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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또로롱 Jul 31. 2023

돌아돌아 60갑자

나에 대하여

몇 년 있음 나도 60갑자다. 지금까지 몇 자 적어 온 글들이 내 눈을 통한 주변에 대한 이야기였는데 내가 주인공인 적은 거의 없었다. 나는 항상 변방에서 지켜보는 사람이지 중앙에 나서서 얘기하지 않으니 더 그럴 것이다. 내가 자신을 소홀히 하며 살았기에 더 미안해서 말 꺼내기 어려울 수도 있다. 힘든 중노동을 시킨 건 아니지만 감정적으로 자신을 학대했다. ‘왜 그렇게 미련하게 사니, 왜 거절을 못하는데, 누가 시킨 거 아닌데 왜 사서 고생이야, 너 아니어도 할 사람 많아, 아직까지도 그걸 못 한다고?’ 만약 남이었다면 떠나도 몇 번을 떠났을 관계이다.

“혹시라도 제사를 지내고 싶으면 딱 5가지만 준비하면 돼.” 

나는 농담인양 진심을 담아 이야기한다. 큰 애들은 들은 척도 안하지만 막내는 재미있는지 자꾸 되묻는다. 5가지도 잘 외워지지 않은 모양이다. 

“따뜻한 라떼, 국내산 찰옥수수, 노가리, 맥주 한 캔, 수박이라고 이놈아!” 

고3짜리 막내아들은 배시시 웃으며 알았다고 한다. 키는 형보다 크면서 하는 짓은 영락없는 막내다. 

내가 정해놓은 제사 음식 리스트를 보면 나를 제대로 표현한 거 같아 헛웃음이 나온다. 어쩜 저렇게 소박할까 싶어서다. 

뷔페를 가도 딱히 맛있어 보이는 건 없다. 막 쪄낸 옥수수가 더 맛나 보이고 잘 익은 총각김치가 제일 맛있다. 수준에 맞춰 소탈하게 사는 건 바람직하지만 자신의 입맛을 소박하게만 길들이는 건 나에 대한 예의가 아닌 듯하다. 비싸고 좋은 음식도 충분히 먹을 수 있는데 ‘넌 이렇게 먹어야해.’ 라고 무의식중에 세뇌를 시킨 건 아닌지 자문해 봐야겠다. 

동생이나 조카들, 친지들에겐 아주 후한 언니고 이모이다. 알뜰한 것도 아니면서 나에게만 유독 인색하니 저렴한 인생이 되 버린 거 같아 한숨이 나올 때가 많다. 그래서 허한 마음을 난리북새통 스터디로 채우고 있는 건지도 모르겠다.

‘이젠 나이도 있으니 폼 나게 꾸미고 명품 백 하나 정도 구색 좀 맞춰야 하지 않을까?’ 그런 생각이 전혀 들지 않는다. 사람이 명품이 아니면서 명품 백 들고 다님 되겠냐고 오히려 큰소리다. 사실 나는 진품 가품도 구별하지 못하는 브랜드 문외한이다. 동네 친구들이 하나정도 사라고 부추기지만 아직 그럴 생각도 관심도 없다. 

내가 좋아하는 건 뭘까? 마음으로부터 질문이 올라왔다.

난 돌아다니는 것을 좋아한다. 운전도 좋아한다. 어느덧 무사고 경력 33년째이다. 장거리 운송업을 해볼까하는 생각도 자주 했을 정도다. 그러니 당연히 여행도 좋아한다. 아이들이 태어나고 학창 시절을 보낼 때까지 우리 가족은 여행다운 여행을 거의 해보지 못했다. 뒤치다꺼리할 일이 왜 그렇게 많았는지, 아니면 내가 용기를 내지 못했던지. 추억은 아무리 많은 돈으로도 사지 못하는데, 가족과 함께한 여행이 너무 드물어 사진도 몇 장 없다. 

몇 년 전부터 1년에 한 번은 제대로 돌아다니자 마음먹고 제일 한가한 겨울에 여행을 떠났다. 3년 간 그 해의 보상을 그렇게 돌려주었다. 그러나 그것조차 코로나가 시작되면서 싱겁게 막을 내렸다. 여행은 삼박자가 맞아야 하는데, 이젠 네 박자가 맞아야 갈 수 있다는 걸 깨달았다. 건강, 돈, 시간, 외부 환경까지.

내 버킷리스트 중에 하나가 환갑되기 전 남미로 배낭여행을 떠나자고 계획했다. 마음이야 세계 배낭여행을 하고 싶지만 너무 길어지면 체력 소진도 클 것이고, 경비도 많이 들고, 지쳐서 돌아오고 싶어 할 것이다. 멀게만 느껴지던 그 날이 이제 성큼성큼 다가오고 있다. 남미 배낭전문 가이드는 진즉 알아 두었다. 떠나기만 하면 되는데 아직 네 박자가 채워지지 않았다. 체력 관리도 너무 안하고 살았다. 나에게 너무 미안해진다. 나를 좀 더 아껴주고 챙겨주고 쓰다듬어줘야 하는데 시선이 늘 밖으로만 향한다. 올 해는 내 안의 네 박자를 완성하는 시간으로 만들려한다. 운동도 열심히 하고 가까운 곳이라도 가족과 함께 여행하며 휑하니 비어 있는 사진첩을 채워나가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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