크레도, 심장을 바치다

사랑으로 읽는 신앙

by 후추
로마서 5장, 새번역

1 그러므로 우리는 믿음으로 의롭다 하심을 받았으므로,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하나님과 더불어 평화를 누리고 있습니다.
2 우리는 또한,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지금 서 있는 이 은혜의 자리에 [믿음으로] 나아오게 되었으며, 하나님의 영광에 이르게 될 소망을 품고 자랑을 합니다.
3 그뿐만 아니라, 우리는 환난을 자랑합니다. 우리가 알기로, 환난은 인내력을 낳고,
4 인내력은 단련된 인격을 낳고, 단련된 인격은 희망을 낳는 줄을 알고 있기 때문입니다.
5 이 희망은 우리를 실망시키지 않습니다.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주신 성령을 통하여 그의 사랑을 우리 마음 속에 부어 주셨기 때문입니다.


누구나 기독교 신앙을 받아들인 후, 골치 아픈 경험을 한 적이 있을 겁니다. 청소년 신앙인이 겪는 가장 흔한 어려움은 학교에서 배운 과학 지식과 성경 지식이 서로 달라서 겪는 갈등입니다. 상충하는 두 지식이 충돌하기 때문에 그중 한 가지만 취사선택해야 한다고 생각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이런 현상이 일어나는 이유는 일차적으로 신앙을 '동의'에 관한 것으로 받아들이기 때문입니다. 신앙을 어떤 믿음 조항에 대한 지적 이해로만 한정해서 바라보는 것입니다.


이렇게 신앙을 이해하다 보면 "예수님이 우리를 위해 대신 십자가에서 돌아가신 것을 믿으십니까?"라는 질문에 대한 대답이 신앙의 핵심이 될 수밖에 없습니다. 하지만 지적 동의로서의 신앙에는 분명한 한계가 있습니다. 지적 활동에 따른 동의를 하기 어려운 사람들도 있기 때문입니다. 영유아나 장애인, 뇌사 판정을 받은 환우, 치매 어르신 등은 이런 관점에서는 신앙에서 배제될 수밖에 없습니다. 과연 이들에게는 신앙이 불가능한 것일까요?


그래서 어떤 이들은 신앙을 '두뇌의 문제'에만 국한하지 않고 '심장의 문제'까지 포함하여 폭넓게 이해할 것을 권합니다. 지적 동의로서의 신앙이 무가치하지는 않지만, 그것만이 신앙의 전부는 아니라는 점에서 그렇습니다. 도리어 진정한 신앙은 우리의 충성과 신뢰, 그리고 삶을 바라보는 가장 깊은 차원의 방식과 관련되어 있다는 것입니다. 고대 교회에서 '믿음'과 관련된 라틴어 단어 크레도(credo)가 문자적-사실적 진리에 대한 동의가 아니라, '나의 심장을 바칩니다'라는 헌신의 뜻으로 사용된 것을 주의 깊게 생각해 보면 좋겠습니다.


다운로드.jpeg Banksy, "Girl with Balloon"


로마서 본문은 신앙인이 환난 속에서도 인내력을 얻을 수 있고, 인내심이 성품이 되어가는 과정 속에서 참된 희망을 얻게 된다고 말합니다. 하지만 '두뇌 문제'에만 국한된 신앙으로는 환난 속에서 인내할 수 없습니다. 오히려 심장을 바친 사람이야말로 환난 속에서도 이겨낼 수 있는 힘을 얻게 됩니다.


실제로 기독교 교리를 해박하게 알고 있지 않음에도 불구하고, 적지 않은 신앙인들이 인생의 고난 속에서도 신앙을 포기하지 않는 이유는 복잡한 믿음 조항 때문이 아닙니다. 그저 하나님을 향한 충성과 사랑, 그리고 삶 전체를 맡기는 헌신이 있기 때문입니다. 보다 깊고 넓은 차원에서 신앙을 바라본다면, 우리의 신앙심도 보다 견고하고 깊어질 수 있을 것입니다.


그런 점에서 신앙은 삶을 대하는 방식, 삶의 태도와 관련되어 있습니다. 신앙은 사랑하는 것입니다. 때때로 삶의 방향성과 심장을 바쳐 사랑하고 있는 대상이 동기화 되고 있는지 살펴보는 게 중요하겠습니다.

일요일 연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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