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벨탑 신화와 도시 문명 이야기
창세기 11장, 새번역
1 처음에 세상에는 언어가 하나뿐이어서, 모두가 같은 말을 썼다.
2 사람들이 동쪽에서 이동하여 오다가, 시날 땅 한 들판에 이르러서, 거기에 자리를 잡았다.
3 그들은 서로 말하였다. "자, 벽돌을 빚어서, 단단히 구워내자." 사람들은 돌 대신에 벽돌을 쓰고, 흙 대신에 역청을 썼다.
4 그들은 또 말하였다. "자, 도시를 세우고, 그 안에 탑을 쌓고서, 탑 꼭대기가 하늘에 닿게 하여, 우리의 이름을 날리고, 온 땅 위에 흩어지지 않게 하자."
5 주님께서 사람들이 짓고 있는 도시와 탑을 보려고 내려오셨다.
6 주님께서 말씀하셨다. "보아라, 만일 사람들이 같은 말을 쓰는 한 백성으로서, 이렇게 이런 일을 하기 시작하였으니, 이제 그들은, 하고자 하는 것은 무엇이든지, 하지 못할 일이 없을 것이다.
7 자, 우리가 내려가서, 그들이 거기에서 하는 말을 뒤섞어서, 그들이 서로 알아듣지 못하게 하자."
8 주님께서 거기에서 그들을 온 땅으로 흩으셨다. 그래서 그들은 도시 세우는 일을 그만두었다.
9 주님께서 거기에서 온 세상의 말을 뒤섞으셨다고 하여, 사람들은 그 곳의 이름을 바벨이라고 한다. 주님께서 거기에서 사람들을 온 땅에 흩으셨다.
전통적으로 교회에서는 가장 근원이 되는 죄 중 하나로 교만을 뽑습니다. 시대마다 조금씩 달라졌지만, 교만은 일곱 가지 죄악의 뿌리로 자주 언급되었습니다. 바벨탑 이야기는 신과 버금가고자 하는 인류의 교만이라는 주제로 알려져 있습니다. 그런데 이 이야기를 자세히 살펴보면, 단순히 개인적 교만을 넘어 도시 문명 자체에 대한 성경의 독특한 관점을 발견할 수 있습니다.
바벨탑 이야기는 시날 평야에서 시작됩니다. 시날 평야는 유프라테스강과 티그리스강 사이인데, 오늘날 이라크 남부 지역입니다. 이곳에서 메소포타미아 문명이 시작되었는데, 그만큼 시날 평야는 비옥한 땅이었습니다. 시날 평야는 물 공급에도 유리하고, 충적토가 쌓여 농사짓기에 유리했습니다. 이곳에서 사람들이 모여 농경 사회를 만들면서 자연스레 도시 문명이 발전했습니다. 농경 사회로의 전환이 도시 문명을 이룩하는 데에 불가분의 관계에 있다고 생각할 수 있습니다.
창세기 4장에서도 도시가 만들어진 이야기가 나옵니다. 가인은 에녹성을 축조하여 도시를 만듭니다. 그의 직업이 농부였다는 것도 우연 같지는 않습니다. 그가 동생 아벨을 죽인 후, 동쪽으로 추방된 것도 동쪽 사람들이 바벨탑을 만든 것과 연관되어 보입니다.
일반적으로 도시는 살기에 쾌적하고 안전한 곳으로 여겨집니다. 대개 사람들은 시골보다 도시에 거주하는 걸 선호합니다. 산업화 시기를 지나면서 서울, 부산 등의 대도시로 사람들이 몰려들었고, 도시를 중심으로 일자리가 만들어졌기 때문입니다. 크게 성공하기 위해 서울로 가야 한다는 인식이 생긴 건 자연스럽습니다.
하지만 창세기 기자는 도시 문명을 경계합니다. 동생을 죽인 가인의 도시 건설, 바벨탑이 만들어진 과정에서 창세기 기자는 도시 문명을 결코 긍정적으로 묘사하지 않습니다. 아브라함의 조카 롯이 살았던 소돔과 고모라에 대해서도 부정적으로 그리며, 요셉이 팔려간 이집트에 대해서도 그렇습니다.
인류의 교만을 다루는 바벨탑 이야기가 도시 문명에 대해서도 경계하고 있다는 건, 깊이 생각해 볼 문제입니다. 도시 안에서 사람들은 안정적인 사회 시스템을 만들었습니다. 도시 안에 인류가 이룩한 문명과 기술이 집약되어 있습니다. 어떤 면에서 충분히 풍요롭고 안정적인 삶을 사는 도시인들은 교만해질 수밖에 없는 환경에 처해 있습니다.
도시 문명의 발달과 인간의 교만은 서로 맞물려 있습니다. 도시가 제공하는 안정감과 풍요로움은 인간으로 하여금 하나님보다 자신들이 만든 시스템에 의존하게 만듭니다. 바벨탑을 쌓은 사람들이 "하늘에 닿게 하여 우리 이름을 내고 온 지면에 흩어짐을 면하자"라고 한 것처럼 말입니다.
시골로 이주해야 한다는 당위성을 주장할 수는 없겠지만, 우리에게 안정감을 주고 풍요로움을 느끼게 하는 것이 사회 시스템인지, 하나님을 향한 신뢰인지는 따져볼 필요가 있습니다. 바벨탑 이야기는 도시 문명 속에서 살아가는 현대인들에게 철학적인 질문을 던지고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