골로새서와 브루더호프가 말하는 공동체
골로새서 1장, 새번역
13 아버지께서 우리를 암흑의 권세에서 건져내셔서, 자기의 사랑하는 아들의 나라로 옮기셨습니다.
14 우리는 그 아들 안에서 구속 곧 죄 사함을 받았습니다.
15 그 아들은 보이지 않는 하나님의 형상이시요, 모든 피조물보다 먼저 나신 분이십니다.
16 만물이 그분 안에서 창조되었습니다. 하늘에 있는 것들과 땅에 있는 것들, 보이는 것들과 보이지 않는 것들, 왕권이나 주권이나 권력이나 권세나 할 것 없이, 모든 것이 그분으로 말미암아 창조되었고, 그분을 위하여 창조되었습니다.
17 그분은 만물보다 먼저 계시고, 만물은 그분 안에서 존속합니다.
골로새서를 떠올리면 ‘그리스도는 교회의 머리’라는 선언이 먼저 생각납니다. 아름답지만 다소 추상적으로 들리는 이 문장 때문에 교리적이고 원칙적인 책으로 이해되는 것도 사실입니다.
바울이 골로새 교인들을 직접 만나지 못했음에도 이 편지를 보낸 이유를 살펴보면, 골로새서는 단순한 교리 설명을 넘어 교회가 어떤 삶의 태도와 정체성을 가져야 하는지 가르치는 실천적 메시지를 갖는다고 생각합니다.
바울은 자신의 얼굴조차 본 적 없는 골로새와 라오디게아 교회가 이 서신을 통해 서로 연결되기를 원했습니다(골 2:1; 4:16). 이는 두 교회가 물리적 관계를 넘어 그리스도 안에서 하나의 공동체를 이룬다는 사실을 강조한 것입니다. 우리 역시 바울이나 예수님을 보지 못했지만, 같은 성령 안에서 그리스도를 머리로 하는 한 몸, 교회로 부름받았다는 걸 떠오르게 합니다.
골로새 교회가 겪은 도전 중 하나는 황제 숭배로 상징되는 ‘암흑의 권세’에 휘둘릴 수밖에 없는 상황이었다는 것입니다(골 1:13). 로마 황제는 만물의 기원, 평화의 주, 구세주라는 호칭을 독점하며 절대적 권세를 행사했습니다. 그러나 바울은 이 칭호들을 황제가 아니라 예수님께 사용합니다. 만물이 예수님 안에서 창조되었으며, 예수님으로 말미암아 창조되었고, 그분을 위해 창조되었다는 것입니다. 이는 신격화되는 황제권에 대한 저항입니다. 예수님 외에는 어떤 권세도 우리의 정체성을 규정할 수 없다는 과감한 선언입니다.
골로새서는 하나님의 나라로 옮겨진 우리의 신분을 기억하며, 세속의 믿음과 풍조에 굴종하지 않는 다른 방식의 삶을 선택하라고 촉구합니다. 바울은 말로 고백하는 것뿐만 아니라, 삶으로 드러내는 일관성 있는 공동체를 바랐습니다. “무엇을 믿는가”에 머무르지 않고, “어떻게 살아야 하는가”를 묻는 것입니다. 우리는 어떤 삶으로 증언할 것인가를 묻게 됩니다.
그러기에 바울의 이야기는 오늘날 우리에게도 의미있습니다. 이 시대에도 신격화되고 숭배되는 것들이 있습니다. 부정하고 싶지만 이 사회에서 돈이나 권력이 중차대한 영향력을 행사하며, 우리 또한 돈과 권력을 흠모하고 숭상하는 일에서 자유롭지 못한 게 사실입니다.
최근에 브루더호프에 대한 기사를 읽었습니다. 1920년 독일에서 시작된 브루더호프는 재산과 삶을 함께 나누며, 예수님을 따르는 길이 교리나 제도 속에 머물지 않고 공동체적 실천을 통해 드러나야 함을 보여줍니다. 예수님을 따르는 삶은 교리나 종교의 틀 속에 머물러 있지 않고 공동체의 생활 방식으로 증언됩니다. 실로 기독교 신앙은 무엇보다 도그마 이전의 삶이라는 사실을 우리는 되돌아봐야 합니다.
우드크레스트(woodcrest) 브루더호프의 목회자 하인리히 아놀드의 인터뷰를 소개하며 마칩니다.
공동체는 멀리 있지 않습니다. 여러분의 미소 하나가 공동체를 만듭니다. 물 한잔을 건네는 따뜻한 마음에서도 공동체는 시작됩니다. (…)
우리가 할 수 있는 작은 일들이 있습니다. 핸드폰을 잠시 내려놓고 서로 이야기를 나누는 일, 그 단순한 행동이 공동체를 세우고 하나님 나라를 확장하는 첫걸음이 됩니다.
물론 어떤 분들은 실제로 공동체의 일원이 되기도 합니다. 하지만 하나님 나라는 그런 형태를 넘어 훨씬 더 크고 깊은 것입니다. 우리가 어디에 있든 예수님의 모범을 따라 살아간다면, 그곳이 바로 하나님 나라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