누가복음 19장, 새번역
1 예수께서 여리고에 들어가 지나가고 계셨다.
2 삭개오라고 하는 사람이 거기에 있었다. 그는 세관장이고, 부자였다.
3 삭개오는 예수가 어떤 사람인지를 보려고 애썼으나, 무리에게 가려서, 예수를 볼 수 없었다. 그가 키가 작기 때문이었다.
4 그래서 그는 예수를 보려고 앞서 달려가서, 뽕나무에 올라갔다. 예수께서 거기를 지나가실 것이기 때문이었다.
5 예수께서 그 곳에 이르러서 쳐다보시고, 그에게 말씀하셨다. "삭개오야, 어서 내려오너라. 오늘은 내가 네 집에서 묵어야 하겠다."
6 그러자 삭개오는 얼른 내려와서, 기뻐하면서 예수를 모셔 들였다.
7 그런데 사람들이 이것을 보고서, 모두 수군거리며 말하였다. "그가 죄인의 집에 묵으려고 들어갔다."
8 삭개오가 일어서서 주님께 말하였다. "주님, 보십시오. 내 소유의 절반을 가난한 사람들에게 주겠습니다. 또 내가 누구에게서 강제로 빼앗은 것이 있으면, 네 배로 하여 갚아 주겠습니다."
9 예수께서 그에게 말씀하셨다. "오늘 구원이 이 집에 이르렀다. 이 사람도 아브라함의 자손이다.
10 인자는 잃은 것을 찾아 구원하러 왔다."
삭개오의 이름은 '의로운, 청결한'이라는 뜻을 가지고 있습니다. 세리장이 된 삭개오는 사람들의 미움을 받고 있었지만, 그의 부모는 어린아이가 의롭고 순수한 사람으로 자라길 바라며 그 이름을 지어주었을 겁니다. 자기 이름값을 하고 사는 건 쉽지 않은 일입니다.
'사람'이라는 말이 '살다'라는 동사에 접미사 '암'이 결합되어 파생된 말이라는 것을 들어보셨을 겁니다. 사람은 동명사적 존재로, 존재(being)와 행위(doing)가 결합된 존재입니다. 사람은 본질성을 발현하기 위해 행동합니다. 그러기에 사람은 내가 누구인지, 그리고 무엇을 해야 하는지 고민하는 존재입니다. 함석헌 선생님은 참나를 찾는 걸 포기한 사람을 짐승도 아니요, 악마나 사탄이라 했습니다. 그만큼 우리는 이름노릇하며, 사람노릇하며 살기 위해 부단히 힘써야 합니다. 사람은 자기 성찰을 본령(本領)으로 삼아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삭개오는 어떤 사람이었을까요? 자신의 이름과 달리, 자신이 저지른 일들이 강도짓과 같다고 고민했을까요? 자신의 이름대로 의롭게 살지 못하는 데에서 오는 불편함이 그를 위축되게 만들었을지도 모르겠습니다. 사람들의 미움과 비난을 받으며, 왜소한 삭개오는 더더욱 움츠러들었을 것입니다. 위축된 어깨와 허리는 그를 더욱 왜소하게 만들었을 것입니다.
그는 예수님을 보기 위해 돌무화과나무 위에 올랐습니다. 우리말 성경에서는 뽕나무로 번역되었지요. 돌무화과나무의 열매는 맛이 없어서 궁핍한 사람들의 식량이나 가축 사료로 사용되었다고 합니다. 돌무화과나무가 마치 삭개오의 처지를 보여주는 것만 같습니다. 비록 그는 부자였지만, 사람들로부터 쓸모없는 취급을 받고 있었으니 말입니다. 그는 재산이 많았지만, 눈에 보이지 않는 자산은 거의 없는 사람이었습니다. 이웃과 나누는 유대감, 이웃으로부터 받는 신뢰감, 그는 그런 면에서 빈궁한 자였습니다.
예수님은 외로운 삭개오를 쳐다보시고 말씀하셨습니다. 삭개오의 집에 찾아가 묵은 사람이 몇이나 있었을까요. 사람들로부터 미움받을 각오를 하지 않고서는 삭개오와 어울리는 것이 쉽지 않았습니다. 그러나 뭇사람들의 존경을 받는 위대한 선생님이 그의 집에 묵으시겠다니, 그에게 변화의 기회가 찾아온 것입니다.
그는 소유의 절반을 가난한 이들에게 나눠 주고, 강제로 빼앗은 것을 네 배로 갚겠다고 다짐합니다. 그에게 구원의 순간이 찾아왔습니다. 그의 재산은 줄어들 것입니다. 대신 그는 사람들의 신뢰를 얻게 될 것입니다. 단절되었던 그의 관계는 연결될 것이며, 상호 호혜에 기반한 연대감이 그의 삶을 보다 풍요롭게 할 것입니다. 비로소 그는 ‘의로운’이라는 자신의 이름처럼 행동하는 사람이 될 것입니다.
최근에 저출산, 저출생의 문제의 원인을 사회적 자본이 붕괴된 데에서 찾는 기사를 읽었습니다. 국가에서는 출산휴가와 육아휴직 제도, 아동 돌봄 책정이나 육아수당을 통해 출산을 장려합니다. 시장에서도 육아의 어려움을 해결하기 위한 서비스와 상품 들이 여럿 있습니다. 그럼에도 2023년에 우리나라의 합계출산율은 0.72명으로 선진국 중에서도 유례를 찾기 어렵다고 합니다. 이웃과 아이를 키우며 정보를 나누는 일, 급한 일이 생겼을 때에 도움을 주고받을 수 있는 이웃 관계, 심지어 이웃주민과 웃으며 인사하는 것조차도 어려운 사회가 되었습니다. 드라마 ‘응답하라 1988’에 나온 덕선이네와 정환이네, 선우네, 택이네, 동룡이네의 유대감은 찾기 어려워졌습니다. 궁핍한 시기였지만 이웃과 나누는 우정 때문에 그들이 무척이나 행복해 보였는데 말입니다. 쌍문동이 개발되면서 그 자리엔 아파트가 들어섰고, 그들도 각자 이사를 가면서 쌍문동 골목길 공동체는 해체되었습니다.
이와 비교했을 때, 삭개오가 얻은 무형의 자산은 어떤 것보다 값집니다. 그의 집에 구원이 찾아왔습니다. 그는 내세의 구원뿐 아니라 현세의 구원을 경험합니다. 자신의 이름대로 살지 못했던 삭개오는 자기 이름대로 살게 됩니다. 오늘날 우리가 사소하게 여기는 것 중에 정말로 소중한 것이 있을지 모르겠습니다. 친구와 동료, 이웃과 함께 나누는 우정과 신뢰, 유대감입니다. 우리도 삭개오처럼 전도된 가치를 찾아 헤맸던 것은 아닐까요? 삭개오를 부르시던 예수님의 음성이, 우리 안에 사람의 본질을 깨우치는 하나님의 음성처럼 들리길 바랍니다.
“의로운 사람아, 어서 내려오너라. 오늘은 내가 네 집에서 묵어야 하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