타인에게 응답하는 소명

소명은 빚어지는 것

by 후추
열왕기상 19장 19-21절, 새번역

19 엘리야가 그 곳을 떠나서, 길을 가다가, 사밧의 아들 엘리사와 마주쳤다. 엘리사는 열두 겨릿소를 앞세우고 밭을 갈고 있었다. 열한 겨리를 앞세우고, 그는 열두째 겨리를 끌고서, 밭을 갈고 있었다. 엘리야가 엘리사의 곁으로 지나가면서, 자기의 외투를 그에게 던져 주었다.
20 그러자 엘리사는 소를 버려 두고, 엘리야에게로 달려와서 말하였다. "아버지와 어머니에게 작별 인사를 드린 뒤에, 선생님을 따르겠습니다." 그러자 엘리야가 말하였다. "돌아가거라. 내가 네게 무엇을 하였기에 그러느냐?"
21 엘리사는 엘리야를 떠나 돌아가서, 겨릿소를 잡고, 소가 메던 멍에를 불살라서 그 고기를 삶고, 그것을 백성에게 주어서 먹게 하였다. 그런 다음에, 엘리사는 곧 엘리야를 따라가서, 그의 제자가 되었다.


농경문화에서 겨리는 두 마리의 소가 끄는 쟁기를 말한다고 합니다. 열두 겨릿소를 앞세우고 엘리사가 밭을 갈았다는 것은 그가 대단한 부호였거나, 혹은 마을의 공동재산을 운영할 만큼 인정받았다는 것을 보여줍니다. 어쩌면 열두 겨릿소는 이스라엘의 열두 지파에 대한 이미지로 볼 수도 있겠습니다. 엘리야는 선지자의 권위를 상징하는 자신의 외투를 엘리사에게 건네줍니다. 엘리사는 갑작스러운 소명 앞에서 잠시 주저하는 듯합니다.


청소년기와 청년기를 지나며 누구나 인간 존재에 대해 고민합니다. 태어난 이유와 살아갈 목적이 무엇인지 스스로 묻습니다. 뚜렷한 답을 알 수 없기에 이리저리 방황하기도 하지요. 이는 철학의 중요한 문제이기에 철학자들도 여러 방법으로 인간 실존을 고민했습니다. 그러나 평범한 인간으로 생존해야 하는 인생의 무게에 짓눌려 철학적 사유를 잊고 살아가는 것이 일상입니다. 엘리사처럼 역사에 기록될 만한 극적인 소명을 받은 사람은 뿌듯하겠죠. 우리에게는 왜 그런 소명 사건이 일어나지 않는 것일까요?



Caravaggio_—_The_Calling_of_Saint_Matthew.jpg Caravaggio, "The Calling of Saint Matthew"


문득 헨리 나우웬 신부가 떠올랐습니다. 어떤 책인지 정확히 기억나지는 않지만, 깊은 인상을 받았던 이야기를 나누고 싶습니다. 헨리 나우웬 신부는 하버드 대학교 신학대학원의 초빙을 받아 교수로 강의하고 있었습니다. 어느 날, 그는 장 바니에 신부의 초청으로 프랑스 트로슬리에 있는 라르쉬 공동체에 머물 기회가 있었습니다. 발달장애인과 비장애인이 함께 생활하는 그 공동체에서의 예배와 일상은 헨리 나우웬에게 깊은 영감을 주었습니다.


얼마 뒤, 헨리 나우웬은 캐나다 토론토 근처에 있는 라르쉬 데이브레이크 공동체의 영성 지도자가 되어 달라는 부탁을 받습니다. 새로운 소명에 대해 고민하던 그는, 자신이 주도하고 계획하던 것보다 타인의 요청에 응답하는 진정성 있는 삶에 더욱 큰 끌림을 받게 됩니다. 그는 자신의 소명이 교수직이 아닌 라르쉬 공동체에 있다고 확신하며 데이브레이크로 떠납니다.


헨리 나우웬이 받은 소명은 엘리사의 그것에 비해 불확실합니다. 하지만 사소해 보이는 부름 앞에서 보인 그의 결심은 엘리사 못지않습니다. 엘리사가 겨릿소를 잡고 멍에를 불살라 고기를 삶아 사람들에게 나눠준 것은 과거를 뒤돌아보지 않겠다는 다짐이었습니다. 헨리 나우웬 역시 교수직을 그만두고 데이브레이크에서 중증 발달장애인 아담을 돌보는 일을 선택합니다. 교수직에 비해 성과를 계량할 수 없고 덜 중요해 보이는 일이었지만, 헨리 나우웬이 아담과 나눈 우정과 그에게서 배운 깨달음은 그 어떤 것보다 소중했습니다.


일상 속 사소해 보이는 부름에 응답하는 삶이야말로 진정 삶을 풍요롭게 만드는 것은 아닐까요. 엘리사와 헨리 나우웬처럼, 지난 과거를 후회하지 않고 지금 바로 마주하는 삶에 충실할 수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요. 그러다 보면 우리 각자의 소명도 자연스럽게 빚어지고 만들어지는 것이 아닐까 합니다.

일요일 연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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