까지, 복음을 전하는 일에 동참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빌 1:5, 새번역)


아리스토텔레스는 "진정한 우정은 하나의 영혼이 두 몸에 사는 것 같다”라고 말했습니다. 아리스토텔레스가 말한 도덕적 우정이 선을 향한 협력이라면, 바울과 빌립보 교회의 관계 역시 하나님 나라라는 공동선을 위한 협력의 우정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바울과 빌립보 교회는 처음부터 복음 안에서 함께 협력했습니다. 그들이 바라는 공동선이 하나님 나라 전파에 있었기 때문입니다. 이야기침례교회의 사랑과 우정 덕분에 맛있는교회도 교회 공동체로 자리를 잡아갈 수 있었습니다.


이야기침례교회의 사랑과 우정은 단순한 감정이 아니라, 하나님 나라를 이루기 위한 공동선에서 시작되었다고 생각합니다. 그렇기 때문에 이야기침례교회도 넉넉하지 않은 상황에서 맛있는교회를 후원해 주셨습니다. 두 교회는 비슷한 점도 있고 다른 점도 있습니다. 비록 다른 모습이 있더라도, 이야기침례교회가 맛있는교회를 후원해 주신 이유는 하나라고 생각합니다. 하나님 나라가 전파되고 확장되기를 바라는 순전한 마음 때문입니다. 빌립보서의 말씀을 빌어 감사의 마음을 전합니다. 감사합니다.


이야기침례교회의 우정으로 세워진 맛있는교회가 어떤 공동체인지 소개해 드리겠습니다. 맛있는교회는 교회력에 따라 성경 말씀을 각자 읽고 나눕니다. 본문에 대한 의문과 깨달음을 나누며 서로 질문하고 답합니다. 미궁에 빠질 때도 있지만, 애정 있게 본문을 살피다 보면 예상치 못한 깨달음을 얻기도 합니다. 각자의 상황과 고민을 자연스럽게 나누며 성경 본문을 갈무리하고 성만찬으로 나아갑니다.


상징이나 기념으로 하지 않고 실제 음식으로 배불리 주의 만찬을 즐깁니다. 떡볶이나 라면 같은 분식류부터 한식, 양식, 중식도 먹습니다. 각자 음식 재료나 간식을 가져오기도 하는데, 저희는 이러한 식탁 공유가 서로를 돌보는 작은 연대의 실천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렇게 식사 이후에 뒷정리까지 마치고 공동기도와 공동축도, 파송선언으로 예배를 마칩니다.


맛있는교회는 그 이름대로 성만찬의 소중한 음식을 나누는 교회를 지향합니다. 가끔은 채식으로 음식을 준비하는데, 이는 환경을 돌보는 녹색교회를 지향하기 때문입니다. 맛있는교회가 이야기침례교회의 우정과 사랑에 힘입어, 지역사회에 환대의 우정을 실천하는 교회로 자라가기를 바랍니다.


사진을 통해 맛있는교회의 모습을 보여드립니다. (사진) 지난 1년 반 동안 제주를 여행하며 예배에 참석하신 분들, 난생 처음 예배를 드려보신 분들과 함께 우정의 식탁을 나눴습니다. 앞으로도 이야기침례교회와 맛있는교회가 함께 하나님 나라의 공동선을 위해 우정을 주고받는 관계로 성장해 가기를 소망합니다.

이전 16화삭개오: 이름을 되찾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