찬양은 세계를 선택하는 일이다
에베소서 1장, 새번역
3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하나님 아버지를 찬양합시다. 하나님께서는 그리스도 안에서, 하늘에 속한 온갖 신령한 복을 우리에게 주셨습니다.
4 하나님은 세상 창조 전에 그리스도 안에서 우리를 택하시고 사랑해 주셔서, 하나님 앞에서 거룩하고 흠이 없는 사람이 되게 하셨습니다.
5 하나님은 하나님의 기뻐하시는 뜻을 따라 예수 그리스도를 통하여 우리를 하나님의 자녀로 삼으시기로 예정하신 것입니다.
6 그래서 하나님이 하나님의 사랑하시는 아들 안에서 우리에게 거저 주신 하나님의 영광스러운 은혜를 찬미하게 하셨습니다.
에베소 교회가 자리하고 있던 에베소 도시는 고대 세계에서도 손꼽히는 거대한 도시였습니다. 이 도시에 들어서면 가장 먼저 눈에 들어오는 것은 단연 아르테미스 신전이었을 것입니다. 바울이 활동하던 당시의 아르테미스 신전은 길이 약 137미터, 너비 약 69미터, 높이 약 18미터에 이르는 웅장한 건축물이었고, 127개의 대리석 기둥으로 이루어진 당대 최대 규모의 신전이었습니다. 도시의 중심이자, 사람들의 시선과 마음이 모이는 곳이었습니다.
사도행전 19장은 에베소에서 일어난 소요를 전합니다. 아르테미스를 둘러싼 종교적 열정과 그것에 기대어 살아가던 경제가 흔들리자, 도시는 혼란에 빠졌습니다. 아르테미스 신전은 단순한 종교 시설이 아니었습니다. 그곳은 신앙과 문화, 정치와 경제가 얽혀 있던 에베소의 상징이었고, 사람들의 삶을 지탱하는 세계 그 자체였습니다.
이런 도시를 향해 바울은 편지를 보냅니다. 그리고 에베소서 1장 3절부터 14절까지, 헬라어 원문으로는 단 한 문장으로 이루어진 긴 찬미를 기록합니다. 이 본문은 논리적으로 치밀하고 신학적으로 깊이 있지만, 동시에 그것은 설명문이라기보다 노래에 가깝습니다. 하나님께 드리는 찬미, 리듬과 호흡을 가진 고백입니다.
어쩌면 우리는 이 찬미를 에베소에 울려 퍼지던 아르테미스를 향한 찬가와 나란히 놓고 읽을 수 있을지도 모릅니다. 풍요와 다산, 안전과 번영을 약속하던 여신을 향한 노래들 사이에서, 바울은 전혀 다른 방향의 찬미를 들려줍니다. 그는 인간의 욕망을 채워주는 신이 아니라, 창세 전에 우리를 택하시고, 그 뜻 안에서 우리를 부르신 하나님을 찬양합니다. 눈에 보이는 신전이 아니라, 보이지 않는 신비를 노래합니다.
에베소는 소아시아 최대의 무역 도시였습니다. 부와 교역, 성공과 확장의 논리가 지배하던 공간에서, 아르테미스 숭배는 어쩌면 너무도 자연스러웠을 것입니다. 그러나 바울의 찬미는 질문을 던집니다. 우리의 삶을 지탱하는 것이 과연 무엇인가, 우리가 의지하고 노래하는 대상은 누구인가를 묻습니다.
그렇기에 바울의 찬미와 예배는 대안적이며 저항적인 삶의 방식이기도 합니다. 세상이 숭배하는 가치에 맞서, 다른 이야기를 노래하는 방식입니다. 우리의 예배와 찬양 역시 그랬으면 좋겠습니다. 성공과 효율, 가시적인 성취를 향한 찬가가 넘쳐나는 시대 속에서, 하나님을 향한 찬미가 우리가 살아가는 방식으로 울리기를 말입니다.
또한 에베소서의 찬미는 하나님을 ‘이해의 대상’으로 붙잡기보다, ‘경탄의 대상’으로 남겨둡니다. 복잡한 신학의 언어들이 이어지지만, 바울은 그것을 설명하려 들지 않습니다. 그는 설명하고 이해하기보다 찬양과 경탄하기를 택합니다. 때때로 이성의 빛은 오만하여 신비의 여지를 남겨두지 않습니다. 이성의 빛으로 세상을 밝히려 합니다. 조그만 머릿속에 온 우주를 담아두려 합니다. 신비가 없는 삶은 얼마나 건조할까요. 하나님의 신비에 감탄하며 기뻐할 줄 아는 넉넉한 마음이 가득한, 한 해가 되기를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