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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또로롱 Jul 02. 2023

나를 둘러보기 3


나의 삶은 대부분 남에게 어떻게 보이냐가 주를 이루었다. 미덕이라는 덫에 갇혀 내가 아님 세상이 굴러가지 않을 것처럼 헌신했다. 어머니가 여행을 가시면, 오시기 전 집안을 깨끗이 청소해 편안하게 쉴 수 있도록 정리해 놨고, 가족들 식사를 다 챙겼다. 그런데 그런 횟수가 굉장히 잦아졌다. 아버님이 공장을 운영하실 때, 일요일 식당이모가 쉬는 날은 1살, 3살 아이를 새벽 5시에 업고 걸리고 가서 인부들 밥을 했다. 나에게 직접적으로 시킨 사람은 없었다. 시키기 전 내가 손들고 가서 한 결과였다. 그래서 지금은 큰소리칠 수 있다지만, 언덕에 대고 혼자 부르짖는 메아리 밖에 되지 않았다. 과거를 기억하고 있는 가족은 아무도 없다. 새벽 그 시간 그 장소에는 인부들 밖에 없었으니까.     


요즘은 나에게 집중하는 시간이 많아졌다. 아이들도 성장했고, 요양병원에 계시는 아버님 면회를 병원 문이 닳도록 들락거렸지만 코로나로 병원 출입마저 자유롭지 못하게 되니 내 시간이 점점 늘어났다. 무의미하게 흘러갔던 시간도 많지만, 의미를 만들려 노력한 시간도 적지 않다. 나는 호기심이 많아 새로운 일에 도전하거나 배우는 것을 좋아한다. 여러 가지 일을 동시에 벌려 과도하게 하느라 지칠 때도 많다. 반면 나의 남편은 한 가지 일에 꽂히면 오랫동안 집중하는 성격이다. 하다못해 포카에 빠져서 10년, 춤바람에 빠져서 4년, 최근 몇 년 전으로 올라가면 골프에 빠져서 한 5년은 혼신의 힘을 다해 배우는 사람이다. 그러니 나를 바라보는 남편의 시선이 고울 리가 없다. 산만하게 이것저것 하는데, 도대체가 실체를 모르는 것이다. ‘나 이런 사람이야.’ 말할 만한 주제가 없는 것이다. 요즘은 그게 가장 큰 딜레마였다. 예전 같으면 이도저도 안 되는 상황에서 포기했을 것이다. 살아오면서 다져진 심근으로 잘 버텼다. 그리고 투자한 시간들이 아깝다. 자기만족에 머무르기엔 너무 많은 비용을 치렀다.      


공동체 활동을 하면서 많은 사람을 알게 되었다. 알고 지내던 친구나 이웃, 가족관계에서 크게 벗어나지 못했는데 공동체 활동은 전국구에 걸쳐 다양한 사람들을 만날 수 있는 곳이다. 해맑아 보이는 미소 뒤에도 아픔이 있고, 여리한 체구와 서글서글한 눈빛 뒤에 감춰진 강인함도 엿볼 수 있었다. 새벽 시간에 차근차근 풀어내는 삶의 이야기는 눈물을 짓게도 만들고 웃음을 자아내게도 만든다. 가슴 아픈 사연을 간직한 이의 이야기는 두 손을 모으고 기도하는 마음으로 듣게 된다. 서로를 응원하고 격려하는 공동체의 모습이 흐뭇한 하루를 시작하게 만든다. 사람은 관계 속에서 살아간다. 아무리 많은 부를 축적한 사람도 친구나 가족이 없으면 무미건조한 삶을 살아갈 수밖에 없다. 있는 것을 나누고 없는 것은 하나씩 채워가며 우리의 삶도 영글어가는 거겠지.     


흔적을 남기는 일이 하나 벌어졌다. 디지털 문외한이었던 내가 온라인상에서 첫 강의를 하게 되었다. 천지가 개벽할 역사적 사건이었다. 삼색브랜딩 수업을 거쳐 어렵게 결정된 미니챌린지 캔바 수업이었다. 취미로만 했을 뿐인데 수업을 열게 될지는 꿈에도 생각지 않았다. 인생은 늘 의도하지 않은 일들이 삶 중간중간에 끼어들어 긴장감을 고조시킨다. 1명만 와도 괜찮다 여겼는데 격려차 여러 명이 신청해 주었다. 감사한 마음으로 날마다 커리큘럼을 바꿔가며 수업을 준비했다. 정신없이 수업을 마치고 나니 또 다른 시각이 생겼다. 지금껏 배우고 평가만 했던 수강생의 자세에서 가르치는 입장이 되고 보니 신경 쓰이는 부분이 몇 배가 늘었다. 대충 알던 툴들도 하나하나 세심히 살펴봐야 했고, 시중에 몇 권 되지 않은 책들도 살펴보며 틈새가 벌어진 실력 메우기에 여념이 없던 시간들이었다. 역시 가르쳐봐야 실력이 는다는 진리를 몸소 체험한 시간이었다.      


내 삶의 이야기가 하나씩 늘어가고 있다. 후회되는 일들도 참 많지만, 후회를 양분으로 나는 숙성되어가고 있는 중이다. 예전에 비해 체력의 한계를 절감하고 있지만 마음은 더 젊어지고 있다. 흘러가는 시간을 붙잡을 수는 없어도 시간과 대화하며 헛되이 보내지는 않을 작정이다. 남과 더불어 웃음이 늘어가는 그런 날들을 꿈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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